낭만 없는 20대, 두 번째 대학생활과 오답노트

청춘을 팔던 내가 다시 청춘을 산다

by 김시현

개강 첫 주는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스물일곱에 두 번째 대학생활을 시작하며 드는 생각이 하나 있다. 낭만 없는 나의 이십 대, 메마른 청춘의 끝자락에 다시 한번 캠퍼스에 머무를 수 있어 감사하다는 것. 다시 쓰는 대학생활, 이번에는 든든한 오답노트가 있다.


27년 간의 인생에서 내게 돈을 버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일이었다. 반듯한 직업을 가지는 것보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는 것보다 월에 몇 백의 돈을 쥐는 것이 더 좋았다. 누군가는 푼 돈이라 생각할 그 돈이 없어 귀찮고 피곤한 일이 자주 생겼다. 돈이 내게 주는 한계효용은 남들보다 컸다. 애초에 가진 것이 적을수록 한계효용이 큰 법이다. 첫 번째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취업하는 것도 잠시 생각했지만 타지 생활을 계속할 자신이 없었다. 서울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다던 문화생활에는 늘 가격표가 따라붙었다. 결국 졸업 후 대구로 내려왔다. 월세방을 얻어 본가 근처에서 공부방을 시작했다. 엄마는 인생에 갑작스러운 위기가 생겼을 때를 대비해 생활비 대출을 매 학기 받으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는 비상금이라 할 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 달 벌어 그 돈으로 겨우 한 달을 났다. 하지만 나는 스무 살에 빚을 진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싫었다. 웃기게도 엄마의 성화에 밀려 받아 모은 생활비 대출 덕분에 공부방을 처음 시작할 때 월셋집 보증금을 낼 수 있었다. 항상 틀리던 엄마의 말이 이번에는 맞았다.



3년째 공부방을 운영하며 얻은 것이 돈만은 분명 아니었다. 가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적성에 잘 맞았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시간에 적지 않은 보람을 느꼈다. 공부방 창업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풀기로 하자. 행복한 일을 하며 돈을 번다는 건 정말 즐거웠다. 물론 힘들 때도 많았다. 감사하게도 대부분 선한 아이들이 학생으로 찾아와 주었다. 하지만 스물넷의 미숙한 내가 감당하기에 어려운 경우들도 가끔 있었다. 은근한 19금 드립을 치는 철없는 남학생이나 필터를 거치지 않은 망언들에 나는 어른스럽게 대응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서울대 나와서 공부방 하는 내 인생은 망한 거라고 한 학생이 말했다. 필터 없이 토해낸 망언을 듣고 나는 능청스레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대답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말들을 왜 굳이 참았을까 싶기도 하다. 돈을 받는 입장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무례함을 견딜 필요는 없었다.


열심히 일한 덕에 1년 만에 집을 샀다. 물론 은행 대출은 아직 조금 남았다. 생활비 대출도 다 갚았다. 집에 큰일이 생기면 주저 없이 보태는 딸이 되었다. 신기하게도 돈이 제법 모이자 백수 때 주제를 모르고 커지던 물욕은 깨끗하게 사그라들었다. 그 시절에는 없는 형편에 몇 십만 원짜리 향수와 몇 백만 원짜리 가방을 탐냈다. 결핍이 욕망을 낳는다는 말이 있지.


다만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을수록 내 마음은 가난해졌다. 첫 번째 수능을 친지 6년째가 지나서도, 대학 졸업을 하고도 나는 같은 공부를 하고 있었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운 좋게 가게 되어서, 남들보다 잘하는 게 이것뿐이라, 돈이 되는 재능이 하필 공부라서 6년째 수능특강을 펴게 될 거였다면 공부를 조금 덜할 걸 그랬다. 다른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솔직히 30대에도, 40대에도 같은 일을 할 자신이 없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잘 가르치는 것과 가르치는 일로 돈을 잘 버는 것은 많이 다른 것 같다. 여러 복잡한 생각들로 다시 진로를 고민했다. 그렇게 나는 26살에 수능을 치고 27살, 약대에서 두 번째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대학생활을 시작하면 다시 가난해질지도 모른다. 6년간 6000만 원의 학비를 내야 하고 부수적인 비용들도 있다. 하지만 첫 번째 대학생활이 남긴 오답노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일어나지 않은 불행을 너무 두려워말자. 문제를 탓하지 말고 방법을 찾자. 뭐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늘 돈이 없으니까 젊음을 팔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서럽고 억울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과외로 꽉꽉 채운 일정들, 2년 동안 거의 쉰 적이 없다. 일은 재미있고 행복했지만 일만 하니까 힘들었다. 집에서 일을 하니 밖에 잘 나가지도 못한다. 또래 친구를 만날 일도 거의 없었다. 오후 3시부터 일을 시작해 밤 12시까지 온라인 과외를 매일 했다. 웹툰을 보고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는 것이 유일한 취미였다. 간간이 하는 스페인어 공부는 내 자존심이었다. 사랑했던 나의 첫 번째 대학 전공,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시간만큼은 젊음을 판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다 보니 대학에 다시 와서 분에 넘치게 젊음을 다시 누린다. 청춘을 팔던 내가 다시 청춘을 산다. 한 시간을 3만 원의 시급으로 바꾸는 대신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 시급으로 과외비를 받으면서 생긴 이상한 계산법이 있다. 일을 하면 한 시간은 2만 원, 혹은 3만 원의 돈이 된다. 온전히 나를 위해 쓰는 한 시간은 3만 원, 두 시간은 6만 원. 사실 나는 매일 돈을 내고 젊음을 누리는 중이다


아래는 그간의 짧은 기록이다.


3월 4일 화요일

평소 공부방 일을 할 때는 집에서 나갈 일이 없다. 하루에 평균 500보 정도 걷는다. 개강 첫날, 무려 16105보를 걸었다. 수업을 듣고 2살 어린 동생과 친해져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나눴다. 닮은 점이 많아서 금방 편해졌다. 저녁 7시쯤 개강총회 뒤풀이를 갔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3월 5일 수요일

강의를 듣고 학식을 먹었다. 학과에서 사귄 친구랑 같이 점심을 먹었다. 그 애는 김밥을 먹었고 나는 불고기 비빔밥을 먹었는데 내가 고른 메뉴는 정말 최악이었다. 분명 비빔밥인데 불고기 국물이 흥건하게 고여 밥알이 축축했다. 죽을 먹는 느낌이었다. 오늘은 4시간이나 공강이 있다. 도서관에서 온라인 강의를 듣고 로르까의 희곡을 읽었다.


3월 6일 목요일

푸쉬킨의 벨킨 이야기라는 책을 교양수업에서 다룬다. 생각보다 재미있다. 혼자서 차를 몰고 학교까지 갔다 왔다. 운전도 계속 연습하니 는다. 오후에는 공부방 수업을 했다. 한결 같이 하자. 정신 차리고 오늘도 열심히 하자.


3월 7일 금요일

새내기배움터에 갔다. 1박 2일의 일정을 위해 공부방 수업 일정을 미리 조정하는 것도 일이었다. 개강 첫 주 행사는 별다른 사정이 없으면 필참이라니 이번까지만 참여하자. 조원들이 착하고 귀여웠다. 결이 맞는 좋은 친구들을 많이 사귄 것 같다. 오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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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r8iw1Ux-ro?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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