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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경혜 Oct 10. 2020

밤의 감성 낮의 이성.

밤을 꼴딱 새웠다.

자려는 순간 갑자기 생각나지 않던 이야기의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쏟아지는 느낌이었는데 일어나서 생각해보니 그저 조금 진전된 것뿐이었다.  역시 새벽에 생각나는 것들은 무엇이든 부풀려 느껴지게 한다. 그것이 슬픈 것이든 좋은 것이든 간에.

나는 드디어 해냈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순탄하게 끝낼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해냈고 탄탄한 구성으로 금방 출판 계약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건, 새벽이기 때문이었다. 새벽은 왜 그런 기분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사소한 것도 커다랗게 부풀려 감상적이 되고 대단하게 느껴진다.


날이 밝아오는 걸 느끼면서 잠에 살짝 들었던 것 같고 깨어보니 10시 30분이었다. 더 자고 싶었지만 남편의 출근 시간 때문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조금 구체화시켰다. 새벽에는 술술 잘 풀리던 이야기가 낮에는 집중이 되질 않았다. 겨우겨우 꾸역꾸역 정리를 하고 또 같은 내용을 다른 공책에 정리했다. 새벽의 다 된 것 같았던 자신감은 금방 사라졌다. 또 고개를 든 무력감.

내가 이걸 잘 만들어낼 수 있을까?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든다. 낮은 이성 때문에 무언가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이성은 자꾸만 검열을 한다.


그건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말이 안돼 그러니 바보 같은 생각하지 마.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낮의 이성을 피해 밤의 감성에 기대어 창작물을 만들어낸다. 이성이 보기에 말도 안 되는 감성과 상상력을 동원해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대단한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도취감에 휩싸여 더 말도 안 되는 것을 감행하게 한다. 밤의 감성은 더더더 요구한다.

그렇게 낮이 되면 낮의 이성은 밤의 감성에 기대어 만든 창작물을 보고 괴성을 지르며 가차 없이 수정한다. 잘라내고 잘라내고 잘라내고..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낮과 밤의 공조.

결국은 무언가를 생각하기에는 밤이 좋다는 결론이다.

낮의 이성에 가차 없이 잘라내어 지더라도, 그 10분의 1이라도 건지기 위해서는.

그렇다고 밤을 꼴딱 새울 필요까지는 없지만..


예상대로, 낮의 진전은 없었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쨌든 생각하기에, 무언가를 만들어내기에도 밤은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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