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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날 Jul 24. 2024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보고, 읽다

지인에게 드라마를 추천받았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OTT 왓챠에만 있는 드라마, 한석규 배우가 나온다기에 기대하고 딱 한 달만 보기로 하고 결제. 안정적인 한석규 배우의 첫 대사부터 참 좋았다. 알고 보니 원작도서가 있는 작품이었다. 드라마와 같은 제목,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 펑펑은 아니고 주르륵 흐른다. 눈물이.


드라마는 30분 전후의 길이로 12편이다. 한 번에 몰아 보기에는 눈이 피곤해 며칠 동안 봤다. 보고 나니 슬픔보다는뭐랄까 따뜻함... 이 더 느껴졌다. 원작이 궁금해서 도서관에 갔다. 작가의 이름도 처음 들었는데 도서관에는 원작자 강창래 작가의 책이 여러 권 있었다. 인문학 강의를 하는 작가의 다른 글이 궁금해서 <위반하는 글쓰기>라는 책도 함께 빌렸다. 내가 알지도 읽지도 못한 책들이 이미 유명함을 알게 되면 묘한 기분이 든다. 처음에는 죽을 때까지 읽어도 다 못 읽을 책에 대한 분주한 마음이 들다가, 세상이 책을 만드는 속도를 어찌 따라가랴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며 나를 워워 가라앉힌다. 읽고 싶은 책을 만나는 것이 설렘이 된다.


책을 먼저 읽었다면 어땠을까. 드라마를 통해 등장인물을 만나서 그런지 책에서 한석규의 목소리가 지원되는 듯했다. 실화이기에 더 감정이입이 되는 글.

이 책의 중심에는 ‘쥐똥고추’가 있다. 베트남 고추인데 청양고추 매운맛의 5배를 가진 완전 매운맛이라고 한다. 표지에도 쥐똥고추가 톡톡톡 뿌려지고 있다. 책 속에서는 아내를 위한 무염 음식을 준비하다가 쥐똥고추 매운맛으로 맛없음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주인공이 하나 둘.. 세 개까지 넣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말한다.


무지무지하게 매웠지만 간지는 디따 난다.

매운 것을 즐기지 못하는 나는 읽으며 작가가 사랑하는 쥐똥고추의 간지에 중독되어 버릴까 봐 정신을 바짝 차리며 읽었다. 왜냐면 말 그대로 간지 나는 요리들이 계속되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쥐똥고추는 작가의 요리에 자주, 거의 모든 요리에 함께 한다.

인생의 매운맛을 기억하라는 건지, 매운맛이 느껴질 때 얼음물도 함께 한다는 건지.. 뒤로 읽어 나갈수록 쥐똥 고추의 역할을 상상한다.

한 편 한 편의 마무리 문장은 슬프다. 끝을 알고 있는 독자이기에 그런 걸 수도 있다.


아주 재미있다. 듣기로 끝낼 책이 아니다.
읽어보기도 해야겠다.
소설의 경우 대개 듣기로 끝낸다.


작가가 오디오북을 들으며 하는 말이다.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는데 요리 서적 코너에 있었다. 어,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읽고 나니 그럴싸하다. 읽기만 할 책이 아니다. 나도 직접 간지 나는 요리를 해봐야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지 나는 요리를 하고 싶어 진다.


원작에는 아내의 대사가 그리 많지는 않다. 하지만 드라마 속의 아내를 보면 책의 마지막 부분이 더 감동으로 몰려온다. ‘이러라고 그런 거였어?’라는 제목의 글과 드라마 장면이 함께 떠오른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하지만 당신 잘 해왔어. 내가 없어도 얼음물 챙겨 먹어가며 오늘의 힘을 내길.”

책에서 듣지 못했던 아내의 마음속 이야기를 드라마를 통해 들은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두 곡의 노래.

세상에... 너무 좋다.


검푸른 바다, 바다 밑에서
줄지어 떼 지어 찬물을 호흡하고
길이나 대구리가 클 대로 컸을 때
내 사랑하는 짝들과 노상 꼬리치며
춤추며 밀려다니다가
어떤 어진 어부의 그물에 걸리어
살기 좋다는 원산 구경이나 한 후
에지프트의 왕자처럼 미이라가 됐을 때,
그의 안주가 되어도 좋다
그의 시가 되어도 좋다
짝짝 찢어지어 내 몸은 없어질지라도
내 이름만 남아 있으리라
명태, 헛, 명태라고, 헛
이 세상에 남아있으리라.

양명문 시/ 변훈 곡 / 바리톤 오현명


므라즈의 아이 앰 유어즈가 듣고 싶었다. 그걸 틀고 소리를 조금 높이니 저절로 몸이 들썩여진다. 기억, 기억은 어쩔 수가 없다. 신나는 슬픔이 온 방안에 가득 찬다.


두 곡의 다른 점은 많지만 내용과 연결하여 잘 어우러진다.가곡 '명태'는 글의 거의 초반에 '아이 앰 유어즈'는 마지막쯤 글에 나오는데 읽으면서 드라마의 삽입곡을 듣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이 책은 대출로 읽을 책이 아닌 것 같다. 요리책인데 요리책만은 아니고, 슬픈데 우울하지는 않으며 말의 구슬을 어찌나 잘 꿰어 놓았는지 ‘불콰하다’라는 순우리말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글쓰기를 강연하는 작가는 자신의 슬픔을 진주 목걸이로 만들었다.


그냥 참을 수밖에 없는 사소한 절망을 느끼는 날 부엌이 빛난다. 집안일을 맡아서 하고 음식을 만들면서 깨달았다. 그렇구나. 사랑하는 사람과 절벽을 느끼는 순간 슬픔의 둑이 터지면서 물이 콸콸 쏟아지는구나. 며칠째 쌓여있던 설거짓거리를 씻어낼 때 애끓는 아픔이 조금은 씻겨나가는구나.쌓이고 쌓인 지저분한 그릇이 흐르는 물에 씻겨나갈 때 답답한 마음도 함께 조금씩 쓸려나간다. 생각해 보면 말할 거리도 못된다. 별것도 아닌 말이었는데..... 가슴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아프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날마다 떠오르는 슬픈 말이다.  



슬픔도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그래서 다행인가. 그 자리를 기억이 차지한다. 미안하다가 고마웠다가 그리운 마음이 된다. 드라마를 먼저 보아도 책을 먼저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원작과 다른 몇 가지들은 오히려 원작의 이해를 돕는 것 같기도 하다. 책 속 삽화는 한 장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지도 않았는데 사이에 끼어들어 거슬렸다.


간지 나는 여름방학 밥상을 차려주고 싶고,

힘내라고 한 마디 더 해주고 싶고,

함께 있어서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게 하는 책과 영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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