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_영화 퍼펙트 데이즈
두 시간 동안, 한 사람의 일주일을 보고 왔다. 상영관은 두 군데인데 하루에 한 번만 상영된다. 가장 맞는 시간으로 골라서 예매 없이, 일부러 검색도 하지 않고 만난 영화, <퍼펙트 데이즈>
여기, 하늘을 보며 사는 사람이 있다. 도쿄의 공중 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들기까지 반복되는 일상, 그의 하루는 마치 계획된 프로그램처럼 움직인다. 청소일이 직업이 아니라 마치 예배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을 다해 힘을 다해 그는 그의 일을 한다. 묵직한 성스러움이 느껴진다.
그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가 꾸는 흑백의 꿈들은 뭘까. 너무 조용한 영화기에 머릿속은 졸지 않기 위해 촉수를 세운다. 졸릴 때쯤이면 나오는 노래들과 노래가 나올 때의 히라야마의 모습이 정말 멋지다.
출근하는 아침, 문을 열고 나서며 하늘을 향해 “감사합니다! “일지 ”안녕하세요~ “ 일지 모를 미소를 짓는다. 설렘이 느껴진다. 왜, 누구를 향한 미소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다. 궁금해서 힌트가 보일 것 같으면 그의 과거를 상상한다. 매일 같은, 그러나 매일 조금씩 다른 그의 일상에 예고 없이 찾아온 조카에게 그가 말한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다음에 가자는 삼촌의 말에 다음이 언제인데?라고 되묻는 조카에게 이런 신선한 대답이라니. "다음에 "라는 말에 담긴 진심의 양이 얼마인지 궁금하지도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다음이 주는 모호함에 도장을 찍는다. 지금,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다음은 그냥 다음인 거라고. 다음이 언제냐 묻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답이다. 사춘기 조카는 인생의 해답을 얻은 것처럼 운율을 맞춰 말한다. "다음은 다음. 지금은 지금."
지금의 기쁨, 지금의 할 일을 생각하기로 하는 것처럼.
아현동 굴다리를 생각나게 하는 히라야마의 출퇴근길과 그가 듣는 노래들, 그리고 그의 눈이 아름답다. 시인이 지저분한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는 느낌이다. 하루 중 그의 작업시간은 그의 완벽한 하루의 일부일 뿐이다. 울고 있는 아이를 잡아준 손이 더럽다 생각하는지 인사도 안 하고 아이의 손을 물티슈로 닦아 쌩하고 가버린 젊은 엄마는 어쩌면 히라야마의 이전 모습일 수도 있다. 뒤돌아 손을 흔들어주는 꼬마 덕분에 오늘도 퍼펙트 데이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일본영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 좋다는 <러브레터>를 세 번 시도했는데 끝까지 보지 못했다. 집중이 안된다고 해야 하나. 일본어의 높낮이에 파도를 타며 자막을 읽는 것이 피곤했나 보다.. 고 나름의 이유를 알아냈는데, 이 영화의 히라야마는 정말 대사가 적다. 그래서 두 시간을 졸지 않고 봤을 수도 있다. 아님 요즘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 쓰는 재미를 느껴서인지 허투루 보고 듣고 지나치지 않으려 의미를 찾기 위해 집중했는지도. 감독이 일본인이 아니라 내가 생각한 일본영화의 느낌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
왜 가난하고 낮은 삶을 살려고 하는 걸까, 안 그래도 될 사람 같은데. 하고 생각하다가 히라야마의 동료가 갑자기 일을 그만두느라 두 사람의 몫을 혼자 해야 하는 날을 보면서 웃음이 났다. 지적이고 우아할 틈이 없는 노동의 시간, 육체의 한계를 나도 그도 느끼고 있다. 온전히 나로 살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날도 있음을.
궁금한 것이 많지만 다음에 생각이 나면 더 상상해 보려고 한다. 마지막 쿠키 영상은 히라야마가 매일 찍은 사진의 정체와 그의 미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준다.
코모레비(木漏れ日):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뜻하는 일본어입니다.
코모레비는 바로 그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쉬는 날 방안에서도 그는 코모레비를 향해 있었다. 광합성을 하는 나무처럼.
방안에는 미래의 코모레비를 만들어줄 아기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쿠키 영상에 '코모레비'에 대한 설명이 나왔을 때, 우리말 '윤슬'이 생각났다. 고유말이기에 다른 나라말로는 하나의 단어가 없는. 낮에는 햇빛에 반짝이고 밤에는 달빛에 빛나는 그 물결을 보고 있을 때의 평화로움과 비슷하지 않을까.
마지막 장면에 그의 얼굴은 무엇을 말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영화 해설을 봐야 하나. 그냥 어느 날 나도 붉은 노을이나 비 온 뒤 새파란 하늘을 보면 울컥 떠오르는 마음들, 느낌 아니까... 그의 완벽한 하루가 그런 뭉클함으로 마무리된 것이 아닐는지. 중년을 넘은 아저씨의 당황스러운 설렘, 아이 같은 그림자밟기의 순간은 히라야마의 코모레비였다. 나의 일상에 틈새를 비추는 빛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것, 그날이 바로 퍼펙트 데이이다.
잔잔한 영화, 졸릴 수 있지만 음악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