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의 시간
시작은 미약했다. 아직도 미약하다. 끝을 볼 수 없는 일이다. 몇 년간 책 선생으로 살았는데 나는 나만의 책을 권하지 못하고 있다. 책을 권할 수 있으려면 더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오랜 시간의 경험을 녹여내 어린이의 마음을 혹은 어린이의 글쓰기를 주장하고 설명하는 작가 정도는 돼야 나만의 커리큘럼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다.
브랜드논술은 책과 논술교재를 함께 판다. 독서를 권장하는 아름다운 목표의 뒤에는 책을 팔아야 하는 상업성이 함께 한다.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몇 십 년간의 연구 결과인 교재는 정말 훌륭했다. 운동을 해서 근육을 키우는 것처럼 글쓰기도 매뉴얼 대로 연습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일을 처음 할 때 놀라움을 느끼게 했다. 글쓰기는 재능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피아노를 배우듯 태권도를 배우듯 글쓰기도 배울 수 있다, 천천히 꾸준히 늘어간다. 우리 아이가 뭘 먹고 저리 컸는지 모르는 것처럼 꾸준함이 모여서 글을 쓰는 것에 자신감이 생긴다.
브랜드 논술은 각 지역마다 지부 혹은 지사가 있는데 그곳의 장과 면담을 통해 교사로 일할 지 여부가 정해진다. 까다롭지 않은 면접의 이유는 교사로 받아들여지면 교사가 신청하는 교재의 일부가 지부장의 수입이 되기 때문인 것으로 알고 있다. 신입교사교육을 몇 주간받은 후 교사회의에 초대된다. 처음 교사모임에 나갔을 때의 어색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색함보다는 신입교사가 들어온 것에 대한 의아함을 가진 눈빛이 당혹스러웠던 것 같다. 내가 있는 지역은 이미 충분한 교사들이 있기에 새로 유입되는 교사에 대해 반가움보다는 신입을 허용한 지사장에 대한 이해 못 할 갸우뚱함이 섞인 분위기였다.
시작은 내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으나 일단 교육청에 등록을 하고 나면 나는 1인 사업자가 된다. 사업장을 운영하게 되는 것이다. 일 년에 두 번 현황신고와 세금신고도 해야 하고, 현금영수증도 발급해야 한다. 이때 알게 된 사실은 주변에 많은 공부방들이 교육청에 신고하지 않은 선생님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인데 나중에는 얄미운 생각마저 들었다. 수입에 대한 영수증처리가 되면서 의료보험도 내 이름으로 따로 나오고 매달 청구되는 비용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적은 수입도 수입인지라 그렇게 나가는 비용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어디에서 시작할 것인가_
공부방은 내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데 교육청에 명시된 정확한 이름은 개인과외교습자이다. 원장이 곧 교사이고 강사를 채용할 수 없다. 방 한 칸만 있으면 가능하다. 학생의 집으로 찾아가는 방문수업도 가능하다. 이때는 일대일 수업이기 때문에 수업료는 공부방 수업과 차이가 난다. 다른 하나는 별도의 공간에 교습소를 운영하는 것이다 개인과외교습보다 신고과정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상가라면 지하는 불가능하다, 면적에 따라 시간당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학생 수가 정해진다.
나는 일단 현관에서 가장 가까운 방을 교습장소로 정했다. 책장을 정리하고 최대 인원에 맞는 책상과 의자를 준비했다. 우리 아이들을 일단 가르쳐보는 것으로 시작하려고 했으니 그렇게 교재를 주문하면서 나의 수업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엄마가 책만 읽어주는 것이 아니고 안하던 질문을 하고 이전과 다른 글쓰기를 시키는 것을 어색해하면서도 "엄마, 잘 가르치시네요~" 하며 나를 격려했다.
그러나 우리 마을은 이미 형성된 유능한 선생님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에 신규회원이 나에게 문의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집에서 하는 것을 유지하기엔 내 실력을 쌓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방문교사로 방법을 돌리니 마을을 넘어 회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홍보는_
지부에 신규교사로 등록이 되면 여러 가지 홍보방법과 홍보물도 지원해 준다, 처음에는 교사가 사는 마을 아파트에 가가호호 현관에 홍보물을 걸기도 했고 아파트게시판에 포스터를 붙이기도 했다. 일주일 게시하는데 관리실에 신고를 하고 비용을 지불한다, 처음 게시판에 홍보물을 붙이고 나면 문의전화가 엄청 올까 봐 긴장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긴 마음이다. 그 주에 문의전화는 한통도 오지 않았다. 사실 아파트입구의 게시판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조차 눈에 띄는 광고지를 한번 볼까 말까 하니까, 아파트 게시판홍보는 <당신 가까이 독서논술공부방이 있어요>라고 알리는 용도이다. 언젠가 필요할 때 '아, 거기 있었지' 생각나도록 예비 수강자를 위한 알림. 물론 한 번은 게시판을 본 학부모의 상담전화가 오기도 했다. 시간과 비용을 물어보더니 일주일에 한 번인데 왜 비싸냐며 교재나 수업내용을 제대로 설명도 못하고 마무리된 상담,
그럼에도 달을 정해 꾸준히 게시판홍보를 한다, 그 비싼 논술 공부방이 아직 당신 곁에 살아있다고.
그렇다면 수입은_
돈을 벌기 위해 이 일을 하기에는 시작은 아주 형편없을 수 있다. 경력과 연륜이 있는 교사들은 이미 확보된 아이들의 소개와 형제들의 꼬꼬무 학생들로 안정권에 있다. 매주 모이는 교재연구 시간에는 각자의 영업비밀을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의무적인 이 시간을 잘 넘어가려는 교사와 더 이상 교재연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브랜드를 버리자니 아쉬운 교사, 그 가운데 낀 나 같은 초보들과 중간 경력자들이 다 섞여있다. 호랑이 같은 선배를 모신 기분, 그들의 주옥같은 자연스러운 교수법을 대화 속에서 찾아내고 눈치 보이지만 질문도 해본다. 후배에게 친절한 교사들이 팀 안에 있는 것은 신입교사에게는 무지한 행운이다.
아무튼 경력자가 아니라면 수입은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나 같아도 초보교사에게 아이의 지도를 맡기는 일은 피하고 싶을 테니까.
나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어 학부모상담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책육아를 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고 아이들이 책과 독후활동을 제법 하기 때문에 독서의 필요성과 글쓰기의 방향들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었다. 마치 초보가 아닌 것처럼 노련하게.
첫 학생이 등록되었을 때의 기쁨과 감사_
방문교사로 방법을 돌리고 첫 상담이 정해졌다. 맞벌이 부모님의 아이. 나라면 생각하지 못했을 부모가 없는 집에 방문교사라니. 어머님의 결단이 너무나 고마웠다,
아이 혼자 있는 집에 나를 믿고 들여보내주고 그 아이와 시간을 보내게 해 준 어머니의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교재연구와 아이의 성향에 맞는 글쓰기를 제시하며 첫 수업을 지루하지 않게 진행하는데 아뿔싸 시간이 모자란 것이다. 규정대로라면 일대일 수업은 한 시간인데, 그 시간 동안 글쓰기까지 하려면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나는 첫 수업에 삼십 분을 더 할애해서 한 시간 반동안 아이와 책이야기와 글쓰기와 첨삭까지 완료했다. 아무래도 내 실력에 한 시간 안에 이 모든 수업목표를 마무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에라 모르겠다. 지금 수업이 많지도 않은데 이 학생에게 더 해준다고 해도 나에게는 수업을 익히는 좋은 기회일 텐데 그런 거 따지지 말자고 스스로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한 시간 안에 수업을 마무리하려면 어떻게 분배를 해야 할지 계속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