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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날 Jul 31. 2024

휠체어와 엄마

올림픽 하면 떠오르는 기억과.

파리 올림픽이 진행 중이다. 2018년 평창 올림픽이 생각난다. 개막식부터 모든 순간이 감동이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몰랐던 감정들이 생긴 걸 보며 나도 어른이구나 생각했다.


태극기가 내 마음에 펄럭입니다..

그 뭉클함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막둥이 5살 무렵 한산도에 간 적이 있다. 이순신 장군의 흔적들과 그분의 고뇌가 담긴 한시가 새겨진 현판을 보며 왜 눈물이 나는지. 처음 느끼는 경험, 이순신장군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 공간에 나와 남편은 묵상하듯 서 있었다. 아이들은 개미를 잡고, 물동이에 개구리가 있다는 둥 어린이의 시선을 잡는 모든 것들에 반응하고. 거북선이 없음에 실망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우리가 느낀 마음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전에는 느끼지 못한 이런 마음은 우리가 부모가 되어서인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리며 뿌듯함과 함께 돌아갈 수 없는 길에 대한 어떤 생각들. 더 잘 살았었으면, 혹은 더 무언가를 준비했더라면 하는 생각이었다. 부모가 된 것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까, 내 아이들을 위해 조금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랄까. 아이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에 대해 생각하며 돌아오는 그 길은 내가 뭔가 다르게 채워진 느낌이었다.


올림픽에서 애국가가 들리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경건해진 어른의 마음. 전쟁을 겪은 어른들의 마음에 비할까만은 나는 확실히 대한민국의 어른이 되었다. 지킬 사랑이 있는 어른.


평창 동계올림픽이 하루 이틀 지나고 중계를 보다가, 문득 내 살아생전(?) 우리나라 올림픽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침 막둥이는 유치원 그림일기 숙제에 올림픽 포스터를 그려서 보여주더니, 시상식에 선물로 주는 수호랑처럼 어사모를 만들어 인형에게 씌워줬다. 그 저녁, 아주 즉흥적으로 낼 아침에 평창에 가자고, 성화도 보고 가능하다면 경기도 보고... 그렇게 올림픽의 현장에 가기로 했다.


평창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내리는 눈발. 주차장에 차를 대고 한참을 걸어야만 했지만, 아이들은 나보다 씩씩했다. 수오랑과 반다비를 볼 수 있다고 신이 났는데, 난생처음 보는 인파와 외국인들 사이에서 흥분하고 신기해하는 듯했다.  


눈길에 성화봉송대를 향해 올라가는 길.

중년의 아들이 휠체어에 어머니를 태우고 옆 길에서 올라온다. 지금도 그 장면은 한 컷의 사진이 되어 요즘처럼 올림픽 시즌이면 재현상이 된다. 어머니는 목도리를 두르고 날리는 눈발을 맞으며 앉아있고 아들은 힘을 내어 휠체어를 끈다. 그 얼굴에는 즐거움보다는 힘겨움이 더 많았다. 휠체어의 늙은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나 힘겹다.  눈은 계속 우리 얼굴을 때렸다. 이 동네 분들일까, 누가 가자고 했을까, 휠체어의 어머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들은..


지금 오길 잘했다. 나를 위해.

아주 먼 훗날, 아이가 엄마, 우리 올림픽 보러 가요, 한다면 나는 거절할 것이다. 나를 위해, 너를 위해.

막둥이의 그림과 시상식을 보고 만든 수호랑 모자.

드디어 성화대를 보고, 시상식도 보고 기념품가게도 가고, 눈발에 아이들은 힘들어했지만 외국인들 사이에서 신기하고 재미난 경험도 했다. 외국 관람객들은 기념품을 나눠주며 사진을 찍었다.

 다닐 수 있을 때 실컷 다니라고 하던 우리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다리가 아픈데 어딜 가니 난 괜찮으니 니들끼리 가라”던 우리 엄마의 말이 인사치레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올해 봄.

노인이 된 엄마는 휠체어를 끔찍하게 싫어하신다. 안 가면 안 가지 휠체어는 절대 싫다고. 하지만 엄마에게 벚꽃길을 선물하러 나선 길에 엄마는 마지못해 휠체어를 탔다. 흩날리는 벚꽃에게 자존심을 내어주고 엄마는 말했다.


어쩜 꽃이 꼴까닥 많이도 피었네. 오늘
눈이 시도록 봤네. 오늘, 꽃을.
꿈속에서나 볼 꽃을 오늘 다 봤네.
좋다. 너무 좋다.
오늘 호강했다.



그날은 “가긴 어딜 가 지들끼리 가라”던 엄마말은 인사치레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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