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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날 Jul 17. 2024

아빠의 터널

301호 이문규 환자는 지금 터널이고요..

간호사들이 업무인계를 하며 하는 말이 귀에 들어왔다.

터널, 아빠는 지금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구나.

내가 옆에 있지만 함께 가 줄 수 없는 터널.

아빠가 터널 끝에서 만날 빛이 평안을 주기를 바라며 그 길을 걷는 아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의 나는.


아빠는 퇴직 후 많이 외롭고 우울해하셨다. 겨울이 되고 설에 만났을 때, 그의 시간이 여름에 멈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7월이라 그런가 덥구나. 하시며 웃옷을 벗으신다.

그리고 치매노인이 되어 어느 날은 행복한 듯, 어느 날은 화가 많이 난 듯, 또 어느 날은 딸 집을 가겠다고 길을 나섰다가 목적지도 이유도 잃어버린 미아가 되기도 했다.


그 사이 가족들은 안타깝다가 슬프다가 화도 났다가 조금씩 무너져가는 아빠라는 산을 등졌다 뒤돌아보다를 반복하며 먹고살기 바쁜 날들과 감정을 공유했다.

아빠의 증상이 심해지고 노인전문병원에서 진료를 받던 중 아빠의 폐에 심각한 섬유화가 진행 중인 걸 알게 되었고 입원을 하게 되었다,

1월을 지나 코로나가 시작되는 그때 면회는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말라가는 아빠를 보며 옛이야기를 하고 옛 노래를 들려드리며 휴일을 함께 보냈다.

코로나가 심해지며 면회가 금지되고 전화로만 안부를 붇던 어느 날 아빠가 위독하시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빠에게 주렁주렁 달린 주사기와 산소호흡기, 음식이 들어간다는 코에 꼽힌 줄, 그리고도 이름을 알 수 없는 줄들.

헤어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 마음의 준비를 하라던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 걸까.


어쩌면 아빠를 가지 못하게 붙잡는 것은 저 줄들이 아니라 아직 다 갚지 못한 감정의 빚 때문일까.

연명치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수액과 산소호흡기만 남기고 아빠의 코에 들어가 있던 길고 긴 음식물 튜브도 뺐다.

아빠가 아이처럼 웃는다. 시원하다는 듯이 틀니를 뺀 잇몸이 맑다. 아기처럼 웃는다.

주삿바늘 뽑을까 봐 아빠 손에 장갑이 끼워지고 아빠는 그 손으로 여기저기 당신의 몸에 비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가려울 때 긁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른 수건으로 아빠의 팔다리, 가슴을 긁어드렸다. 고통스러운 그 밤 동안 나는 아빠의 손이 되어 말라버린 건조한 몸에 수건질을 했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듣게 될 노래를 세곡 선곡해서 반복 재생을 하고 아빠 가려웠지. 내가 시원하게 해 줄게.라고 말도 해보고

아빠 기분이 어때요? 질문도 해본다.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던 아빠의 그 밤, 거친 숨소리와 깜빡이지만 뜨지 않고 있는 아빠의 눈과 언제 마주칠지 몰라 밤을 새운다.

아침이 되자 보호자식이 도시락으로 들어온다. 잠깐 잠든 것 같은 아빠 옆에 음식 냄새를 흘릴 수 없어서 휴게실에 들어갔다.

그리고 아빠가 터널에 있다는 지난밤 당직 간호사의 말을 들었다.


터널, 아빠의 터널 배웅이 어쩌면 예정된 일이었음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복잡함이 목구멍에 메인다.

딸 넷 중의 셋째 딸, 어렵게 낳은 아빠의 아들은 돌이 지나 병사했고 그 슬픔을 덕지덕지 묻힌 채 태어난 것이 나다.


효도하라고 내 이름에 효도 효자를 넣었다는 아빠의 주정을 들으면서 자랐다. 잃어버린 아들이 애달파 핏덩이 딸은 돌볼 수가 없었다고 환영받지 못한 천덕꾸러기의 영유아 시절. 기억도 안나는 슬픔을 너 어릴 적에는 말이야 하면서 상기시켜 주는 어른들의 말은 나도 몰랐던 앙금을 남겼다.

엄마가 된 지금 나는 아빠의 주정인지 주문인지 모를 그 말을 다시 떠올린다.

효도하라고 네 이름에 효도 효자를 넣었다. 는 그 말이 오늘 아프게 들리고 있다.

‘너는 살아야 한다 아가야. 너는 효도해야 한다 아가야. 너는 나보다 앞서 가지 말고 살아줘야 한다 아가야. 그래서 네 이름에 효도 효를 넣기로 했다.’


그렇게 효도 효의 이름을 걸고 나는 우연 같은 필연으로 아빠의 터널을 배웅하고 있다.

말 못 하는 아기가 탈이라도 나면 내가 너를 가져서 무얼 잘못 먹은 것이 잇을까 기억을 더듬어 원인을 나로 만드려 하는 것이 부모임을 나는 아이를 낳고 키우며 알게 됐다. 아빠는 돌쟁이 아기를 가슴에 묻고 어찌 살았을까. 자기 탓이라고 자책하지는 않았을까 지난날의 잘못을 더듬으며 후회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마음이 더 아프다.

남은 자식들을 위해 살아야 했고 마음껏 슬퍼하지 못했을 아빠의 그 시간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왔다.


아빠, 아빠의 아기가 죽은 건 아빠 탓이 아니에요. 걱정하지 말아요. 아파하지 말아요. 아빠의 뽀얀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 아빠가 이렇게 살아줘서 남은 자식들 잘 키워줘서 감사해요, 아빠 걱정하지 말아요..


아빠의 입이 움직이고 목이 마르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아까 도시락에 나온 숭늉을 아주 조금 아빠 입에 묻혀 드렸다. 복숭아 속살 같은 아빠의 잇몸이 웃는다. 숭늉 맛을 기억하고 느끼시는 것처럼 연신 입맛을 다시고 입을 움직이신다.


어쩌면 오래전 황해도 연백의 떠나 온 그 집의 부뚜막에서 할머니가 해 주신 그 맛을 보고 계시는 걸까.

벌써 터널 끝에서 할머니를 만나고 계시는 걸까.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며 깊은 밤이 지나고 아빠는 아빠의 딸들과 사위들을 모두 만나고 터널을 지나셨다.

오랫동안 아빠의 아들이 되어준 남편은 아빠의 손을 오래도 잡고 있었다. 걱정 마시라고 예쁜 딸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몇 번을 이야기한다.

고마운 사람이다. 우리 집에 선물 같은 사람.


아빠는 터널을 통과했다. 깊은 고요 속으로 아빠 이문규의 이름은 과거가 되었다.

효도 효를 얹어 내 이름을 지으며 그가 한 생각은 그날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아빠는 나의 처음을 기억하고 나는 아빠의 마지막을 기억하게 되었다.

아빠는 터널을 지났고 나는 다가올 터널을 생각한다.

삶은 그렇게 지나가고 통과하고 다시 시작되는 것이리라. 아빠가 계시지 않은 오늘이 실감 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자주 만나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래서 잊고 있는 줄 알았다가 엄마의 김치를 받아오는 날에 김치통을 보자기에 싸주던 아빠가 생각난다.

한참 조개가 나오는 철이면 신공에 가까운 솜씨로 조개를 까던 아빠가 생각나 목이 멘다.


아빠에 대해 아빠의 인생에 대해 남겨드리고 싶다. 그런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아빠 이문규. 평생을 성실과 정직으로 살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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