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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 날 Aug 14. 2024

너의 이름은

언제나 고양이_6

그렇게 정해진 날이 12월 8일.

흥분한 은찬이를 위해 엄지여사는 학교에 현장체험학습을 신청했다. 지역이 공주이니 마침 무령왕릉을 구경하기로 했다. 부슬부슬 비가 내렸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월요일이라 박물관들은 휴관이고 갈 수 있는 곳이 얼마 없는 것이 다행이기도 했다. 빨리 백점이를 데리고 집에 가고 싶은 은찬이 덕에 대충대충 왕릉 산책로를 오르고 공주 성당도 잠깐 들렀다. 비는 그쳐가고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하기도 했고 백점이를 데리고는 먹지 못할 것 같아서 이른 점심도 먹었다. 은찬이는 백점이 생각에 그 좋아하는 짜장면과 탕수육을 남기는 어마어마한 일을 해냈다.

-우리 막둥이랑 이렇게 셋이 나온 것이 얼마 만이야, 옛날 생각나네, 형들 유치원 보내고 우리 셋이 자주 나들이했는데 말이야~


훌쩍 커버린 아이들, 그 순간들은 분명 힘도 들고 좋기도 했는데 지나고 본 오늘은 힘듦보다는 즐거움이 더 짙게 남는다.


-엄마, 백점이가 엄마랑 떨어진다고 막 울면 어떡하지?


미안한 표정의 은찬이를 보며 엄지여사도 조금 걱정이 된다. 고양이는 독립적이어서 어미가 새끼들을 일찍 독립시킨다던데 우리 고양이는 엄마랑 떨어진 오늘 밤을 낯선 곳에서 잘 자려나. 은찬이와 같은 생각.

드디어 은영의 집에 도착. 은영은 은찬이가 가져간 고양이 캐리어와 담요를 받아서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그리고 몇 분 후 드디어 우리 백점이를 만났다. 만났다기보다는 캐리어를 받았는데 담요 속에 꽁꽁 숨어버려 얼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 은영은 우리에게 백점이를 건네주고 말했다.


-잠시만요, 우리 단풍이를 데려올게요.

은영은 엄마 단풍이를 안고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단풍이는 은영에게 안겨서 멀어져 가는 은찬이네 차를 잠깐 보다가 이내 꿈틀거렸다.


-그래 들어가자 단풍아, 셋째는 잘 살 거야. 걱정하지 마.

은영이 단풍이의 아기들을 분양하며 내건 조건은 두 가지였다. 끝까지 책임지는 가족이기를, 중성화는 꼭 해주기를. 그러마고 약속해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있어 고양이 카페에는 책임비가 필수로 적혀 있었다. 은영은 책임비를 적어두긴 했지만 엄지여사에게 받지 않았다. 셋째는 은영이 처음으로 성사시킨 입양이었고  엄지여사에게 왠지 모를 믿음이 갔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책임비를 입금하려 계좌를 묻는 엄지여사에게 은영은 답장을 보냈다.


-우리 셋째가 좋은 가족이 생긴 것으로 저는 좋습니다. 부디 우리 셋째를 사랑해 주시고 함께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엄지여사는 고맙기도 미안하기도 해서 계좌는 모르지만 보낼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 상품권을 보냈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엄마, 백점이가 안 보여. 긴장했나 봐.

-그렇겠다. 우리 목소리도 처음 듣고, 차도 처음 탔으니까 그럴 거야. 기다려보자.

은찬이는 백점이를 살피며 이름을 불렀다. 캐리어에 입을 가까이 대고.

-백점아, 나는 은찬이야. 만나서 반가워. 형아가 잘 해 줄게.. 잘 지내자, 우리.


엄지여사가 물었다.

-그런데 친구네 고양이들은 이름이 뭐야?

-초코래. 초코. 동욱이네는 하얀 고양인데 밀크래.

-아, 그렇구나.

-왜, 다 먹는 거 이름이지? 잡아먹을 것처럼.

웃음이 난다. 엄지여사는 이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강아지나 고양이에게 이름을 먹는 거랑 관련해서 지으면 오래 산다는 말이 있대. 그래서 그런가 봐.

-아빠는 백점이 좋은데 백 점 만점 백점이. 이름 잘 지었어~

은찬이 고민하는 눈치다.


-엄마, 백점이 이름 바꿀래.

은찬이의 마음이 뭔지 아는 엄지여사와 오혜성 씨는 가만히 웃었다.


-먹는 거로 이름을 어떻게 짓지..? 붕어빵은 이상하고. 딸기? 복숭아? 식빵?

하나씩 불러보는 은찬이 때문에 차 안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은찬아, 백점이를 왜 선택했지?

-노랑이라서.

-그럼 노랑과 연결해서 이름을 찾아보면 어떨까.


노란색 먹는 거라....

은찬이는 바나나를 떠올렸다가 지웠다, 바나나야~ 부르자니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노랑 장미, 장미는 먹는 것이 아니고.... 치즈..? 치즈는 좀 이상하고...


-엄마는 노랑이면 누룽지나 망고, 카레.... 이렇게 떠오르는데.

-어! 엄마, 나 아까 망고 떠올렸는데 망고는 주황색도 있어서..

-괜찮아, 노랑 망고가 더 먼저 유명해졌어~

-그럼, 망고 할래. 망고.


그래 망고 좋다. 부르기 좋은 이름 망고.

그렇게 백점이는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은찬이의 마음덕에 망고라는 새 이름을 가졌다. 휴게소에 들르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은찬이를 진정시키며 세 사람은 집으로 향했다. 물론 중간에 휴게소도 갔다. 망고를 혼자 두면 안된다는 은찬이의 지시하에 번갈아 가며 보초를 서는 엄지여사와 오혜성 씨의 하루가 오랜만에 꽉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10월 8일에 태어난 망고가 우리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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