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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피곤하지만 쉬기는 아까워

신혼여행 둘째 날

by 토마토남

우리의 신혼여행 둘째 날은 사실 끝나지 않은 첫째 날의 연장선이었다. 지난 글에서 풀긴 했지만 우린 첫째 날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가는 비행기를 놓쳤다.


https://brunch.co.kr/@tomatonam/25


계획대로라면 첫째 날 저녁에 뉴질랜드 퀸스타운에 도착했겠지만, 비행기를 놓친 탓에 크라이스트처치를 경유하는 노선을 새로 예약했다. 예상치 못한 상황과 지출이었기 때문에 우린 과감하게 공항 노숙을 결정했다. 이것도 다 추억이지!


호기롭게 공항 노숙을 결정했지만 난 결국 잠들지 못했다. 별 문제야 없겠다만 치안에 대한 혹시 모를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와이프도 확실하게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노숙을 하는 장소가 공항 입구 바로 근처였다는 점도 컸다. 결국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퀸스타운행 비행기를 탔다. 자리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는데 퀸스타운이었다.


퀸스타운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풍경


공항 밖을 나오니 엄청난 풍경이 우릴 반겨줬다. 분명 크라이스트처치도 같은 뉴질랜드였지만, 이제야 비로소 뉴질랜드에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엄청난 도파민에 피로도 다 날아갔다. 어서 여행을 즐기고 싶었다. 렌터카 사무소를 찾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일단 찾고 나니 와이프의 유창한 영어실력 덕분에 빠르게 차를 빌릴 수 있었다. (그럼에도 직원의 입장에서는 많이 답답해하는 게 느껴졌다.)


우리와 여행을 함께할 렌터카


무사히 키를 수령하고, 우리가 빌린 차의 외관도 꼼꼼하게 체크했다. 예약할 당시에는 오래된 연식의 차를 빌려줄것으로 예상했는데, 아직 1만키로도 되지않은 새차를 빌려줬다.(비수기라 그런가?) 새차라서 기분이 좋기도 하고, 더 부담이 되기도 했다. '사고나면 안된다... 조심하자 조심...'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걸자 긴장감은 더 커졌다. 인생 첫 좌측통행 운전이다. 운전석 위치도 반대고 모든게 반대다. 처음 좌측 통행을 경험하는 모든 사람들이 깜빡이 키려다가 와이퍼를 작동시킨다던데 나 역시 그랬다. 알고도 어쩔 수 없다. 몸이 이미 그렇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운전석이 반대인 차에 익숙해질 겸, 좌측통행에 대한 감도 조금 잡아볼 겸, 주차장을 몇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조심스레 움직이는데 와이프가 카메라를 들이밀었다. 아마 여행의 시작이자 나의 첫 좌측통행 운전을 기록하고 싶었나보다. "가만히있어!" 사실 정확한 단어는 기억이 안난다. 와이프도 아차 싶었는지 바로 카메라를 끄고 자세를 바로 했다.


운전은 모든게 어색했다. 새차라 그런지 악셀을 조금만 밟아도 속도가 확 올라갔고, 브레이크도 예민해서 아주 약간 밟았다 생각했는데 확 멈췄다. 분명 내가 평소 운전하던 차와 크기도 비슷한데, 좌우 운전석 위치가 바꼈다는 이유만으로 차량 간격에 대한 감각이 아예 사라졌다.


'옆에 닿을까? 괜찮을까? 닿을것 같은데 속도를 줄이고 사이드미러를 보자. 앗 브레이크가 너무 잘들어서 확 멈추네, 다시 천천히 출발하자, 앗 사이드미러 체크하는걸 깜빡했네, 옆에 닿으려나? 다시 멈추자.'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내 앞을 지나가는 차를 따라 주차장 밖으로 나섰다.


"어 오빠 주차장 몇바퀴 돌면서 연습하기로 한거 아니었어?", "아 맞다..." 지금 운전실력으로는 차를 돌려 다시 주차장에 돌아가지도 못한다. 이렇게 된거 일단 출발하자. 나를 믿고 천천히 가보자. 우린 그렇게 바로 숙소로 향했다.



무사히 숙소에 도착해서 찍은 풍경


역시 실전만큼 좋은 연습이 없다고 하던가. 숙소에 도착할 즈음엔 좌측통행 운전이 많이 자연스러워졌다. 숙소에 무사히 도착해서 주차를 완료하자 긴장했던 몸이 녹아내렸다. 몸이 녹아내려 차에서 내릴수가 없었다. 이대로 잠들고 싶었지만 결국 차에서 내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우린 숙소에 짐을 풀고 바로 중심지로 갔다. 물론 걸어서 갔다. 운전할 땐 긴장해서 보지 못했던 풍경들을 눈에 가득 담으며 걸었다. 평화로웠다. 처음 운전할때 소리쳤던 순간을 곱씹으며 웃기도 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가벼운 시내 구경은 어제 이미 했고, 오늘은 반지의 제왕 촬영 장소로 유명한 천국의 길에 갔어야 했다. 하지만 이런게 여행의 묘미 아니겠는가? 아쉬운 마음은 접고 오늘을 집중하기로 했다.




퀸스타운 시내를 가볍게 둘러보며 우리가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퍼그버거다. 퀸스타운에 방문하면 꼭 먹어봐야하는 수제버거 집이라나? 구글 지도 리뷰가 자그만치 2만개가 넘어가는 곳이다. 아니나 다를까 버그버거에 도착하니 사람이 정말 많았다. 순번을 기다려 나는 더블패티가 두툼한 버거를 와이프는 파인애플이 들어간 버거를 골랐다. 주문을 기다리는 동안 근처 마트에서 음료도 사왔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바닐라맛 코카콜라! 무슨 맛일지 궁금했다.


우린 주문한 버거를 가지고 호수가 잘 보이는곳에 자리잡았다. 같이 먹고 싶은지 오리부부도 다가왔다. 난 오리들에게 조금씩 먹이를 주고 싶었지만 와이프가 주지 말라고 해서 참았다. 아쉬웠다. 그래도 평화로운 신혼여행을 위해선 와이프말을 잘 들어야지 않겠는가? 참고로 햄버거는 내가 고른 버거보다 와이프 버거가 더 맛있었고 바닐라 콜라는 최악이었다.


날씨 운이 따르지 않은걸까.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배는 부른데 비도오고, 날씨도 춥고, 몸도 무겁고, 조금씩 피곤함이 찾아왔다. 시내 구석구석을 돌아보진 못했지만 어쩔 수 없이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앉아있으니 뭔가 아쉬웠다. 몸이 점점 더 피곤하고 무거워지는게 느껴졌지만, 이대로 긴장을 풀면 오늘 하루가 그대로 사라질 것 같았다. 이왕 이렇게 된거 차를타고 떠나보자. 원래 오늘의 계획이었던 반지의 제왕 촬영 장소로 가보자. 구글지도로 검색하니 1시간 정도 거리였다. 그래! 좌측통행에 더 익숙해질 겸 바로 출발하자!


뉴질랜드 여행의 진가는 역시 드라이브다. 마주오는 차량이 나타날 때마다 역주행 차량이 오는줄 알고 문득문득 놀라긴 했지만, 운전이 조금 익숙해지니 창밖을 볼 여유가 생겼다. 시시각각 변하는 뉴질랜드의 풍경에 계속 감탄만 나왔다. 와이프도 옆에서 계속 풍경 촬영을 멈추지 않았다. 모든 곳이 촬영 스팟이었고, 멈출수 있는 공간이 나오면 무조건 멈추고 구경했다.



그렇게 달리길 30분, 그동안 쌓였던 피로가 드디어 터졌다. 아직은 어색한 좌측통행의 긴장감, 뉴질랜드 풍경의 도파민, 다 필요없었다. 그 모든것을 이기고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갓길이 나올때마다 조금씩 쉬며 목적지로 향했지만, 결국 깔끔하게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욕심내지 말자. 오늘 하루만 있는게 아니니깐.


숙소로 돌아가는 길, 마지막으로 잠시 마트에 들려 저녁식사거리를 샀다. 공항 노숙부터 이어졌던 길었던 하루가 드디어 끝나간다. 제대로 쉬고 내일부터 또 제대로 즐기자고 다짐했다. 가볍게 저녁을 해먹고 다음날을 위해 우리 둘 모두 일찍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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