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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에 와서 읽은 이야기

세종 꽤 좋지 아니한가?

by 뭐할래

세종에 정착한지 8달째다.


그냥 하루하루 적당히 살고 있다. 적당히 일에 몰입하고, 적당히 그 일에서 빠져나오면서.


세종에 와서 자취를 하면서 좋은점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밥을 먹고, 원하는 소음 수준에서 조용히 책을 볼 수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수도권에 살때 그 좁은 방에서 어떻게 매일매일 지냈었나 싶다. 지금은 이방 저방을 옮겨다니면서, 원하는 음악을 블루투스 스피커로 빵빵하게 틀어두고, 밀리의 서재로 그때그때 원하는 책을 읽으면서, 주말에 특별한 계획이 없으면 금요일 퇴근후 교보문고에서 밀리에는 없는 신간을 하나씩 사서 주말을 보내는게 행복하다.


영화관에 가고 싶을때는 보고싶은 영화를 구매해서 노트북을 빔프로젝트에 연결하고 원하는 조도로 불을 맞추면 원할때마다 자유롭게 영화를 볼수 있다. 운동을 하고 싶으면 바로앞에 천변에서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탈 수 있고, 헬스장에 갈 수 있다. (크로스핏은 없지만..) 평일에는 반강제적으로 주어지는 식단을 받아들거나 다른이의 손에 이끌려 외식을 하는 경우도 꽤 있지만, 주말만큼은 원하는 식단으로 원하는 빈도만큼 먹으면서 풍족감을 느낄수 있다.


적어놓고 보니까 자유로운 삶이 행복에 참 중요한거 같다. 그런면에서 세종은 나에게 행복한 도시가 아닐까 싶다. 서울보다 더 넓은 공간에서, 도시 전체의 평균연령이 낮아 요즘 그 보기힘들다는 10대 어린아이의 동심을 느끼면서, 수도권에선 불가능한 녹지에 둘러싸여 지내는 삶을 살 수 있는 도시다. 종종 서울에 직장이 많아서 거기에 살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안타까울때도 있다.


최근 스토너라는 소설을 읽었다. 유튜브 알고리즘이 슬슬 새로운 컨텐츠와 유튜버를 추천하는데 힘에 부쳐하는 와중에, 책과 영화 평론에서 오아시스같은 이동진 평론가님이 추천하셔서 처음 읽게됐다. 평론가님이 추천한 책은 두 사람의 인터네셔널, 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졌다, 예술도둑 등 꽤 많이 읽어봤는데 솔직히 크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이 책 역시 처음 읽을때는 책이 차암 심심한 느낌이였다. SF적 요소가 있는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특별하거나 비범하지도 않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건이 있지도 않고 감정적 묘사가 굉장히 섬세하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서, 다읽어가면서 느꼈던 울림은 꽤 컸었던 거 같다. 일과 사랑, 가정에 있어서 어디하나 특출나지는 않은 인간이, 정말 지극히 일반적으로 느낄수 있는 감정을 일생에 걸쳐서 나열하는데 시대적 공간적 배경이 매우 다른 곳에서 살고 있는 나도 공감이 됐다. 작가의 문체가 뛰어나서겠지? 현실적이고 평범한 주인공이 20대때 몇몇 분야에서 열정을 보이고, 그 열정을 죽이며 사회와 가정의 쳇바퀴 속에서 흑백의 삶을 살다가, 다시 그 열정을 불태우다가, 말년에 그냥 그저그렇지만, 그렇다고 결코 쉬워보이지 않았던 그 '그저그런 삶'을 정리하고 죽는 모습이 참 안쓰러우면서 대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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