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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미술학원에 등록한 이유는 꼬맹이 너 때문이었어.

by 보니또글밥상

언니가 성인미술학원에 등록해서 그림을 배운 적이 있었다는 걸 넌 알고 있니?

그 이유는 바로 너였어.


네가 수술을 받고 나도 너를 보살피느라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는데 순간 너를 그림으로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야.


솔직히 언니가 그림을 정말 못 그리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달만 그림을 배우면 너를 그릴 수 있다는 아주 엄청난 착각을 했었어...

꼬매이 그림.jpg

처음 성인미술학원에 등록하러 간 날.

너의 이 사진을 보여주며 너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는 말을 했었지.


그래서 얼마 정도 그림을 배우면 너를 그릴 수 있을지 물으니

최소한 6개월은 배워야 한다고 하더라.


헉.. 6개월...

하긴 내가 워낙에 기초도 없고 솜씨도 없으니 그 정도 기간을 걸리겠구나라고 생각하고 바로 등록을 해서

기초부터 배웠어.


데생부터 배웠는데 생각보다 어렵더라.

언니가 고등학교 이후로 그림이라는 것을 그려본 적이 없다 보니...

그래도 매주 1회 2시간씩 그림을 배웠지.

꼬맹이 넥카라.jpg

언니가 그림을 배우던 계절이 더운 여름이었어.

내가 그림을 배우고 집에 오면 넌 이렇게 넥카라를 베고 자고 있기도 했는데

가끔은 저렇게 선풍기를 베고 자기도 해서 귀엽기도 했지만

배에는 수술 자국이 남아 있어서 그 모습을 보는 마음은 안타깝기도 했었지.


아무튼 그렇게 언니는 두 달 정도를 그림을 배웠어.

그런데 생각보다 진도가 안 나가더라.

내가 소질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내가 일 하고 너 보살핀다고 집에서 연습을 많이 못해서 더 진도가 안 나가는 것도 있었던 것 같아.


생각보다 진전이 없는 날 본 미술 학원 선생님이 데생은 생각보다 어렵고 지루해서 사람들이 오래 못한다고 나보고 유화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시더라.


차라리 그렇게 할걸...

언니는 연필로 너를 그려보겠다는 의지를 다시 내보이며 좀 더 해보겠다고 했지.

우산 그림.jpg

언니가 미술 학원에 다니면서 선생님이 가르쳐주고 따라 그려보라고 한 그림이 몇 개 있었는데

그나마 이 <우산 그림>이 제일 나은 거야...

꼬맹이가 이 그림 보고 웃고 있겠네...

"와... 언니... 너무한다. 진따 그림 못 그리네?"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이때 즈음부터 언니가 아프기 시작했어.

일 하기도 힘들 만큼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퇴사를 했고

결국 성인미술학원은 두 달만 다니고 더 이상 다니지 못했지.

그래서 너를 그려보겠다는 욕심은 끝내 지키지 못했는데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 있다.


오늘 문득 사진첩을 뒤져보다가 이 그림 사진이 보여서 그리고 내가 성인미술학원에 등록한 이유가 너였다는 이유가 생각나서 오늘도 이렇게 글로 남겨본다.


언니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언니는 네가 없는 일상생활에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어.

언니는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너는 너의 별에서 너는 어떤 시간을 보내며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다음에 날 찾아올 때는 내가 궁금해하는 너의 모든 것들을 답해주길 바라~^^

그러려면 매일 언니를 찾아와야 할지도~ㅎㅎ


오늘도 너의 별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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