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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Sep 02. 2020

그거 약 아닌데.

"마음을 좀 편하게 가질 필요가 있어요."

오후가 되면 다음날 진행될 '검사 진행 안내문'을 받게 되었다. 

"내일은 몇 시에 이 검사가 예약되어있어요. 이 검사는 어디를 보는 검사이고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거예요."

힘들지 않게 스케줄을 조절해 줄 거라는 수간호사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일정은 하루에 힘든 검사 1개, 간단한 검사 1~2개로 늘 규칙적으로 섞여있었다.

덕분에 힘든 검사(약물을 투여해야 하는 검사와 금식) 한 가지만 끝나면 그 외에는 조금 편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입원하고 주말이 지나자 본격적인 검사가 시작되었다.

오전에 유방촬영과 폐기능 검사, 오후에는 PET 검사가 있었는데 유방촬영과 폐기능 검사는 어렵지 않게 끝났다.

그리고 암 진단에 가장 중요하다는 PET 검사를 남겨두고 있었는데 너무 긴장되어 다리가 덜덜 떨렸다.

한쪽 다리를 떨고 있으니 옆에 환자가 복 나간다며 나를 만류했고 다른 환자들은 수술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 현실적인 수술담을 들으며 애써 긴장을 내려놓았다.


시간은 흐르고, 환자이송 직원이 와서 나를 검사실로 데리고 갔다.

검사실에 접수하니 PET-CT를 찍기 전 방사선 의약품을 먼저 맞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바로 옆 주사실에 들어가니 남자 의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지시대로 의자에 앉아 인적사항을 확인했고 의사는 내 혈관에 짧은 주삿바늘을 꽂으며 불편하지 않냐 물었다. 그는 방사선 약품이 혈관 밖으로 새어나가면 절대 안 된다고 몇 번의 주의를 주었고 바늘이 불편하지 않은지 재차 확인했다.

내가 괜찮다 하니 의사는 투명한 액체가 담긴 커다란 주사기를 내 몸에 꽂혀있던 바늘에 연결했고 혈관에 천천히 그 액체를 흘려보냈다.


이상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혈관에 지나가는 그 느낌이 이상했다. 그리고 그 투명한 액체가 다 들어가고 나니 갑자기 머리가 띵- 하게 어지럽기 시작했다. 바닥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빙글빙글 돌아 이러다 의자에서 넘어지겠다 싶었다. 나는 곧 쓰러질 것처럼 책상 모서리를 손으로 꽉 잡았다.

이내 나는 가녀리게 의사에게 말했다.

"아.. 저 이거 머리가 너무 어지러운데요. 어... 너무 어지러운데. 원래 이런 거예요?"


그러자 분주하게 뭔가를 하고 있던 의사는 내 쪽으로 몸을 휙 돌리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어지러우세요? 어~ 그럼 안되는데. 그거 어지러우면 안 되는 건데~"


내가 너무 놀라 의사를 쳐다보고 있노라니 의사는 다시 몸을 돌려 분주하게 하던 일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거 식염수예요. 진짜 약 넣기 전에 혈관 잘 잡혔는지 확인하려고 넣은 건데~ 식염수 넣고 어지러우면 안 되겠죠?"


"아~~~... 식염수구나... 그렇구나..."


순간 어지러움은 어디로 갔는지, 갑자기 괜찮아진 나는 자세를 반듯하게 고쳐 앉았지만 고개는 들 수 없었다. 얼굴은 이미 빨개진듯하고 손에 땀은 났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대화가 오간 뒤 의사가 날 보며 한마디 더 했다.

"마음을~ 조금 편하게 가질 필요가 있어요. 검사받을 때는 그게 좀 힘드시겠지만."


'맞다. 마음을 좀 편하게 가져야지.'

의사선생님의 말이 진리다 생각하며 고개를 들었는데 그때 의사는 바쁘게 무언가를 착용했다.

흡사 오븐장갑 같은 장갑을 끼고 머리엔 두툼한 고글 비슷한 안경을 끼고...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것들을 착용한 의사를 보았을 때 나는 이 생각을 했다.

'우와... 완전 무장하셨네...'

 

후에 의사는 아주 작은 약병을 어디선가 꺼내어 조심히 내 혈관에 천천히 흘려보냈고 괜찮냐며 계속 내게 확인했다.




방사선 액체를 내 몸에 다 넣고 나면 한 시간 정도 누워있어야 했다. 그 약물이 내 몸에 골고루 퍼질 수 있도록... 누워있으면서 별 생각을 다 했다.


'의사 선생님은 완전 무장해야 하는 독한 약물을, 나는 내 몸에 넣고 있구나...'

'저 독한 약을 매일 만지고 봐야 하니 의사 선생님들도 피폭 심하려나...'



이 날 처음으로 금식이 시작되었다.

PET 검사를 시작으로...

이후 퇴원할 때까지 하루에 반나절은 항상 금식이었다.


CT, MRI, 위내시경, 대장내시경이 다 금식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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