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젊은 환자를 보는 게 처음이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선뜻 말을 건넬 수는 없었다. 머리카락이 많이 남지 않은... 모자를 푹 눌러쓴 그녀는 살짝 지쳐 보였다.
침대 커튼을 치지 않은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내가 암환자인지 아닌지 알 수 없을 터였다. 암환자는 암환자가 아닌 사람에게 말을 걸 여유가 없다. 서로 부담이 될 테니까. 때문에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그녀의 옆에는 언제나 엄마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의 엄마는 딸을 지극정성으로 돌봤는데 항암을 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딸을 위해 배달음식을 받아오거나 포장을 해오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딸이 불편해하는 것이 있다면 그녀의 엄마는 언제든 데스크로 달려갔고 간호사가 바쁘면 직접 해결책을 찾아오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의 항암 일정 5박 6일 동안 그녀의 엄마는 단 하루도 딸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보호자 없는 환자였다. 친정아빠한테는 내가 암에 걸렸다 말하지도 않은 상태였고 하나뿐인 언니는 지구 반대편에 가 있었다. 가족이라곤 그들이 전부였다. 가까운 친척도 없었다.
내겐 남편과 시댁이 있었지만 그 든든함은 내 아이가 가질 수는 있어도 나는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내 보호자는 나였다. 고등학생 때부터 그랬다. 그것이 아쉬운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조금 달랐다. 살짝 아쉬웠다. 폐렴으로 입원한 것도 아니고 골절 수술로 입원한 것도 아닌, 암으로 입원한 것이니 옆에 사람이 필요했다.
'누군가 옆에 있다면 검사 경험을 얘기할 수 있을 텐데...'
'누군가 옆에 있다면 입맛 없다고 투정 부릴 수 있을 텐데...'
'누군가 옆에 있다면 나쁜 결과가 나오더라도 견딜 수 있을 텐데...'
'누군가 옆에 있다면... 누군가 옆에 있다면...'
말 그대로 옆에 누군가 없는 게 아쉬웠다.
6살 이후로 엄마라는 존재를 가져본 적도 없거니와 그 전에도 딱히 느껴본 적 없는 존재이기에 콕 집어 엄마라는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었다. 때문에 '엄마가 있었으면'이 아니라, 그냥 어른 사람 아무나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 입원하면서 느낀 아쉬움은 이 정도였다.
하지만 딸에게 지극정성인 그녀의 엄마를 보다 보니 마음에서 어떤 것이 느껴졌다. 아플 정도로 강렬하게.
'나도 갖고 싶다. 엄마 사람'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하는 것처럼 엄마사람도 나를 사랑해주는 것일까? 나한테 엄마가 있다면 내 아이가 나의 보호를 받듯 나도 엄마한테 보호받을 수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