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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Sep 07. 2020

검사, 검사, 검사

그리고 나약함

예전엔 CT와 MRI 검사가 힘들지 않았다. 굵은 주사 바늘을 꽂는 게 아팠을 뿐 그 외에 어려운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때 MRI를 찍고 나서 든 생각은...'앞으로 MRI는 찍기 싫다.'였다.

폐쇄공포증이 있는 것도 아닌데 꽤 힘든 시간이었다.


PET과 CT를 찍으며 계속 혈관에 약물을 넣어서 그런가 MRI 조영제가 들어갈 때 팔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그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왼쪽 팔에 불이 붙는다면 이런 아픔이겠구나 싶었다.

MRI는 통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시간이 길기에 손에 비상벨을 쥐어준다. '이거 안 주셔도 되는데'라고 생각했던 나는 조영제가 혈관에 들어갈 때 너무 놀라 그 비상벨을 누를 뻔했다. 아마도 타들어가는 아픔이 3초만 더 지속됐다면 그 벨을 눌렀을 것이다.




위, 대장내시경은 수면으로 되어있었다.

수면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지만 의외로 과정이 험난했다.

대장내시경 하기 전 먹어야 하는 세장제가 문제였다. 처음 먹어보는 그 물약은 너무 힘들고 난감해서 그 날을 절대 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물약은 500mL 8병이 되는 양이었고 간호사는 오전 일찍 그 약을 주며 12시가 되기 전에 다 마셔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4시간도 안 남았는데... 8병을 다? 난 물도 하루에 한잔 마실까 말까 한 사람인데... 4시간 동안 4리터를 어떻게 마시나...'


그때부터 나는 물약과 전쟁을 했다. 두병까지는 괜찮았다. 세병째 마시는 순간, 정말 그 찰나의 순간 입에서 모든 것을 뿜어냈고... 그 후로는 검은 봉지를 손에 쥐고 마셨다. 5병째부터는 증상이 더 심해져 서있는 상태로는 마시지도 못했다. 그때부턴 그냥 변기통에 앉아서 마셨다. 입엔 검은 봉지를 대고 엉덩이는 변기통에 댄 채로...

그럼에도 다 마시지 못해 간호사는 난리가 났고 결국 검사는 뒤로 미루어졌다. 시간이 조금 생겼으니 다 드시라고 말하는 간호사에게 죄송하다고 감사하다고 말하고 나머지 약을 꾸역꾸역 마셨다. 탈진 상태의 나를 환자 이송 직원이 데리러 온 후 나는 직원이 가져온 이동침대에 몸을 눕힌 뒤 검사장으로 옮겨졌다. 환자를 이송할 때는 보통 휠체어를 갖고 오는데 그 날 따라 직원은 침대를 끌고 왔다. 알고 있던 걸까. 내가 탈진 상태라는 것을?


대장내시경 검사실로 들어간 나는 진정제를 맞고 잠들었고 그 후 위내시경을 받기 위해 이동을 했다. 사실 기억은 안 나지만 의료진과 검사실이 다르니 이동을 했다고 들었다.

이후 병실로 옮겨진 후에도 계속 잠들어 있었는데 간호사가 내 혈압을 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몽롱한 정신에 나는 간호사에게 물었다.

"간호사님~ 혹시 저 검사하면서 뭐 나온 거 있대요?"

내시경에 안 좋은 것이 발견되었을까 봐 무섭고 궁금했다. 몽롱함에도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간호사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하나님은~ 검사하면서 뭐 떼낸 거 없다고 들었는데요? 그러면 좋은 거예요~"

간호사의 즐거운 말투가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한참을 더 잘 수 있었다.




아주 오랜만에 잠을 푹 자고 일어나 보니 저녁 시간이었다. 배식이 이루어지고 모처럼 밥을 먹어볼까 생각하던 찰나, 전공의가 빠른 걸음으로 병실로 들어왔다.

 

"일하나님. 내시경 잘 끝났고~ 검사하면서 조직검사 보내거나 그런 건 없거든요. 깨끗했대요. 위랑 대장은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고~ 음... 근데~ 내일 유방쪽 재검사 있어요. 조금 더 정밀하게 보는 검사인데~ 유방 한쪽에 석회화가 있어서 조금 더 자세히 봐야 할 것 같다고 하거든요. 예약해놨으니까 내일 아침 일찍 하고 오시면 될 것 같아요. 이게 암인지, 암이 될 수 있는 건지... 일단 봐야 하니까 검사 다시 받고 오세요."


"재검사면... 유방 쪽에 전이가 있다거나... 그런 건가요?"


"아니요. 그건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을 것 같고 일단은 조금 의심되는 게 있다 정도니까요. 너무 걱정 마시고 마음 편하게 받고 오세요. 어려운 검사 아니니까..."


그렇게 전공의는 묵직한 한마디를 던지고 가버렸다. 그리고 그 묵직함을 온몸으로 맞은 나는 다시금 어두운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멍하니 앞에 놓인 식판을 바라보며 전공의가 한 말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식판에 담긴 음식은 그 날의 첫 식사였지만 한 숟가락도 뜨지 못했다.

그날 밤, 나는 커튼을 쳐놓고 인터넷을 뒤적였다. 모두가 잠든 컴컴한 새벽에도 내 핸드폰은 켜져 있었다.

유방암 증상, 전이, 재검사 방법, 석회화 등등... 

끝내 나는 새벽 내내 최악의 경우들을 찾아내고 생각하느라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전공의는 그저 말했다. 재검사가 나왔기에 알려준 것뿐이고 사실만을 말해 주었다.

과장하여 말하거나 어두운 말투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가볍게, 간단하게 말해주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사소한 말 한마디에 낭떠러지에 떨어졌다가, 다시 기어올라왔다가... 다시 떨어지곤 했다.


나약한 나 자신이 너무 싫었다. 그날 밤엔... 확정도 아닌 일에 울고 있는 내가 너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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