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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Sep 09. 2020

이제, 집으로 가는 거야.

완전한 암환자가 되어.

아침 일찍 재검사를 마치고 병실로 돌아왔다. 심란한 마음으로 침대에 앉아있으니 곧이어 전공의가 나를 찾아왔다.


"유방촬영 끝나셨죠? 이제 검사 한두 개 남은 것 같던데? 남은 검사 하고 이상 없으면 내일은 퇴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 그리고 방광경 검사는 안 할 것 같아요. 교수님께서 신우조영술 결과 이상 없으면 방광경 빼라고 하셨거든요~"


우앗~~~ 아이고. 감사합니다.

입원초부터 '방광경을 꼭 해야 하냐 진짜 필요한 검사냐' 징징댔었는데 그 검사를 빼주다니.

나는 혼자 신나하고 안도하다가 급 생각난 질문을 전공의에게 했다.


"근데 저 pet검사 결과 나왔어요? 다른 검사들도 결과가 나왔는지...말씀이 없으셔서.."


"아~~ pet검사는 결과 아직 안 나왔어요. 보통 그 검사는 시간이 좀 걸려서... 저희끼리 봤을 때는 별거 없어 보이긴 했거든요. 근데 분석하는 분들이 따로 계시니까 정확한 건 저희도 받아봐야 알아요. 오늘은 결과 나올 것 같긴 한데~ 음... 일단 다른 검사 결과는 다 괜찮아요. 아직까지 이상 있다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전공의는 그렇게 말한 후 차트를 보며 금식을 계속하라 당부했고 최대한 빨리 퇴원해 보자 말하며 병실을 급하게 빠져나갔다.


나는 한동안 할 일이 없었다. 병실에서 빈둥거리다가 휴게소와 지하도 갔다가 다시 병실로 올라와 시간 죽이기를 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 멀리서 급한 발걸음을 울리며 전공의가 나를 찾아왔다.

"일하나님~ 우리 오늘 퇴원합시다! 검사 하나만 끝나면 퇴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일 하려던 검사 오늘로 당겼어요~"


"오늘요? 저 오늘 퇴원해요? 아고... 감사합니다."


"다른 검사들이 정상으로 나와서 뭐~ 추가 검사는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신우조영술 한 개만 더 하고~ 그거 이상 없으면 퇴원하실 거예요. 이따가 검사 결과 다 설명드릴 거니까 그거 듣고 수술 날짜 잡으시면 돼요."


말이 끝나자 전공의는 바쁘게 또 어디론가 사라졌고 잠시 후 환자 이송 직원이 찾아왔다.




정신없이 경정맥 신우조영술 검사가 끝났다. 정말 말 그대로 정신없이 급하게 검사를 받았고 병실로 돌아와 보니 오후 3시가 지나있었다. 아침도 안 먹고 점심도 안 먹고 배가 고플만했지만 빨리 퇴원하고 싶은 초조함에, 그리고 결과를 듣는다는 불안감에 배고픔 따위는 느끼지도 못했다.

3시 반이 지나고... 간호사가 찾아와 퇴원이 결정됐다고 했다. 그리고 나를 복도 어디론가 안내했는데 그곳에는 앳된 여의사가 앉아있었다. 처음 보는 의사였고 앞에는 커다란 컴퓨터들이 놓여있었다.

나는 앳된 의사가 밀어주는 의자에 천천히 앉아 그 의사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의사가 말했다.


"일하나님 오늘 퇴원하실 거예요. 방금 교수님 오더 떨어졌거든요. 우선 검사 결과 말씀드릴게요."


"아~ 저기... 잠깐... 제가 녹음 좀 해도 될까요? 지금 들으면 정신이 없을 것 같아서요... 죄송한데.. 녹음을 좀."


"아~ 네. 그렇게 하세요~ 많이들 녹음하시더라고요. 천천히 말씀드릴게요~"


나는 핸드폰을 꺼내 녹음을 준비했고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보여주며 다시 설명을 시작했다.


"다른 검사들은 대체적으로 양호하게 나왔어요. 의심되는 거라든지 암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은 나오지 않았고 내시경 같은 경우에도 깨끗했고, 청력 폐 심장 다 정상으로 나왔고요. 오늘 한 검사들도 결과 괜찮았어요. 근데~ 여기 보시면... 이게 지금 PET검사 한 사진이거든요. 여기 부분... 여기 자궁 쪽에 어둡게 나온 부분이 암이라고 생각되는 건데 이걸로 봤을 때는 크기가 7미리 정도? 1센티 넘지 않는 걸로 보여요. 이게 암일 거고... 그리고 주변에 임파선이 있는데 여기 임파선이 조금 부어있어요. 이게 보통은 암으로 붓는 경우가 있고 아니면 피곤하다던가 수술 이후에 붓는 경우도 있거든요. 일하나님 얼마 전에 소파술 하셨잖아요. 그것 때문에 부은걸 수도 있어요. PET검사는 암뿐만 아니라 염증까지 다 보이거든요. 그래서 이게 단순 염증인지 암인지는 저희가 수술을 하면서 볼 거예요. 일단 지금 검사 결과로는 1기 중반 정도로 보고 있어요."


"선생님. 근데~ 임파선에 있는 게 암이라고 하면 전이... 전이가 됐다는 건가요?"


"... 네... 보통 임파선을 타고 전이가 되거든요. 그래서 수술할 때 자궁 주변 임파선을 여러 개 뗄 거예요. 그 떼낸 샘플을 긴급으로 조직검사를 보내는데 결과가 바로 나와요. 그 결과를 보고 수술을 진행할 거고 긴급으로 보낸 조직에서 악성이 나왔다 라고 하면 수술 범위나 그런 게 바뀔 수는 있어요. 그래서 아직은... 몇 기다 라는 것은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어요. 지금 말씀드리는 건 예상 병기고요 정확한 건 수술을 해봐야 알 수 있어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근데 제가 자궁내막암이에요, 자궁경부암이에요?"


"지금 등록되어있는 건 자궁내막암이에요. 근데 위치가 워낙 애매해서~ 음... 일단 그렇게 알고 계시면 돼요. 그리고 수술 날짜 말씀드릴게요. 지금 제일 빨리 할 수 있는 날이 한 달 뒤거든요. 그 전에는 수술이 꽉 차서 안될 것 같고 한 달 후로만 수술이 가능해요. 그러니까 달력 보면... 6월 말에 수술하시게 될 거예요."


"한 달 후에 수술해도 괜찮아요? 늦게 하면 전이된다거나 그렇지는 않아요?"


"네~ 불안하시긴 하겠지만... 근데 이게 한 달 만에 전이가 된다거나 악화된다거나 그럴 상황은 아니에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모든 것이 결정되었다.

최종 검사 결과를 들었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퇴원 잘하시라고, 수술 전까지 건강관리 잘하시라며 의사는 내게 인사를 건넸다.




병실 안의 환자들은 힘들어하던 내게 말했었다.

검사 다 끝나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고... 몇 기지 알고 나면 또 편해진다고. 수술 날짜 받아놓으면 더 편해진다고...

난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들에게 위로는 받았지만 그 말을 믿을 수는 없었다. 몇 기인지 알고 나면 편해진다니... 수술 날짜 잡아놓으면 편해진다니... 어떻게? 난 더 불안할 것 같은데...

그들의 그 말은, 그저 그 시기를 지나 보낸 자들의 미화된 기억일 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수술 날짜를 받고 보니 생각보다 평온했다. 떨리긴 했지만 호들갑스럽지는 않았고 뭔가 후련하기까지 했다.

'이제 수술만 하면 되는구나. 나머진 병원에서 알아서 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1기 아니면 3기. 온전치 않은 마음이었지만 나쁜 생각은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계속 주문을 외웠다. 1기일 것이다. 1기일 것이다. 1기일 것이다...

더 이상의 스트레스로 암세포를 키우고 싶지 않았다. 두려움을 안고 전전긍긍 하기엔 수술까지 남은 시간이 너무 길었다.



나는 이제 완전한 암환자가 되었다. 일반인도 아닌, 암환자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끼여 혼란스러웠던 마음은 이제 없어졌다.

그렇게 나는, 암환자인 나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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