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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Sep 14. 2020

여행 가는 거 아닙니다. 장기 떼러 갑니다.

부러움 금지

오늘도 여전히 날씨는 맑고 아이는 밝구나.


아이는 그동안 실컷 여행을 다녀서 그런지 행동이 과해지고 들떠 있었다. 일주일동안 어린이집도 안 가고 엄마 아빠와 놀러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다.


아이의 짐을 시댁에 보내기 위해 아침부터 옷을 정리했다. 아이의 작은 옷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참...

옷을 수납함에 넣으며 살짝 눈물을 흘리고 있으니 천지 구분 못하는 5살 아들이 신나게 달려와 소리쳤다.

"엄마! 눈에 파리 들어갔어? 파리 때문에 눈물 나? 나도 보자!"

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같은 놈... 그렇다면 나도 신나게 말해주마! "파리 아니고 먼지! 파리는 커서 눈에 못 들어가~"




드디어 수술하는 날이 다가왔다. 내일이면 입원이다.

수술을 앞두고 나니 덜컥 겁이 났다. 아니, 겁은 계속 나고 있었다. 아이와 추억을 만드느라 떠올리지 않았을 뿐. 이제와 두려움을 한꺼번에 느끼려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소파에 앉아 한쪽 다리를 덜덜 떨었다. 다리 떨면 복 나간다는데... 나갈 복은 이미 나갔으니까 상관없다.


남편과 분리수거 놀이를 하고 있 아들을 가만히 바라보다 불러내어 천천히 말했다.

"현아~~ 엄마 내일 병원 가는 거 알고 있지? 우리 아들 내일 어린이집 데려다주고 엄마는 병원에 갈 거야. 병원에 가서 엄마 뱃속에 있는 나쁜 세균 다 없애고 올게. 알았지? 엄마가 이번에 조금 오래 있을 수도 있는데 그래도 빨리 나아서 올게. 잘 자고~잘 먹고~ 잘 놀고 있어! 엄마가 전화할게. 그리고 이번엔 아빠도 엄마랑 같이 가야 해서 자주 못 볼 수도 있어. 하지만 주말엔 볼 수 있을 거야. 엄마랑 아빠랑 최대한 빨리 올 테니까 잘 놀고 있어! 알았지?"


아이는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못 알아들은 건지... 응~ 하며 아빠에게로 다시 뛰어갔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으며 핸드폰에 꽉꽉 채워 넣었다.


다음날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들여보내는데 울컥하고 눈물이 나왔다. 선생님들한테는 그저 근종 수술을 하러 간다고 말해놓은 터였다. 아이를 껴안고 울컥하는 나를 보며 원장선생님은 말했다. "그거~ 근종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도 떼 봤는데 아프지도 않고~~ 괜찮을 거예요~ 아효 걱정을 너무 하시네."


원장님의 말에 나는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아이와 헤어졌고 집으로 돌아와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캐리어 안에는 입원생활에 필요한 생필품들이 들어있었다. 오한을 막아줄 담요, 위생을 위한 욕실 물품, 이어폰, 노트북, 생수, 슬리퍼 등등... 크거나 자잘한 것들이 여행용 캐리어 하나를 가득 채웠다.

남편은 입원할 때 같이 가줄까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혼자 병원에 가겠다 말했고 커다란 캐리어를 끌며 지하철로 향했다.




화창하고 화창해서 한창 여행이 이루어질 시기. 6월. "오늘도 날이 좋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때.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을 탔다. 한정거장...한정거장... 새로운 사람들이 탈 때마다 덜컹거림 속에 힐끔거림이 느껴다. 평일 낮, 캐리어를 끌고 가는 나를 저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예전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었다. '평일에 저렇게 여행 다니고~ 좋겠다. 나도 여행 가고 싶다.'라고...

저 사람들도 내 캐리어를 보면서 생각하겠지. 부럽다고, 자기도 여행 다니고 싶다고.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답답했다. 내 속도 모르면서...

나는 내 캐리어를 부러움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그들에게 얘기해 주고 싶었다.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번에 물리칠 수 있게. 

마음 같아선 확성기에 대고 외치고 싶다. 


"저 여행 가는 거 아닙니다! 자궁 떼러 갑니다! 병원에 수술받으러 가요!!!!"



그러니 부러워하지 말라고.

이 캐리어에는 갈아입을 옷 따위는 없다고, 가방 안에는 구토할 때 필요한 비닐봉지와, 일어나지 못할 것을 대비해 생수와 빨대가 들어있다고, 그리고 부어오를 발을 위한 커다란 슬리퍼가 들어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니 부러워하지 말라고.


...

...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내가 부러워했던 누군가도... 속사정이 있었겠구나.'


그리고 결심했다.

'앞으로는 멀쩡한 사람도 다시 봐야겠다. 건강해 보여도 암환자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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