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에 부응하며 퇴원하기
'교수님도 안 계시고... 어차피 결과도 못 듣는데... 병원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
이런 생각이 슬슬 들 때쯤 전공의가 와서 "일하나님! 우리 내일 퇴원할래요?" 라고 물었다.
나는 그런 전공의에게 되물었다. 나 내일 퇴원해도 되냐고, 진짜 퇴원해도 되는 거냐고.
전공의는 '못할게 뭐 있냐며 다른 사람이었으면 벌써 퇴원했을 거'라고 했다. 운동을 하지 않는 나를 질책하면서. 그녀는 퇴원을 하려면 운동도 좀 하고 소변보는 연습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 소변보는 연습? 변기에 앉으면 그냥 나오는 게 소변 아니었던가...? 연습이 필요한 일이었나?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일단 퇴원이란 말에 신나서 네~ 하고 웃으며 전공의를 보냈다.
드디어 몸 여기저기 달린 줄들을 빼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었다. 움직일 때마다 걸리적거리는 소변줄, 볼 때마다 심란한 피주머니, 어떻게 해도 귀찮은 링거줄. 드디어 해방이다.
이런저런 설렘으로 소변 연습이란 건 까맣게 잊고 남편에게 문자를 보내고 있을 때 간호사가 들어와 무서운 말로 그 연습을 상기시켜 주었다. "일하나님 이제 곧 퇴원하실 것 같던데요? 소변이랑 배액관만 잘 통과하면 퇴원하실 거예요. 배액관은 이 상태라면 빼고 가실 것 같고~~ 소변이 문젠데... 소변은 방법 알려드릴 테니까 물 많이 드시고 꾸준히 연습해주세요. 소변 통과 안되면 내일 퇴원 못할 수도 있어요."
아니~ 왜 자꾸 연습을... 도대체 어떻길래.
소변을 왜 연습해야 하냐는 내 질문에 간호사가 말했다. 내 방광은 지금 기능을 멈췄다고, 수술할 때 힘들었던 방광을 쉬게 하느라 소변줄을 꽂아 놓은 거라고, 그래서 다시 활동을 하려면 연습을 시켜야 하는데 보통 입원환자 10명 중 6명 정도만 성공한다고...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연습을 하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내 소변줄 밸브를 잠갔다.
소변줄을 잠그지 않았을 때는 방광에 있던 물이 수시로 주머니로 흘러갔었다. 하지만 잠그고 나니 물이 흐르지 않았다. 마치 수도꼭지를 잠근 것처럼.
처음에는 뭐가 어렵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자만했다. 내 방광은 바로 적응할 거라고. 빨리 확인하고 싶었다. 내 방광의 활동성을.
그러나 내 기대와 달리, 수액이 들어가고 항생제가 들어가고 물이 한 컵, 두 컵 들어가도 나는 전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럼에도 배는 빵빵해져 소변줄 밸브를 열어보면 어김없이 콸콸하고 주머니에 노란 물이 차올랐다.
방광은 분명 차있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하지만 나는 전혀 느끼지 못했다.
간호사는 들어올 때마다 "일하나님~ 물 좀 드셨어요? 연습하고 계시죠~~? 소변 마려운 것 좀 느껴지세요?"라고 물었고, 나는 매번 "전혀요~ 아무 느낌도 안 나요. 물은 많이 마시는데..."라고 말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났다. 아무 성과도 없이.
다음 날.
아침 일찍 간호사가 들어와 8일 만에 내 소변줄을 제거해 주었다. 몸에 박혀있던 굵은 줄을 빼고 나니 어찌나 시원하던지. 내 몸에 박혀있던 그 줄은 가끔 나를 소름 끼치게 했기에 빼고 나니 살 것 같았다.
그런 나와 달리 간호사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소변보는 연습 계속하셔야 돼요. 일단 빼긴 했는데 오전 중으로 성공 못 하시면 소변줄 다시 껴야 하거든요~그러니까 꾸준히 연습하세요~ 오늘 성공하면 퇴원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퇴원 얘기에 신이 나야 하는데... 나는 앞이 캄캄했다. 요의는 아직도 무소식이고 오늘이라고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희망이 점점 멀어졌다. '오늘은 퇴원 못하겠구나...'
물 한 컵을 마시고 또 한 컵을 마셨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라도 퇴원을 하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겠다. 물을 많이 마신 뒤 느낌은 없지만 병실에 딸린 화장실로 향했다.
간호사가 준 용변 통을 변기 위에 얹고 그 위에 앉아 힘을 주었다. 순간순간 장기들을 꿰맨 실이 터질까 봐 무서웠다. 식은땀이 흘렀다. 5분이 지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지만 소변은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이런거였구나. 방광이 일을 안 한다는 게... 내 방광은 다를 줄 알았는데...'
간호사가 말한 대로 수돗물을 약하게 틀어놨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주먹으로 아랫배를 누르고 아이를 낳듯 힘을 주었다. 그렇게 10분이 더 지났을 즈음, 드디어 몇 방울 똑똑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는 뒤이어 졸졸졸 하고 소변이 나왔다. 성공이었다. 양은 적었지만 드디어 성공했다. 나는 안도의 한 숨을 내쉬며 땀을 닦았다.
그 순간 화장실 밖에서 전공의와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하나님~ 일하나님? ... 일하나님 안 계시나? 어디 가셨지? 보고 가야 되는데... 환자분한테 전화해봐~"
나는 아직 변기통 위에 앉아 있었지만 내 이름을 듣고 대답했다. "저 화장실에 있어요~~"
주섬주섬 옷을 빨리 챙겨 입고 소변을 불투명한 통에 옮겨 담아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놀랍게도 문 바로 앞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의사 서너 명과 간호사들... 교수님이 모친상을 가신 이후 전공의만 왔었는데 오늘은 부교수님부터 시작해 모든 의사가 함께 온 것 같았다. 그들은 일제히 나를, 그리고 내가 들고 있는 소변통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 순간이 너무 당황스러워 문고리를 잡은 채 얼어붙었지만, 부교수님은 아니었다. 그녀는 나와 소변통을 보며 환호했다.
"아~ 일하나님 여기 계셨구나. 그거 소변통 맞죠? 소변보셨어요? 소변 들어있네? 어머~ 소변보셨구나!! 잘됐다!!!"
부교수님은 환호하며 박수를 쳤고 덩달아 옆에 있던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내 소변에 이리 환호해 주는 사람이 있다니. 부끄럽고 당황스러웠지만 왠지 기분은 좋았다. 내 방광이 자랑스러운 기분...이랄까.
부교수님은 깔끔하게 떨어지는 말투로 옆에 의사에게 말했다. "오늘 퇴원할 수 있겠네."
그리고 내게도 똑같은 말을 했다. "오늘 퇴원 잘하세요~"
그렇게 그들은 내게 퇴원이라는 말을 남기고 우르르 병실을 빠져나갔다.
그 후로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간호사가 초음파 기계를 들고 와 방광의 잔뇨를 체크했고 '이 정도면 괜찮을 듯~'하며 내게 통과를 알렸다. 곧바로 전공의가 와서 순식간에 내 장기를 둘러싸고 있는 피주머니도 뽑았다.
그렇게 나는 낮 12시가 되기 전, 퇴원 통보를 받았다.
링거를 빼자마자 급하게 옷을 갈아입고 짐을 챙기고 있으니 아빠가 천천히 하라고, 뭐가 그리 급하냐며 말렸다. 그러나 나는 더 조급하게 말했다.
"소변 한 번 더 보라고 하면 어떡해. 소변 안 나오면 퇴원 취소될 거 아냐~ 그러기 전에 빨리 병원을 나가야 돼."
1층에 가서 퇴원 수속을 끝낸 나는 병실에 올라와 전공의를 기다렸다. 받아야 할 약도 있고 주의사항도 들어야 했다. 침대에 걸터앉아 한쪽 다리를 덜덜 떨며 기다리다 보니 빠른 걸음의 전공의가 드디어 병실로 들어왔다.
그녀는 내게 주의사항을 설명해주며 한아름의 약과 소견서를 주었고 실밥은 동네에서 뽑으라고 했다. 또한 안타까워하며 '결과를 알고 가면 좋겠지만 나쁘지는 않을 것 같으니 집에서 푹 쉬라'는 말도 해주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내게 이 말을 건넸다.
"일하나님. 우리 다시는 보지 말아요!" 라고.
...
그녀는 그때 알고 있었을까, 나의 한 달 후를.
아니면 단지 행운을 빌어주는 말이었을까.
그녀가 어떤 의미로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말을 되새기며 꿈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시는 이 병동에 오지 않아도 될 거라는 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