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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Oct 15. 2020

교수님 학회 가신다고요?

그럼 제 결과는요?

수술하고 6일이 지났을 , 처음 보는 간호사가 병실에 들어와 굉장히 미안한 표정으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는 묵직한 서류를 내밀며 내게 양해를 구할 일이 있다고 했다.


내용인즉슨, 나를 수술해준 교수님이 모친상을 당하급히 휴진을 해야 한다고, 그러니 동의서에 사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 그러셨어요. 교수님 정신없으시겠네요. 어디에 사인하면 될까요?"라고 말하며 서명을 했지만 분위기가 뭔가 석연치 않았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근데... 그럼 교수님 언제 오세요? 저 이제 곧 퇴원이라 결과 들어야 되는데. 다른 선생님이 알려주시나요?"


그 질문에 간호사는 마치 올 것이 왔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일단 결과는 교수님께 들으셔야 할 것 같고요, 근데 교수님이 다음 주부터 학회가 있으세요. 그래서 2주 정도 병원에 안 계시거든요. 그때는 외래도 없고 수술도 없어요. 예약하실 수도 없고..."


"아~~ 그럼 이번에 모친상 다 치르시면 날짜가..."


"모친상 끝나면 바로 학회로 가실 거예요."


"...?... 음?... 그럼 제 결과는 누가 말해줘요? 결과를 못 들어요? 3주 동안?"


"그게... 오늘부터 일정이 밀린 거라서 일하나님이 진료를 보시려면 한 달 정도는 걸릴 것 같아요. 앞에 밀린 분들이 먼저 보셔야 하니까..."


"어떻게 그게... 저 항암 여부를 알아야 하는데 어... 어떻게 한 달 뒤에 결과를 바... 바다... 받아요?"


그 간호사의 말에 나는 너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고 간호사는 전공의가 다시 설명해줄 거라며 급히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전공의가 왔을 때, 나는 조금은 친해진 그녀를 붙잡고 하소연을 해댔다.


"한 달 뒤에 결과를 받으라는게... 지금 저 피 말리려고 그러시는 거죠? 그럼 저는 한 달 동안 제가  몇 기인지 모르는 거잖아요? 수술은 다 했는데 어떻게 결과를 몰라요~~ 선생님... 아~ 진짜... 그건 아니죠~ 저 그냥 다른 교수님이 결과 말씀해주시면 안 돼요? 결과만 들으면 되잖아요... 아니면 선생님들이 말씀해 주시면 안 돼요?"


나는 너무 답답해서 실속 없는 웃음을 계속 해댔고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을 묵묵히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희도 빨리 말씀드리고 싶은데... 이게, 그렇게 안돼요. 항암 여부는 교수님이 혼자 결정하시는 게 아니거든요. 종양학과 선생님들이랑 다른 과 선생님들 같이 상의하결정하는 거라서 일단 담당 교수님이 계셔야 하고 저희는 그 이후에 알 수 있고요. 그래서 미리 말씀 드릴 수가 없어요."


"하하... 하이고~~.. 그럼 한 달 뒤에나 항암을 한다는 거예요? 수술하고 3주 안에는 시작해야 한다고 들었는데...  안에 안 한다는 건 저 항암 안 한다는 뜻이에요?"


"뭐~ 그런 건 아니고요. 한 달 후에 항암을 시작하는 경우도 많아요. 체력이 안 되는 분은 천천히 하기도 하거든요. 일하나님도 지금 상태로는 항암 하기 힘드실 거예요. 너무 마르셔서... 근데... 지금까지 나온 결과를 보기에는 일하나님은 너무 걱정하실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조직검사에서 뭐 나온 것도 없고~ 전이가 된 것 같지는 않거든요. 물론 결과가 정확히 나와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일단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한 달 후에 결과 들으실 텐데 너무 항암에 그렇게 미리 두려워하시고 그러면 못 버티세요... 지금도 못 드시잖아요. 어쨌든 퇴원하면 편하게 쉬시면서 살 좀 찌우세요."


...

전공의는 내가 불안해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혹시나 확실하지 않은 정보를 흘리게 될까 조심스러워하며 말하고 있었다.


그런 전공의에게 더 이상의 푸념은 의미가 없을 듯하여 나는 "네."라고 대답했다.




아빠는 옆에서 나와 전공의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전공의가 나간 후 내게 물어왔다.

"근데 너는 저번에 입원했을 때는 누구랑 있었던 거야? 니 남편이 같이 있었어? 휴가 내고?"


"아니. 나 혼자 있었는데. 검사받으러 입원한건데 남편이 뭐하러 있어. 몸이 불편한 것도 아니고. 혼자 있었지. 일주일 동안."


내 말을 들은 아빠는 이내 헛웃음을 짓더니 황당하다는 말투로 얘기했다.

"검사받고 그럼 결과는 너 혼자 들었던 거야? 아니~ 너는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그걸 혼자 듣고 있어~~ 나쁜 결과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그런 건 본인이 들으면 안 되는 건데. 아빠는 지금 의사 가운만 봐도 가슴이 콩닥거리는데 너는 그걸 어떻게 혼자 들을 생각을 하냐~ 너도 참, 내 딸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 여자들은 너무 독해."




아빠와 이런저런 우스갯소리를 하며 정신을 찾은 나는, 평소에 내가 많이 의지했던 환우가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그 환우는 나보다 언니였고 같은 교수님에 예상 병기도 같아서 나는 곧잘 그녀에게 조잘대곤 했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정말 할 말이 많았다.


"언니! 교수님 얘기 들었어요? 모친상 때문에 아까 가셨다는데... 언니는 결과 나왔어요? 나보다 수술 빨리 했잖아."


"결과 못 들었어. 나는 내일이나 모레쯤 퇴원할 것 같은데 한 달 후에 외래 보러 오라던데? 결과 그때 알려준대. 그리고 실밥은 동네에서 뽑으래... 소견서 써준다고."


"아~ 언니가 나보다 3일 먼저 수술했는데 결과 아직 안 나왔으면 나도 안 나오겠네. 근데 한 달 후에 결과 들으라는 게.. 언니는 괜찮아요? 나는 집에 있으면 진짜 궁금해서 미쳐버릴 것 같은데... 아니~ 교수님 안 계시면 다른 선생님이라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 한 달 동안 불안해서 어떻게 살아~~ ...근데~ 또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항암을 안 할 거니까 늦게 알려주는 거 아닐까? 항암을 해야 하는 환자를 설마 한 달 동안 방치할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모르지 뭐. 병원이 알아서 하겠지. 한 달 후에 해도 되니까 그때 오라는 거 아닐까? 그때 가서 하라고 하면 해야지. 그러니까 너무 궁금해하지 말고, 그냥 한 달간의 휴식이 주어졌다고 생각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푹 쉬어. 나는 그럴 거야."



...

이런... 긍정적인 사람 같으니라고..


나는 사실 그녀가 나와 함께 분개하고 고민하며 속시원히 입에서 폭죽을 터트리기를 바랬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모습을 보여줄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엔 이해가 안 됐다. 왜 그리 심드렁한건지, 사실은 속으로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퇴원하는 날까지 변함이 없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나 또한 그녀의 감정을 쫓아 명상하듯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매번 내 불안을 평온으로 받아치는 그녀 덕분에.




한 달 동안 결과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처음에는.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 충격은 희망으로 바뀌었고, 그 사실로 인해 나는 항암을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물론 스스로 만든 믿음이었지만 그 믿음 덕분에 내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웃으며 보낼 수 있었다.


만약, 항암이 정해진 상태로 퇴원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루를 웃으며 보낼 수 있었을까.



"결과도 모르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집에 가서 먹고 자고 쉬고 해야겠다~~"라고 외치는 내게 아빠는 말했다.


"그래.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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