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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Oct 21. 2020

나 홀로 회복기

괜찮을 줄 알았는데...

병원에서 만난 아주머니들은 내가 퇴원 후 집으로 가는 것을 항상 안타까워하며 말렸다.


"애가 이제 5살이라며~ 아휴. 퇴원하면 무조건 요양병원으로 들어가! 집에 가면 회복 못해~ 5살이면 한창 뛰어오고 안기고... 아이고~ 안돼, 안돼~ 나도 몇 년 전에 자궁 뗐는데 한 달은 힘들어! 애 못 봐! 그러니까 남편한테 말해서 요양병원으로 간다고 해. 한 달만 들어가 있어, 집으로 가지 말고!"


수술 경험이 있는 아주머니들은, 수술 후 아이를 보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설명하고 또 설명했다. 사실 굳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들의 말이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힘들겠지...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내겐 친정이 없었고 몸이 약한 시어머님한테 언제까지 아이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내게 요양병원은 사치였다.




퇴원하는 날.

적어도 그 날 때쯤 되면 편하게 걸을 줄 알았다. 자연스럽게 걸으며 짐가방을 끌 수 있을 거라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낭만이었음을... 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까?


퇴원수속을 하느라 1층을 오간 나는 얼굴이 하얘져 식은땀을 흘리며 병실에 앉아있었다. 7층에서 1층으로 내려갔다 온 것뿐인데 이렇게 힘들다니... 그때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퇴원해도 되는 걸까, 아니야... 퇴원해야지. 집에 가서 쉬는 게 낫지. 근데 퇴원했다가 다시 구급차에 실려오면 어쩌지. 하루만 더 있을까. 아니야, 수속 끝났으니 일단 집에 가보고... 아, 근데 나 지금 엄청 힘든 것 같은데 정말 집에 가도 될까?'


...

그러다 남편이 오고 무언가에 홀린 듯 병원을 떠나버린 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빨래통에 쌓여있는 빨래, 남편이 먹다 남긴 설거지, 가구에 내려앉은 하얀 먼지...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현관에서부터 눈을 감고 방으로 갔어야 했는데...

아니, 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일주일이라도 요양병원에 가있을걸... 아줌마들 얘기 들을걸...

내가 무슨 꼴을 보자고 집으로 왔을까.



공기마저 지저분한 집을 못 본 척하고 허리를 굽힌 채 천천히 냉장고로 갔다. 이제 차려주는 밥상은 없으니까. 끼니 챙겨 나오는 환자식도, 아빠나 남편이 사오는 간식도 없으니까... 앞으로 모든 끼니는 내가 알아서 먹어야 하니까.

허리를 굽힌 채 왼손으로는 배를 감싸고 오른손으로는 냉장고 문을 당겼다. 문이 열리는 그 작은 반동에도 내 뱃속은 울려서 아팠다. 하아~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잠시 숙였다가 다시 들어 냉장고 안을 보았다.

텅 빈 냉장고 안. 아무것도 없다. 입원 전 분주하게 냉장고를 비워놨기에... 아무것도 없었다.

냉장고의 찬 기운이 고스란히 내게 닿아 발끝까지 차갑게 만드는 것 같았다. 6월인데 춥다.

조용히 냉장고 문을 닫고 어기적거리며 안방으로 걸어갔다.


방에서 주섬주섬 이불을 정리하던 남편이 내게 어서 누우라고 했다. 일단 아무것도 하지 말고 한 숨 자고 일어나라고.


침대에 누우니 심란했다. 뭐가 심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심란했다. 어쩌면 이것저것 다 심란했을지도 모른다.

이제 곧 아이를 데려와야 하고, 앞으로 빨래든 설거지든 청소든 해야 한다. 집에 돌아온 이상, 나는 주부니까... 암확진을 받고서도 청소기를 돌렸던 것처럼, 아무 일 없는 듯이 또 청소기를 돌려야겠지. 집안일은 자꾸 눈에 보일 거고,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이유 없는 죄책감이 꼬리처럼 따라붙을 것이다.


하지만 난 제대로 허리조차 펴지 못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면 옆으로 굴러서 내려와야 했다. 일어나 화장실을 가기까지 5분이 걸렸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여전히 항생제 부작용으로 밥 한 끼 제대로 못 먹고 있는 내가 과연 아이를 볼 수 있을까. 아이를 위해 밥을 하고 청소를 할 수 있을까.


수많은 생각들로 잠이 오지 않았다.


몇 번을 입 밖으로 뱉으려다 참았던 말을, 조심스레 남편에게 꺼냈다.


"나.. 애기 당분간 못 볼 것 같아. 도저히 안 되겠어. 지금 상태로는 밥 한 끼 못 먹이겠어. 어머님 힘드신 거 아는데, 조금만 더 맡기면 안 될까?"


그리고 조심스레 꺼낸 그 말에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어~ 엄마가 봐주기로 했어. 니가 좀 나아져야 데리고 오지. 일단 난 오늘 엄마네 가서 애랑 잘 테니까 자기는 여기서 자.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남편이 우는 아이를 다독이기 위해 시댁으로 출발한 이후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거실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거실 불은 켜지 않고 대신 주방 등 한 개를 밝혔다.

항생제를 먹어야 하는 시간. 입맛은 없었지만 위장을 위해 뭐라도 먹어야 했다. 남편이 해놓은 하얀 밥을 한 숟가락 퍼서 냄비에 넣었다. 그리고 생수를 부어 보글보글 끓였다. 그게 다였다. 퇴원 후 나의 첫 저녁. 흰 쌀죽.


식탁에 앉아 죽이 식기를 기다렸다. 아무 의미 없는 식사니까, 맛있게 먹을 필요 없으니까. 빨리 식혀서 빨리 먹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단지 약을 위한 식사일 뿐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눈물이 나는지... 눈물 한 방울이 톡... 하고 식탁으로 떨어졌다.

울면 안 되는데. 강해져야 하는데.

앞으로 버텨야 할 날들이 많은데 왜 자꾸 눈물이 나오는지.



힘든 수술을 버티고 집에 돌아왔는데 반겨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

'고생했다, 애썼다, 이제 쉬어라'..라고 말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어서...

내 몸 하나 편하자고 울고 있는 어린 자식을 모른 척 한 엄마라서...


다 슬퍼서...

너무 슬퍼서.






저녁이 지난 시간.

나보다 먼저 퇴원한 암환우 동생에게 안부 문자를 보냈다.


"나 오늘 퇴원했어. 집에 오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엄청 힘드네~ 너는 몸 좀 어때? 애기는 잘 있어?"


내 문자에 그녀는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 그녀의 답문을 읽은 나는 한 번의 뿌듯한 웃음을 지었고, 그 후로 백번의 외로운 마음을 삼켰다.


"언니~ 퇴원 축하해요. 나는 퇴원하고 친정으로 왔어. 엄마가 밥도 해주고 애도 봐줘서 엄청 편해요. 여기서 몇 달 있다가 집으로 가려고요. 언니도 집에서 회복 잘해요~ 병원에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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