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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 Nov 29. 2020

아빠, 왔으니까 괜찮아요.

내 손 놓지 말아요.

가을이었다. 내 기억에-

여덟 살 나는 긴소매를 입고 있었고 아빠는 낡은 재킷을 입고 있었으니 가을이었을 것이다.




"하나야! 나가게 준비해. 아빠가 볶음밥 사줄게."


"우와~~ 지금? 진짜? 근데 언니도 없는데 나만 가?"


"언니오려면 멀었으니까 우리끼리 가자. 빨리 준비해, 지금 나가게."


"알았어! 신난다~~~"


-

내가 여덟살 일 때 아빠는 돈을 벌기 위해 한두달씩 집을 비웠다. 그럴 때마다 집에는 12살 언니와 8살 나만 남았고 우리는 쌀이 있을 때는 계란에 밥, 쌀이 없을 때는 라면을 먹었다. 우리의 식단은 그렇게 일 같았다.


그 날은 오랜만에 아빠가 집있던 날이었는데 갑자기 볶음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언니가 오지도 않았는데 왜? 오늘 무슨 날도 아닌데...' 이런 생각할 틈도 없이 난 마냥 신이 났다.

외식이라니, 그것도 중국집에.


나는 채비할 것도 없이 급하게 아빠를 따라나섰다. 아빠와 걷는 순간은 언제나 좋았다. 든든했고, 신났고, 설레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아빠는 자꾸만 앞으로 걸어갔다. 지나가다 중국집이 몇 개나 보였지만 우리는 들어가지 않았고 걷고 또 걸어 마침내 동네를 한참 벗어난 어느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그 중국집은 꽤 컸다. 돌계단을 몇 개 올라가니 넓은 홀이 보였다. 아빠는 홀 가운데쯤 자리를 잡고 종업원을 불렀다. 그리고 볶음밥 한 개를 주문했다.


"아빠는 안 먹어?"


"아빠는 배 안고파. 너 다 못 먹으니까 니꺼 조금 먹을게."


이윽고 종업원이 볶음밥 한 개를 가져오자 아빠는 앞접시에 작은 양을 덜어내어 가져 갔고 큰 접시는 내게 밀어내었다.

우리는 별 말없이 고개를 숙여 볶음밥을 먹었다. 아빠는 빨리, 나는 천천히...

그렇게 볶음밥을 거의 다 먹어갈 때쯤 아빠는 내게 말했다.


"아빠 급한 볼 일 있어서 잠깐 어디 좀 갔다 와야 하거든? 여기 조금만 있어. 저기 아저씨한테 얘기하고 갈 테니까 볶음밥 먹고 기다려. 알았지?"


"어~ 근데 언제쯤 와? 빨리 올 거지?"


"그래~ 오래 안 걸려. 여기 앞에 갔다 오는 거야. 아무튼 아빠 지금 가야 되니까 먹고 있어!"


아빠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말하는 도중에 일어났고 사장아저씨한테 볶음밥 값을 계산하고 서둘러 나갔다.


그 후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적어도... 한 시간은 넘게 기다린 것 같다. 8살 아이가 느낀 체감은 그랬다.

그러던 중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던 주인아저씨가 다가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이제 나가서 기다리거라. 여기 우리 장사해야 되고 청소도 해야 하니까, 이제 나가서 기다려. 밖에서 기다리면 아빠 올 거야. 여기 있지 말고. 어서 나가."


그리고는 테이블 위의 물컵이며 모든 집기들을 치워댔다. 아저씨의 그 빠른 행동에 나는 떠밀리듯 일어났고 중국집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나는 중국집 돌계단 구석에 앉았다. 사장아저씨는 돌계단에 앉아있는 것까지는 뭐라고 하지 않았다. 몇 번 나와서 나를 봤지만 별 말하지 않았고 쫓아내지도 않았다. 덕분에 나는 그곳에서 아빠를 기다릴 수 있었다.


처음엔 돌계단에 앉아 이쪽저쪽을 둘러보았다. 아빠가 저쪽에서 오려나, 이쪽에서 오려나. 고개를 쭈욱 빼어 골목 끝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아빠는 없었다. 나는 점점 둘러보는 것을 포기했다. 가끔은 고개를 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엉덩이가 아파다.



내가 있던 자리는 어느새 어두워졌다. 나는 계속 그 자리에 있던 탓에 몰랐는데 사장아저씨의 한숨 때문에 알 수 있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흘렀다는 것을.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저 멀리서 아빠가 뛰어오는 게 보였다.

아빠는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슬퍼 보이기도, 지쳐 보이기도 했다. 나는 아빠를 부르며 달려갔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서로의 손을 잡았다. "이제 집에 가자."


아빠는 집에 가는 길에 내게 물었다. 기다리는 동안 무섭지 않았냐고.


그런 아빠에게 나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았는데! 어차피 아빠가 올 건데 뭐가 무서워."







여덟살의 나는 아빠를 믿었다.

기다리는 동안 단 한 번도, '내가 버림받은 게 아닐까, 이대로 아빠가 안 오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은 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하루아침에 없어졌는데도 나는 아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아빠가 우리를 놔두고 한두달씩 들어오지 않아도 나는 아빠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 믿었다.



그 날 아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모른다. 내게 그 날의 기억은 생생하지만 아빠에게 물어본 적은 없다.

그때의 나는 아빠를 믿었고, 어른이 된 나는 현실을 알기에... 묻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묻고 싶을 때가 있다.

아빠는 그날- 나를 버리려 했던 거냐고.

아니면,

지겹게 우리를 쫓아다니던 사채업자들을 찾아가 사정하고 있었던 거냐고.


그 당시 우리 가족의 삶이...

아빠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와도 슬플 거란 걸 알기에.. 앞으로도 물어보지 못할 내 기억의 한 순간을 오늘도 마음에 묻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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