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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미 Sep 04. 2022

우당탕탕 첫 자취

앗, 이런 건 제 독립 플랜에 없었는데 말입니다

독립 초반은 당연하게도 집과 친해지느라 정신없는 날들을 보냈었다. 혼자 사는 것에도, 새로운 집 자체에도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름 '이 집이 내 집이다' 싶어 졌을 때에도 예상치 못한 일들은 불시에 튀어나왔다.


단수가 됐다

내가 독립했을 때는 가을이었는데, 조금만 시간이 흐르니 금방 겨울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운 날이 많았다. 여느 날과 같이 재택근무를 하려고 출근 5분 전에 눈을 뜬 나는 세수라도 하기 위해 화장실로 꿈틀꿈틀 향했다. 눈을 비비며 세수를 하려는데 '???' 물이 나오지 않았다. 샤워기도 싱크대도 마찬가지였다. 건물 수도관이 동파되어 단수가 된 것이다! 며칠간 뉴스에서 수도관 관리를 강조했던 때라 혹시 몰라 수도 계량기나 보일러실을 자주 확인했었는데 그 문제가 아니라 건물 전체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관 동파로 건물 전체가 단수였다. 급한 마음에 관리실로 내려가니 이미 수도관은 공사 중이었으나 언제 고쳐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건물 1층 화장실은 사용이 가능해서, 주민들은 각자 대야를 들고 와서 1층 화장실에서 물을 받아갔다.
나는 식수도 브리타로 해결하고 있어서, 단수되는 동안 먹을 물도, 씻을 물도 없는 셈이었다. 먹을 물이야 몇 개 사두면 된다만 화장실 변기 물도 안 내려간다 ^_^ 화장실을 가게 될까 봐 나는 물 마시기도 자제했고, 언제 다시 물이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식사도 설거지가 필요하지 않은 빵, 전자레인지 음식 등으로 때웠다. 내 집만 단수라면 방법을 찾아보거나 돈이 들더라도 사람을 불렀을 텐데 건물 전체가 단수라니 뭔가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꼬박 하루 동안 1층에서 물을 길어오는 생활을 하면서 혼자 산다는 것을 말 그대로 뼈 아프게 느꼈다. 내가 독립을 꿈꿀 때 단 한 번도 예상치 못한 순간이었다.


세탁기 호스가 빠졌다

어느 날은 유튜브를 보다가 세탁기 관리에 대한 영상을 봤다. 그런데 원룸에 빌트인으로 구비된 세탁기는 성능이 좋지 않고 관리가 힘들어 세탁 후 바로 세제통이나 배수구 건조를 해주는 것이 좋다는 글을 봤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 세탁기를 돌리고 난 뒤에는 바로 세제통을 씻고, 배수구 호스를 열어 남아있는 물을 빼줬다. 가끔 배수구에서 이물질이나 먼지들이 나올 때면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배수구 호스가 아예 분리되어 버렸다. 호스를 통해 본체의 남은 물이 졸졸 빠져나와야 하는데 호스가 본체에서 아예 분리되는 바람에 본체의 물이 그냥 바닥으로 흘러나와 버렸다. 인터넷으로 아무리 검색해봐도 이럴 경우의 대처 방법은 없었고, 세탁기 모델명을 검색해 본사 홈페이지 FAQ를 훑어보았으나 나와 같은 사례는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A/S를 신청해야 했다. 대기업 전자제품 A/S를 처음 신청해보는데 생각보다 신청이 간단하고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A/S를 원하는 카테고리를 선택하는 데도 나와 같은 사례는 없어서 '기타'문의로 넣고 기사님의 방문을 기다렸다. 신청한 지 몇 시간 되지 않아 너무 친절한 기사님이 방문해주셨는데 좁디좁은 원룸에, 더 좁은 현관 입구에서 수리를 요청드리는 게 꽤나 죄송하고 민망스러웠다. 게다가 세탁기가 빌트인이라 기사님이 편하게 세탁기를 꺼내보거나 위치를 이동할 수도 없었다. 거의 신발장에 얼굴을 대고(ㅠ ㅠ) 10여 분간 다시 수리를 하신 기사님께서도 이렇게 호스가 빠지는 경우는 처음 본다고 하셨다. 첫 독립 욕심에 깔끔하게 잘 관리해보려다 민망한 상황을 마주하고, 이후에는 따로 세탁기 관리를 하지 않지만 지금 세탁물 컨디션도 나쁘지 않다. 이후로 나는 집 관리나 청소에 유난 떨지 않고 '적당히-적당히'를 되새기고 있다.


변기가 막혔다

그렇게 대단한 배출도 아니었는데 변기가 막혔다 ^_^ 다행인지 불행인지 집에는 전 세입자가 놓고 간 뚫어뻥이 있었다. 물론, 난 그전에 한 번도 뚫어뻥을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대충 흐린 눈을 하고 뚫어뻥을 눌러댔으나 결과는 더 참혹하게 변하기만 했다. 결국 이번에도 난 유튜브의 도움을 빌렸다. 그리고 유튜브에 이렇게나 많은 전문가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내 알고리즘에 첫 번째 들어온 건 아저씨 TV(무려 구독자 45만!)의 영상. 설명해주시는 내용을 숙지하고 한 두 번 그대로 따라 하니 바로 막힌 변기가 시원하게 뚫렸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에 잘 달지도 않던 댓글을 달으려는 순간, 거기에는 이미 나와 같은 자들이 1천 명도 넘게 있었다. 다들 아주 아주 다급한 순간에 이 영상을 찾게 되었던 만큼 댓글은 감사와 감격으로 이루어진 너무나도 따듯한 세상이었다. 댓글 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재밌기 때문에 아래 영상 링크를 남기면서 다시 한번 아저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https://youtu.be/KNknUJywL5Q



자취의 , 뿌듯함과 서러움을 다 느껴보니 진짜 혼자 산다는 게 무엇인지 느껴졌다. 처음 겪는 모든 일들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것이 당황스럽고 외롭기는 하지만 해결해냈을 때는 그만큼 더 뿌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도 혼자 낑낑거리며 허둥지둥하는 내 모습은 조금 어리숙하고 가엽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런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직관적으로 '문제 → 해결'하는 어른스러운 1인 가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아직도 ing 중인 내 독립 라이프의 진화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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