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그리고 누군가에게도 의미가 있을
출간 계약 이후 부쩍 축하와 안부가 많아졌다. 책 쓰느라 바쁘겠다며 인사를 건넨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서 괜한 민망함에 쏙 빠지기도 한다. 글쓰기는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전날 무엇을 쓸지 미리 생각하고 기획해 둔다. 해뜨기 전에 일어나서 궁둥이를 붙이고 쓴다. 해가 뜰 때쯤이면 쓰고자 했던 글과 다소 다른 글이 어느덧 완성돼있다. 책에 추가할 원고도 매일 쓰는 일정에 중간중간 끼워 넣어 준비 중이다. 그때 말고는 추가로 더 작업할 시간도 여력도 없다. 한 번은 욕심을 내서 해가 떠 있는 시간에 시도를 해봤는데 실패했다. 오랜 습관 때문인지 집중이 안 되고 끼적인 글자들은 마무리가 안 되기 일쑤였다. 책을 만들자는 약속 이후에도 일상과 마음의 아무런 변화 없이 지낸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원체 감정의 기복이 없는 건지 일부러 덤덤하게 지내려다가 굳어버린 건지 모르겠다. 늘 고만고만하다. 엄청나게 큰 행복이나 무시무시한 절망을 겪지 못해서일지도. 안부 인사를 빙자한 혼자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야겠다.
하나는 확실하게 해 둬야겠다. 지금 적는 이야기는 '출간 도전기'다. 출간 계약은 출간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아니면 그저 시작일지도. 책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 끝까지 해보지도 않았지만 길 끝이 전혀 안 보인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빼곡하게 기록해 둘 예정이다. 벌어졌던 반전의 반전을 생각해 보면 아마 별일이 많을 거다. 시트콤 같이 살아온 지난 삶만 돌아봐도 아무 일 없기가 어려울 테니. 여태까지 함께해 준 것처럼 계속 옆에서 즐겨주면 좋겠다. 벌써 계약 이후에 펼쳐지는 과정을 기대하고 바라는 사람이 많다. 나도 굉장히 궁금하다. 한 걸음 한 걸음 같이 나아가 보자.
처음엔 오해가 있었다. 결정된 다음에 쓰기 시작한 게 아니냐고. 이미 결과가 나와 있으면서 책 홍보하려는 뻔한 수단으로 써먹는 거 아니냐고. 그랬으면 정말 좋겠다며 울고 싶은 심정으로 아니라고 여러 번 밝혔다. 나도 이런 건 처음 봤다. 그때로 돌아가서 회고하는 방식의 출간기만 읽어봤으니. 보고도 믿기 어려울 수 있겠다고 이해했다. 실제로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채 연재되는 걸 알고 나서 여럿이 불안해했다. 왜 이리 결과도 보장되지 않은 위험을 택했냐며.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건 '출간 도전기'다. 도전의 끝에는 실패나 성공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계속되는 시도의 과정일 수도 있고. 출간 전에 도전을 먼저 쓴 이유를 써야 할 순간이다.
세상에는 출간 작가가 많다. 브런치나 블로그를 통해서 책을 내는 작가를 자주 본다. 출산의 고통을 이겨내고 만든 자식과 다름없는 책의 출간 소식을 기쁘게 알린다. 모든 일엔 명과 암이 있듯 기쁨 뒤에는 슬픔도 따른다. 출간 이후에 어쩔 수 없이 따라붙는 판매실적에 괴로워하는 모습이 흔하다. 나오는 대로 잘 팔려서 계속해서 찍어내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출산의 지난한 과정이 무색하게도 대부분의 책은 초판 인쇄에 머물게 된다. 책에 들인 정성과 노력이 많을수록 오히려 실망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출간의 행복만큼이나 불행한 광경을 쉽게 보아왔다.
다행히 난 어제 태어난 바보가 아니었다. 내 책은 그럴 리 없다는 허망한 믿음은 갖지 않았다.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절대 실망하지 않겠다고 억지 부릴 생각도 없었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확률상 당연하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생각만큼이나 '나는 다를 거야'라는 착각은 위험하다.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게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였다. 나중에 망연자실하여 출간 과정을 돌아보고 싶지 않을 게 훤했다. 그때 가서 성과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지나온 시간이 꼴도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 억지로 적으려고 발버둥 친다고 해도 지금의 생생한 느낌은 사라졌을 것 같아 아까웠다. 머리로 알고 대비해도 실제 상황에 부닥치면 가장 먼저 나가떨어지는 유리 멘탈의 소유자가 나다. 결정되기 전, 미래를 알 수 없을 때의 마음을 그대로 남겨 놓고 싶었다.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품을 수 있을 때, 보다 솔직하고 즐겁게 적을 수 있으리라 믿으며.
이렇게 시작되었다. 아주 처음 책을 내고 싶다고 떠올린 풋풋함부터 빠짐없이 담아두고 싶었다. 책을 내고 나면 사라지고 기억나지 않을 현재를 글에 잡아두고 싶었다. 혹시라도 결국 실패하더라도 이 글은 남기려 했다. 내가 쓴 글에 내가 그대로 남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순수하고 투명하게 적어왔고 앞으로도 그러고 싶다. 긴장되고 걱정되고 기쁘고 즐거운 순간순간이 찍혀있다. 순전히 나를 위해 글에 나를 맡겼다. 모든 글이 그렇듯이 나를 바라보고 썼다.
바라고 기대하는 점도 있었다. 위험천만한 글을 공개까지 한 이유는 간단하다. 도망치지 못하게 만들어야 했다. 숨어서 대충 찔끔거리다가 거절 몇 번 받았다고 혼자 성내다 관두고 싶지 않았다. 퇴로를 없애야 했다. 밝히며 썼고 효과는 만점이었다. 멈추고 그만둘 수 없었다. 널리 펼쳐 놓은 마당에 ‘죄송해요 이제 못하겠어요’라고 하기 싫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스스로 굴레에 걸려들었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계속 도전할 수 있었다. 좀 변태 같지만 나라는 놈을 잘 알기에 이 방법 외에는 없었다.
여기까지는 예상과 딱 맞았다. 글이 점점 쌓이면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나를 위해 쓰는 글을 읽는 독자로부터였다. 공감 가득한 응원과 관심을 받았다. 먼저 책을 낸 쪽에겐 조언과 희망을 받았다. 나처럼 책을 내고자 하는 쪽에게는 위로와 기대를 받았다. 신기했다. 본인 일처럼 궁금해하고 격려와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남에겐 잘 벌어지지 않는 희한한 사건과 이벤트도 한몫했을 테다. 그렇더라도 뜨거운 분위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들이 전해준 여러 말을 돌아보며 깨달았다. 멀리 향하는 나의 서툰 발걸음이 어떤 의미가 되어 남았다는 것을. 초짜의 어설픈 시도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본인의 길을 가늠해보고 있다는 것을. 먼저 나선 나를 보며 용기를 얻고 있었다. 나만을 위해 시작한 글이 남에게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기뻤다.
되짚어보고 나니 역시 쓰길 잘했다. 써온 글 중 쓰고 후회한 적은 없었다. 썼기 때문에 글이 남았고, 어떤 식으로든지 빛을 발했다. 함께해 준 그리고 함께해 줄 모든 이에게 감사하다. 앞으로 읽을 새로운 사람에게도 남겨진 내 작은 용기가 도움이 되기를 바라본다. 더 많은 출간 도전이 벌어지면 좋겠다. 나도 계속 도전해 보고자 한다. 결과는 알 수 없지만 하지 않으면 알 수 없으니 꼭 해보기를. 너무 재지 말고 스스로 해보고 싶을 때 바로 하는 걸 추천한다. '나중에 준비가 되면'으로 미루어 두면 언젠가 정말 되기는 하는 건지 모르겠다. 준비는 행동하면서 해나가는 거라고 믿는다. 미리 준비하고 계획한다고 그대로 되는 인생은 없으니. 경험하고 느껴가며 직접 배우는 게 우릴 준비시키는 게 아닐지. 나는 애매함을 싫어하는 극단주의자다. 그냥 하자. 아니면 하고 싶어 하지도 말자. 하고 싶은데 안 하는 것만큼 안타까운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