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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May 20. 2022

그래야 다시 그리워하며 떠날 수 있으니

호주 골드 코스트(Gold Coast)

여행 계획을 짤 때는 최악을 고려하지 않는다. 한 달 전에 예약할 때만 해도 코로나가 지금처럼 기승을 부리진 않았었다. 어차피 물림 없는 일 년에 한 번 있는 아들 여름방학 기념 긴 여행이었기에 기껏해야 갇혀있기 밖에 더 하겠어하며 떠났다. 자랄수록 본인의 짐을 스스로 챙기는 아들 덕분에 어쩐지 여행 준비는 수월한 느낌이다. 물론 에너지가 넘치는 녀석을 감당해야 하는 임무도 커지지만.


어둠이 하늘을 덮칠 즈음 첫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시골에서 온 덕분에 길이 복잡하고 차가 많아 힘들었지만 곧 적응했다. 혹시나 벌어질 강제 방콕을 예상하고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호텔로 정했다. 최소한의 품질을 보장해야 했기 때문에. 내부로 들어서자 동남아에서나 마주하던 풍경이 벌어졌다. 널찍했고 여유로웠고 평화로웠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약간(?)의 소동이 있었고 아쉬움만 남기고 해결되었다. 첫 식사는 파랑이 사랑하는 인도네시아 또는 말레이시아 그즈음의 음식점에서 이루어졌다. 하나 같이 만족스러운 음식이었다. 골드 코스트의 주말 밤거리는 시끄럽고 흥겹고 정신없었다. 우리도 몸을 맡기고 싶었지만 마스크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바람에 몸을 지키려 숙소로 돌아왔다. 아들이 골라준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며 다음날 아침을 어디서 먹을까 심각하게 고민하다 잠들었다.



서퍼스 파라다이스 JW 메리어트 리조트 & 스파

Bali In Paradise




파랑이 고르고 고른 빵집은 굉장했다. 파리바게트 파리바게트 노래를 부르며 호주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배가 부족한 게 아쉬울 정도로 빵빵하게 먹었다. 분점이 사는 곳 근처에 없다는 게 억울할 정도로 맛있었다. 배를 채운 뒤 시작된 물놀이는 끝을 몰랐다. 인공해변에서 즐기는 스노클링, 어른도 정신이 쏙 빠지는 빅 슬라이드, 따뜻한 스파, 맛난 버거와 늘어지는 썬베드까지.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놀고먹고 마시며 보냈다. 해가 떨어지자 우린 습관처럼 밖으로 향했다. 검색왕 파랑이 나를 위해 골라준 맞춤형 이자카야는 단연 최고였다. 마신 술의 양이 민망할 정도로 많은 음식을 먹어치웠다.



200°C Pan Daily Bakery

Izakaya UMAKAMON




원래는 느긋하게 쉬다가 체크아웃을 할 예정이었다. 잠에서 깬 아들의 성화에 아침도 거르고 바로 물에 뛰어들었다. 전날 무리한 일광욕으로 따가운 부상을 입은 파랑은 제외였다. 덕분에 물고기 밥 주는 걸 바로 옆에서 볼 수 있었다. 마르지 않은 수영복을 챙겨서 첫 숙소를 빠져나왔다. 아직도 배를 채우지 못한 우리는 힘겹게 브런치 집을 찾았다. 우연히 고른 이 장소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거리에 위치했다. 배가 고팠던 탓인지 우린 싹싹 비웠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시간을 보니 다음 숙소 체크인까진 시간이 남아있었다. 이럴 땐 쇼핑이라며 파랑이 무려 프리미엄 아울렛으로 인도했다. 결과적으로 득템이 이루어졌다. 나는 10년 이상 쓰던 전기면도기를 대체할 친구를 얻었고, 아들은 젤리빈과 오락실을 얻었다. 파랑은 사이즈가 맞지 않아 원피스는 실패했지만 항상 바라는 메뉴, 마라탕을 얻었다.



Hot Shott

하버 타운 프리미엄 아울렛




두 번째 숙소는 더 내 스타일이었다. 세상과 동 떨어져 있는 구석에 놓여있었기에 조용했다. 아침에 젖어 아직 마르기 전인 수영복을 다시 챙겨 입고 새로운 인공비치에 뛰어들었다. 커다란 빈백에 둥둥 떠서 즐기는 망중한은 달콤했다. 어둑어둑해지자 소중한 한 끼를 어찌할지 고민에 빠졌다. 꽤 진중한 시간을 끝내고 호텔을 맛볼 수 있는 로비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했다. 와인과 음식 모두 훌륭했다. 매일 술을 마시다 보니 마치 내가 술을 잘 마시고 즐긴다는 착각까지 들었다. 심지어 그날은 숙소에 돌아와서 홀로 맥주를 더 마시며 책을 읽었다. 이러다 술독에 빠지는 게 아닐까 걱정하며 피워놓은 인공 모닥불 앞에서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정말 정말 오랜만의 호텔 조식 뷔페는 감동이었다. 모든 음식을 먹고 한번 더 먹어도 맛있었다. 부른 배를 잡고 아들의 기운 넘치는 발걸음에 맞추어 물에 다시 뛰어들었다. 여유롭게 떠다니는 신선놀음이 참 좋았다. 별생각 잡생각 딴생각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오전 내내 즐기면서도 아쉬웠다. 대도시에 나와야만 갈 수 있는 한인 미용실을 예약해두었기에 멀리 나들이를 나섰다. 그전에 더 중요한 점심은 유명 분식집에서 즐겼다. 김말이 튀김은 언제나 최고였다. 세 가족 머리를 예상보다 꽤 긴 시간 동안 정돈했다. 늘어져 버린 일정 덕분에 툭탁거리면서 먹고 돌아와서 잠들었다. 여행 기간 중 처음으로 술 없이. 어쩐지 아무 일 없이 끝나나 싶었다. 내 마음이 넓지 못해 생긴 일임을 인정하는 바다.



InterContinental Sanctuary Cove Resort, an IHG Hotel

두리분식




마지막 날은 뭘 해도 아쉽다. 다행스럽게 한 번도 오지 않던 비가 내렸다. 마지막 물놀이를 엄두도 못 내게 주룩주룩. 깔끔하게 포기하고 밥을 먹고 쉬엄쉬엄 정리해서 나섰다. 아들의 성장을 온몸으로 느꼈던 시간이었다. 아이는 점점 자라고 우리는 쉽게 지친다. 적당한 방법을 찾을 수 있겠거니 미루어두고 돌아오면 항상 반가운 집으로 들어섰다. 언제 그곳에 있었냐는 듯이 이렇게 남기며 깨끗하게 잊고 만다. 그래야 다시 그리워하며 떠날 수 있으니.


* 아빠로서 아들을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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