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May 13. 2022

놀이동산에 가면 무조건 생일이라고 하자!

호주 오지 월드(AUSSIE WORLD)

몇 년 전 호주의 한 놀이동산에서 있었던 부끄러운 기억이다. 아들이 타고 싶어 했던 놀이기구를 위해서는 키가 아주 조금 모자랐다. 나와 파랑은 한국의 후한 인심을 생각하고 작전을 짰다. 줄을 서서 키를 재는 순서가 오면 살짝 까치발을 들라고 일러두었다. 꼭 귀여운 미소와 함께. 키를 재는 자를 들고 직원이 예의 환한 미소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들은 어색한 스마일과 함께 시킨 대로 뒤꿈치를 들었다. 우리 얼굴엔 '잘 좀 봐주십시오'라는 웃음이 생겼지만 그에겐 바로 웃음기가 사라졌다. 정색하며 똑바로 서라고 아들에게 부탁했고 진짜 키를 확인하고는 안 된다고 했다. 당황해서 울먹이는 아들을 꼭 안고 포기하며 돌아섰다.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며. 안전에 철저한 호주를 느낀 쓰라린 경험이었다.


이번엔 완전히 달라졌다. 120센티미터가 된 아들은 준비가 끝났다. 혼자서 탈 것도, 우리와 함께 탈 것도 아주 많아졌다. 생일 기념으로 학교 땡땡이를 치고 <Aussie World (오지 월드)>로 향했다. 'Aussie'는 호주를 가리키는 속어다. 땡땡이의 변을 대보자면 이곳의 배짱 운영시간 때문이다. 주중에는 10시부터 3시까지, 주말에는 10시부터 4시까지다. 운영시간 자체가 짧아서 주말에 가면 사람에 치일 게 뻔했다. 오후 또는 야간 개장이라도 있으면 주중에 가보겠지만 아이 학교 운영시간과 동일해서 불가능했다. 제대로 즐기기 위해 이 핑계 저 핑계를 모아서 하루 날을 제대로 잡아야 했다. 수없이 지나쳤던 화려한 그곳에 드디어 입성했다.





검색과 예약의 신, 파랑 덕분에 가성비 좋은 패키지로 입장했다. 일명 '홀리데이 팩'으로 3인 입장권에 아이스크림&사진 쿠폰이 들어있었다. 표를 확인할 때 아들 생일 기념으로 왔다고 알렸다. 갑자기 직원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고 롤리(사탕, 젤리)를 퍼 주었다. 잠깐 당황한 아들은 곧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그 덕분인지 가족사진도 정성스럽게 여러 곳에서 찍어 주셨다. 결정적으로 흐린 날씨 탓에 운영하지 않는 놀이기구가 몇 개 있어서 미안하게 되었다며 놀라운 종이를 건넸다. 3개월 내에 입장할 수 있는 '리턴 티켓'이었다. 말 그대로 그냥 또 공짜로 올 수 있는 입장권이었다. 이 모든 게 시작과 동시에 알린 '아들의 생일'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산뜻하게 시작한 그날 하루는 모두 좋았다. 오기로 한 비 소식이 무색하게 쨍쨍하게 더웠다. 기대하지 않았던 시설도 꽤나 짱짱했다. 아담하지만 있을 것 다 있는 실속 넘치는 곳이었다. 둘러보며 타보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역시 평일이라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미니 골프 게임이 시작되었다. 언젠가 가족끼리 가봐야지 했는데 여기서 만나서 즐겁게 즐겼다. 집중력 넘치는 아들은 18홀까지 신나게 완주했다. 아이스크림도 점심도 모두 기대 이상이었다. 범퍼카와 뽑기도 빼놓지 않았다.





어느새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우리는 서둘러 뛰었다. 마무리 놀이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물놀이! 아이들이 맑게 뛰어노는 곳이었지만 아들의 요청으로 나와 파랑도 모두 뛰어들었다. 더운 오후를 차갑게 식혀주는 공간을 열심히 누볐다. 마감시간까지 조금이라도 더 놀기 위해 애쓰다 아쉬워하며 나왔다. 전 세계 공통 진짜 마지막 관문인 기념품 가게에서도 놀라운 일이 있었다. 잘 나온 가족사진을 확인하고 받는 사이에 한 직원이 내게 눈빛을 보냈다. 손에 물총을 보이며 이거 아들에게 선물해도 괜찮겠냐고 했다. 무슨 상황인가 했더니 사진 찍어주신 분이 아들 생일이라고 다른 직원분께 이야기했던 것이다. 마침 물총이 없는 아들에게 하나 마련해주려 했던 우리는 이렇게 뜻밖의 선물을 또 받았다.





혼신의 힘을 다해 즐긴 아들은 그날 기절하듯 잠들었다. 아들의 생일 덕분에 놀라움이 곳곳에서 톡톡 튀었던 추억을 남겼다. 따뜻한 기억을 간직한 채 조만간 다시 '공짜 티켓'을 들고 가 볼 생각이다. 한 가지 굉장한 교훈을 챙겼다. 놀이동산에 가면 무조건 생일이라고 하자. 분명히 뭔가 놀라운 일이 생긴다. 양심에 찔리는 건 각자의 몫으로 돌리고!



Aussie World (오지 월드)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일 년에 한 번 눈 호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