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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myhslee Apr 27. 2024

멀티레이블은 죄가 없다

IP비즈니스의 멀티레이블 전략

하이브가 화제다. 이미 많은 분석이 있고, 당사자간 사적 갈등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따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루진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이 사태의 원인이 멀티레이블로 지적되는 것은 조금 견해가 달라서 몇 자 적어보았다.


지금 멀티레이블의 문제로 지적되는 것들을 종합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멀티레이블 = 문어발식 경영이다.

2. 멀티레이블은 아티스트를 공장처럼 찍어낸다. 이로 인해 퀄리티/베끼기 문제가 발생한다.

3. 성과주의, 레이블 간 경쟁이 격화되어 금번과 같은 심각한 갈등이 발생한다

4. 금번 사태와 같은 레이블의 독립 또는 아티스트 빼가기 문제가 발생한다


1.

문어발식 시스템이라는 단어 자체가 한국 사회에서는 재벌의 횡포를 연상케 하는 굉장히 부정적인 단어다. 문어발이라는 프레임이 씌워지는 순간 작은 언행도 조심스럽게 되고, 그전에는 문제가 되지 않던 행보도 '갑질'처럼 보이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통상 '문어발식 경영'이라고 하는 것은, 기업이 자본의 힘을 통해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는 이종산업에 진출하여 생태계를 교란하거나, 계열사를 확장하여 관련 기업의 시장 진입 기회를 박탈하고 시장을 잠식하는 등의 행위를 말하는데, 멀티레이블의 구조가 여러 레이블을 산하에 둔다고 하여 이를 문어발식 경영이라고 보긴 어렵다. 하이브가 게임 사업에 진출하고, 플랫폼과 유통 사업에 진출하는 방식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걸 '문어발식'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지만, 멀티레이블을 통해 IP를 확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개념이며 이를 혼동하는 것은 IP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을 위축시킬 수 있다.


2.

이 또한 표현의 차이가 있다고 본다. 멀티레이블은 서로 다른 IP를 정기적이고 공백 없이 다양하게 제작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IP비즈니스 특유의 취약점인 특정 IP에 대한 의존성, 불규칙한 사업주기 등 불확실성을 보완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를 공장처럼 찍어낸다고 말하는 것은 멀티레이블의 본질과 괴리가 있다. 소위 '공장처럼 찍어낸다'라는 것은 그 퀄리티가 일정하고 서로 간의 차별점이 없을 때 사용한다. 만약 멀티레이블의 IP가 서로 대동소이하여 일종의 carnivalization이 일어나는 수준까지 갔다면 그건 공장처럼 찍어낸 것이 맞다. 하지만 특정 기업이 멀티레이블 전략을 펼치며 이런 지경에 이르렀다면 그건 운영의 문제이지 멀티레이블 전략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로레알이나 P&G, LVMH 같은 회사도 같은 개념인 멀티브랜드 전략을 활용한다. 이런 멀티비즈니스 전략의 pros and cons, 그리고 logic은 모두 동일하다. 같은 전략과 시스템이라도 누가 운영하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3.

기업은 당연히 성과주의를 따라가고, 멀티레이블 간 경쟁은 불가피하다. 경쟁은 멀티레이블끼리도 하지만 외부 레이블과도 해야 한다. 독점시장이 아니라면 경쟁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K-POP처럼 카테고리 확장이 한정된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멀티레이블 간 경쟁이 격화되어서 어떠한 문제로 비화되는 것은 컨트롤타워에 책임이 있다. 멀티레이블 간 의견과 스케줄을 조율하고 필요하면 경영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 모두 컨트롤타워의 역할이다. 디즈니는 레이블별로 연간 콘텐츠 스케줄을 모두 사전조율하고 대중에 공개한다. 일정이 변경되면 그 사유를 밝힌다. 레이블 간의 정보 공유는 물론 소비자와의 소통에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금번 사태도 중앙에서의 스케줄 조율이나 홍보를 관리하는 모습 등이 나타났는데 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행위라고 본다. 다만 이 과정에서 특정 레이블을 배척하거나 불리하게 만들었다면 그건 다른 문제다. 상호 간의 소통이 좀 더 원활했으면 이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4.

이 역시 멀티레이블과 완전 별개의 문제다. 각각의 인격체인 아티스트들이 매니지먼트 비즈니스의 핵심 asset이기 때문에 IP 유출 리스크는 필연적이다. 가까이는 올초 YG와 블랙핑크 간의 재계약 이슈만 봐도 알 수 있고 과거 수없이 이런 리스크는 존재했다. 그래서 전속계약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공정위에서 정해준 7년이라는 기간도 있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상호가 경제공동체로써 한 방향을 보고 뛰어가되, 기간이 지나면 그때는 회사와 아티스트 양측 간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계약 기간 내 계약을 파기하고 나가는 것은 법적인 제약이 따른다. 흔히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만큼 계약에 있어서는 모두가 신중해야 한다.



 

결국 멀티레이블 전략은 상당한 '운영의 묘'를 요구한다. 단순히 씨앗을 뿌려놓으면 알아서 자라는 것이 아니다. 아무나 걸려라 전략이 아니다. 포트폴리오 관점으로 접근해서 회사의 전체 포트폴리오를 구상하고 거기서 잘되는 IP를 더욱 성장시키고, 또 부족한 IP나 사업 역량은 보강하고 육성해 나가는 과정이다. 엄청나게 많은 고민과 세심한 커뮤니케이션, 조율이 필요하다. 컨트롤타워가 제왕적 권한을 갖고 있는 일반 기업의 지주사 체제와 달리 '관리'와 '자율'사이의 오묘한 중심점을 잡는 게 멀티레이블 전략의 핵심인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들만 보아도 시스템이 정착되기 위해 많은 시도, 그리고 시간이 필요했으며 그 과정에서는 갈등과 고통도 따랐다.


산업이 성장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시장에 참여하고, 또 더 넓은 무대로 IP들이 나가기 위해서는 멀티레이블 전략이 필요하다. 사업의 안정성이 확보되어야 자본이 모이고 이를 기반으로 더 많은 IP들이 탄생하는 순환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이번 일로 멀티레이블이 사태의 원인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은 안타깝다. 이런저런 고민이 싫다면 멀티레이블을 굳이 도입할 필요가 없다. 각자 자기 영역에서 재밌게 놀면 된다. 하지만 멀티레이블을 도입했다면 아무리 독립적인 레이블이라 해도 멀티레이블이라는 틀이 있고 그 안에서 움직이게 된다. 자유도는 컨트롤타워가 부여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포트폴리오 전략하에서 필요에 따라 설립되고 때로는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 멀티레이블이기에 그 안에서 모든 구성원이 취하고 포기해야 할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창작은 감성적이지만 비즈니스는 냉정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IP유니버스> 중 멀티IP 전략 내용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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