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관심이 많은 캐릭터IP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수많은 IP비즈니스 중에서도 IP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 캐릭터IP라고 생각하는데요, 특히 기술 트렌드와 소비 패턴의 변화 등 시대의 흐름에 힘입어 캐릭터IP 산업의 성장을 눈여겨볼만한 시기입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밝힌 2019년 한국 캐릭터 산업 시장의 매출 총액은 12.5조 원 수준으로 그 규모가 상당합니다. 2010년 5조 9천억 원에 머물던 것이 9년 만에 2배 이상 성장한 셈이니 속도 또한 빠르죠. 이러한 속도에 코로나 기간 급성장한 캐릭터 산업 특징을 고려하면 2025년 현재 한국 캐릭터 산업의 시장 규모는 2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니 절대적인 규모도 매우 큰 시장입니다.
사실 이런 캐릭터IP는 콘텐츠와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적 관계입니다. 캐릭터 자체만으로는 팬덤을 형성하기 어려워 세계관, 스토리 등이 담긴 소설, 만화, 애니메이션, 영화, 게임 같은 콘텐츠를 비히클 삼아 확장해야 하는 것이죠. 때문에 캐릭터 자체를 개발하는 것은 많은 리소스가 드는 일이 아니지만, 이에 필요한 콘텐츠를 제작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다 보니 캐릭터IP를 확장하고 유지하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미키마우스’, ‘피카츄’, ‘손오공’, ‘짱구’, ‘아이언맨’과 같은 여러 캐릭터IP들이 이런 콘텐츠를 기반으로 성장했는데, 보시다시피 캐릭터 산업은 미국이나 일본처럼 강력한 콘텐츠 산업 경쟁력을 갖고 있는 국가나 자본을 갖춘 기업들을 중심으로 발전했죠.
여기에 특히 한국은 유아용 캐릭터가 강세인 시장 특성상 어른들이 즐길 수 있는 캐릭터가 많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의 캐릭터 산업은 일종의 하위문화(sub culture)처럼 여겨져 크게 성장하지 못했고 몇몇 마니아들에 의해서만 시장이 유지되어 왔죠. ‘뽀로로’, ‘타요’, ‘카봇’이나 최근 큰 인기인 ‘캐치티니핑’까지 우리가 알만한 국산 캐릭터들은 대부분 유아용 캐릭터인 동시에 애니메이션 콘텐츠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장 환경에서 캐릭터IP 비즈니스를 하기 위해서는 유아를 타깃으로 하고,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했죠.
물론 이런 전통방식의 '콘텐츠'라는 매개체 없이 성공한 캐릭터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헬로키티’가 그 주인공이죠. 헬로키티는 탄생한 지 50년이 넘은 장수 IP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 캐릭터 매출 상위권에 자리 잡을 정도로 IP를 보유하고 있는 산리오는 물론 일본 캐릭터 산업을 이끄는 대표적인 캐릭터 중 하나죠. 헬로키티 하나로 연간 약 4조원의 매출이 창출된다고 하니 그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이 되시나요?
흥미로운 점은 헬로키티가 처음부터 상품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라는 점입니다. 당시 일본의 유명 캐릭터들이 대부분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한 것을 생각하면 독특한 부분이죠. 헬로키티가 처음 활용된 것이 바로 동전지갑이었습니다. 상품 캐릭터로 처음 등장한 헬로키티는 이후에도 다양한 상품화를 통해 인기를 끌었으며, 추후에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콘텐츠가 먼저 오고 그 이후 상품화되는 순서와 조금 다르죠.
다만 장수 브랜드 중 헬로키티와 같은 사례가 많지 않다는 점을 보면 과거에는 이런 비 콘텐츠적 접근방식이 결코 쉽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올해 캐릭터 시장을 강타했던 라부부처럼 콘텐츠가 아닌 굿즈를 중심으로 성장하는 캐릭터도 등장하고 있으니 시장 트렌드는 바뀌어가기 마련입니다.
또 최근 몇 년간 한국을 넘어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를 꼽자면 카카오프렌즈와 라인프렌즈의 캐릭터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두 회사는 대표적인 국내 IT기업입니다. 메신저와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여러 사업분야를 확장하고 있죠. 이런 IT기업이 어떻게 캐릭터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요? 두 캐릭터들이 가장 활발하게 팬덤을 구축한 곳은 바로 메신저 플랫폼이었습니다. 한국과 아시아에서 수천만의 사용자를 보유한 카카오톡과 라인메신저는 ‘이모티콘’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캐릭터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예전처럼 회사가 애니메이션 같은 콘텐츠를 만드는 대신, 사용자들이 본인의 감정과 메시지를 담은 캐릭터 이모티콘을 사용함으로써 직접 콘텐츠를 생산한 셈이죠. 하루에도 수십 번씩 사용하는 메신저라는 노출빈도가 높은 플랫폼을 통해 캐릭터에 대한 몰입감을 높이고 나아가 이들을 팬으로 성장시킨 것입니다. 캐릭터의 친밀도와 인지도가 올라간 뒤로는 여느 캐릭터IP와 동일한 사업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자체 굿즈 스토어는 매장마다 긴 줄이 세워질 만큼 성행했고, 라이선싱을 통한 사업도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메신저 사례 외에도 캐릭터IP 시장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인스타그램’입니다. 개인 크리에이터들은 인스타그램이라는 미디어 채널을 통해 본인이 갖고 있는 캐릭터IP를 전시하고, 인스타툰이라고 불리는 가벼운 웹툰을 제작하거나, 캐릭터의 세계관과 성향을 드러내는 일러스트레이션을 게재함으로써 대중에 다가가고 팬덤을 구축합니다. 이들의 가장 큰 강점은 바로 소통인데요, SNS라는 미디어 특성상 크리에이터와 직접 소통하고 반응을 확인함으로써 더 빠른 속도로 캐릭터에 몰입되는 겁니다. 전통 미디어 채널 보다 캐릭터와 내가 더욱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이렇게 모인 소수팬덤만으로도 개인 크리에이터는 캐릭터를 활용한 IP사업을 전개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를 활용해 원활하게 굿즈를 제작하고 판매할 수 있도록 소량의 제품을 제작하고 물류를 지원하는 등 이들을 위한 IP플랫폼들도 늘어났기 때문이죠.
유아용 애니메이션 ‘뽀로로’의 캐릭터로 유명한 ‘잔망루피’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서 나타난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 사례 중 하나입니다. 잔망루피는 뽀로로의 등장인물 중 하나로 원래는 유아용 캐릭터였습니다. 그러던 것이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다양한 밈으로 소화되며 현재는 10~30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캐릭터가 되었죠. 이 연령층에서는 잔망루피가 뽀로로보다 훨씬 더 유명하죠. 팬들이 스스로 캐릭터의 2차 창작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팬덤을 확장한 매우 흥미로운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캐릭터IP의 확장은 더 이상 전통 콘텐츠에 의존하는 방식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팬들과 가까이서 소통하고 가벼운 콘텐츠를 자주 생산하며 친밀도를 높이는 방식이 자리 잡고 있죠. 이런 성공 사례가 늘어나면서 대기업들도 자체 캐릭터를 만들고 사업과 연계된 방식으로 캐릭터 사업에 뛰어들었죠. LG유플러스의 ‘무너’, 현대백화점의 ‘흰디’, 하이트진로의 ‘두꺼비’, 롯데홈쇼핑의 ‘벨리곰’ 등은 대표적인 기업 캐릭터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들은 자사 제품과 유통 채널은 물론 TV CF에도 등장하며 존재감을 내세우고 있죠.
글로벌 캐릭터IP 산업은 계속해서 진화하며 점차 그 범위를 확장해가고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바로 ‘라이선싱’의 마법 덕분입니다. 라이선싱 비즈니스는 캐릭터IP 사업의 핵심으로 캐릭터의 판권을 외부에 대여하고 그 대가로 로열티를 수취하는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헬로키티의 산리오 역시 법인 전체 매출에서 라이선싱을 통한 로열티 비중이 50%에 육박하고, 예전 다뤘던 토에이 애니메이션 역시 라이선싱 매출이 50% 수준입니다. 특히 라이선싱 사업은 원가가 높지 않아 이익기여도가 매우 높죠.
아직 국내 캐릭터IP 업계는 이런 라이선싱 사업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IP 산업 인프라가 그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캐릭터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지고, 더 많은 캐릭터들이 탄생하고 있는 만큼 국내 캐릭터들에서도 이런 ‘라이선싱의 마법’을 볼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찾아오길 기대해 볼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