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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myhslee May 30. 2021

[단상] 문화의 조각화

적지만 확실한 사람들이 소비할 수 있는 문화로부터

"어제 그거 봤어?"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지녔던 미디어, 'TV'가 보급된 이후 아마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위 시청률 '대박'이라고 불리던 40~50%를 넘어 60% 이상의 시청률도 나왔다고 하니 가히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TV를 통해 정보와 소식을 접했고, 그것이 문화와 미디어의 트렌드가 되었다. 세대별, 지역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10대부터 어르신까지 모두가 유사한 콘텐츠를 접하고, 비슷한 경험을 하던 시절이었다. 그만큼 그 영향력은 대중적이고 광범위했다. TV가 배출한 '스타'는 대중적이고 모두가 아는 셀러브리티를 표현하는 말이었고, 9시 뉴스가 전하는 소식은 종이신문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소식지였다. 인기 드라마와 예능프로그램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트렌드였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었다. 2000년대 들어 케이블 채널의 꾸준한 공세와 2010년대 등장한 종편채널의 약진으로 지상파의 위용은 점점 약해지는 모습을 보여왔고,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여기에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콘텐츠 플랫폼의 등장은 지상파를 포함한 TV 사업자에 전방위적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의 선택지가 지상파 하나에서 폭넓게 늘어난 것이다.

출처 : 미디어오늘

        

이러한 현상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문화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이른바 '문화의 조각화'다. 콘텐츠 제공자가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수요와 공급이 세분화되었다. 같은 콘텐츠를 여러 개 만들어 파이를 분산하는 것보다 것보다 소수라도 소비가 확실한 사람들을 노리게 된 것이다.


세대별, 지역별은 물론 이전에는 포괄적으로 구분되던 여러 문화 분야들이 제영역을 갖추기 시작했다. 예컨대 나는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데, 가끔 지상파 음악프로그램에 힙합가수들이 나오는 것을 보기 위해 음악프로그램 전체를 시청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케이블이 제공하는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고, 유튜브를 통해 내가 원하는 뮤지션의 공연만 모아서 시청할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은 결국 새로운 콘텐츠를 탄생시키고, 새로운 아티스트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시장을 구축해냈다. 비슷한 사람이 늘어나 자연스럽게 하나의 집단이 형성되고 문화가 되었다. 지금은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는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보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게 되었다는 점은 이런 변화가 가져온 긍정적 면이다. 개개인의 취향과 개성이 존중받고 그들만의 문화가 하나의 보편적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사회가 다양해지고 여러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낼 수 있고 여러 사람과 공유할 수 있다. 반면 서로 간의 소통은 예전보다 어려워졌다. 내가 즐기는 문화는, 내 분야에선 주류지만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그 문화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지만 전혀 다른 경험을 하고 있기에 그렇다. 트렌드에 대한 인식이 다르고, 흥미에 대한 기준도 다르다. 나와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은 내 옆이 아니라 온라인을 지나 저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  



문화 트렌드의 변화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빨라지고 있으며, 이를 대응하는 콘텐츠 공급자들 역시 신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예전처럼 모두가 만족하고,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는 지금 시장에서 쉽게 워킹할 수 없다. 타겟팅을 정확히 하여 매니아층을 만들어낸 후 점진적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비주류에서 시작하여 주류의 문화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각자의 개성이 존중되고 행동 패턴이 다른만큼 이러한 흐름을 무시하고 이전의 방식을 고수하기 어렵다. 특히 변화 속도가 굉장히 빨라서 퍼스트 무버도 순식간에 뒤쳐질 수 있으며, 패스트 팔로워의 자리를 꾸준히 유지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다. TV에서 5년, 10년씩 장수 프로그램을 배출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유튜브에서 100만 구독자를 돌파하며 씬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이를 1년, 2년간 유지하는 것은 100만 구독자를 모으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콘텐츠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가 그렇다.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서비스'보다 신선식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 중고 상품을 판매하는 곳, 20대 여성 패션 브랜드를 모아 판매하는 곳처럼 세분화되고 나만을 위한 서비스가 대세를 이루고, 거기서부터 점진적으로 분야를 확장해나간다. 반대로 모든 분야를 아우르던 전통 강자들은 세분화에 나서고 있다. 그 흐름에 뒤늦게 탑승할수록 남은 자리는 빠르게 줄어든다.


점점 더 니치하고 섬세하게. 내가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도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늦었다고 판단될 때는 어설프게 흐름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는 것보다 차라리 한 발 먼저 나아가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순환주기가 워낙 빠르기에, 현재는 비주류로 인식되는 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그 기회가 과거보다 훨씬 빠르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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