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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ommyhslee Dec 02. 2022

삼국지에서 가장 저평가된 인물 가후

실용적인 조언과 합리적인 의사결정에 능한 처세의 달인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호걸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을 고르라면 조조의 모사로 알려진 가후다. 가후는 동탁, 이각, 장수, 조조 등 여러 주군을 섬기면서도 빠른 상황판단과 실리적인 조언, 그러면서도 뛰어난 소통역량을 보였던 처세의 대가였다. 삼국지에서 상당히 저평가되어 있는 인물 중 하나라고도 생각한다. 크게 실수하는 법이 없고, 군사전략뿐만 아니라 정치와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조조를 만나기 전까지는 천하를 제패할 수 있을만한 주군을 섬기지 못했지만 본인의 여력 안에서 가능한 최대의 성과를 만들었고, 조조를 만난 이후로는 둘 사이 상성이 좋아 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여 태위의 자리에까지 오르고 삼국지에 흔치 않은 77세의 천수를 누린 캐릭터다(보통은 병이 들거나 목이 잘려 죽는다..).


삼국지를 기업에 빗대어 이야기할 때 조조, 유비, 손권 등 주군 캐릭터를 CEO에 비교해 이야기한다면 가후는 회사에 반드시 필요한 임원의 역량을 갖춘 사람이다. 사실 가후는 삼국지 내 전형적인 영웅호걸인 관우나 공명, 조자룡 등과는 다른 캐릭터다. 아랫사람에 대한 리더쉽보다는 윗사람과의 관계에서 기막힌 업적을 더 많이 남겼다. 그렇다면 가후는 어떤 인물이고 이런 능력이 조직에 왜 필요한 걸까?


1. 최악의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가후는 여러 주군을 섬겼다. 그중 조조를 제외하면 걸출한 인물이 없다. 동탁이나 이각은 능력이나 인성적으로도 문제가 많았고, 장수는 천하를 제패할만한 그릇이 못되었다. 그럼에도 가후는 이각 휘하에서 '동탁 사후 이각으로 하여금 흩어진 군대를 모아 장안성 수복 계획을 수립하고, 공격이 성공한 이후 제안받은 높은 관직을 거절하고 조정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를 선발하는데 집중했으며 이각을 도우면서도 천자에 대한 도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알려져 있다.


가후가 처세해 능한 인물임이 처음으로 드러나는 장면인데,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당하고 장안성에 혼란이 찾아오자 가후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인물을 찾아 상황을 수습하는데 집중했다. 당시 혼란 속에서 본인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알았던 것이다. 당시 가후는 동탁 수하에 있었기 때문에 여기서 도망치면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될 것이기에 훗날 기회를 도모하기 위하여 당장 사태를 수습해나갈 수 있는 이각 등을 설득했다. 위기가 발생했을 때 '여기서 도망칠 것인가 이것을 수습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서 후자를 선택한 게 그의 선택이었다. 핵심은 그가 빠르게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리더를 찾아 도왔다는 것이고, 그럼에도 이각과 곽사의 성향을 알았기 때문에 섣불리 높은 관직을 받지 않고 실무적으로 사태 수습을 위한 일에 더욱 집중했다는 것, 대의명분(한나라에 대한 도리)을 저버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과 일을 해야 할 때가 있고 불편한 의사결정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그 안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는 생각보다 멀지 않은 곳에 답이 있다. 본질을 파악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정한 뒤 지체 없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  


가후는 사태가 수습되고 나서는 제후 자리를 제안받았으나 거절했다. 상당한 위치와 권력이 있는 자리였으나 그 지위가 단단하지 않고 오히려 독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상황과 때가 아니면 제아무리 높은 관직이나 금전이라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자리를 받았다면 이각과 곽사가 실각할 때 가후 역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지막 대의명분은 지킬 줄 알아야 한다. 당시 가후는 이각 무리가 한나라 황실의 권위를 짓밟는 일에 대해서만은 반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한나라에 대한 충성심이나 천자에 대한 예우도 물론 있었겠지만 한나라를 저버리는 것은 가후 본인이 정한 최소한의 대의명분이었다.



2. 가능성이 없는 조직과 리더는 과감하게 청산한다.

장수 휘하에 있을 당시 가후는 장수를 도와 완 전투와 양 전투에서 월등한 군사력을 자랑하는 조조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남겼다. 이 과정에서 조조가 아끼던 장수 전위와 조조의 아들 및 조카가 사망한다. 전투에 대한 기록을 보면 어려운 상황에서도 급습 및 암살이나 퇴각 중인 적의 후방을 공격하는 등의 전략으로 적군의 피해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가후는 이후 원소와 조조가 대립할 때 조조에게 투항했다. 이때 기록을 보면 가후의 의견이 주군인 장수의 그것과 완전히 반대였는데(가후는 조조에게 투항하길 원했고 장수는 원소에게 가길 원했다), 장수가 손을 쓰기도 전에 원소의 사신을 내쫓아버리고 조조에게 투항할 것을 일방적으로 권유했다. 가후는 정세를 고려했을 때 장수의 운이 다했고 천하가 점점 나뉘고 있는 상황에서 애초에 본인이 모시고 있던 장수는 더 이상 살아남기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가후가 장수에게 전한 말이 기가 막힌다.


"원소는 형제 원술조차 신뢰하지 않고 세력도 강력해서 우리를 경시하고 중용하지 않겠는데 조조는 천자(天子)를 받들고 세력이 열세이기에 자기편이 늘어나기를 원하므로 과거의 사원은 문제 삼지 않고 우리를 틀림없이 중용하리라"


그는 이미 정세 판단이 끝난 상태였고, 자신의 다음 거취를 조조 군으로 정해두었다. 사실 조조에게 투항한 이후 장수는 다소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반면 가후는 천수를 누렸으니 처세라는 게 참으로 잔인한 부분도 있다. 아무튼 가후는 원소와 조조가 어떤 리더인지 정확하게 판단했으며, 과거 조조의 가족과 부하를 죽였다 하더라도 그는 이를 용서해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 정확히는 사람을 파악했다기보다는 정세와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났다. 앞서 동탁이나 이각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지만 그는 이런 역량을 통해 그가 몸담고 있는 조직과 리더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그 운이 다했을 때는 가차 없이 새로운 미래를 그렸다.



3. 리더와의 관계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조조 휘하에 들어간 이후에 그는 그야말로 역량을 마음껏 펼쳤다. 조조 역시 그만한 그릇과 능력을 가진 리더였기 때문에 둘의 조합은 엄청난 성과를 만들어냈다. 조조 휘하에는 이미 뛰어난 책사들이 많았고 그중 순욱은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지략가였다. 하지만 순욱은 가후보다 훨씬 황실과 정도를 중요시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가후는 다소 반대의 성향이었다고 보인다. 조조의 성향과는 아마 가후쪽이 더 잘 맞았을 것이다. 그는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법이 잘 없었고, 조조가 질문을 하면 답을 주거나 예민한 문제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이를 알 수 있는 몇 가지 사례가 있는데 첫 번째는 관도대전 당시에도 양 군간의 대치가 길어지자 조조가 먼저 가후에게 방법을 물었고 그는 조조가 원소보다 뛰어난 인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과감하게 적진을 급습해야 함을 전달했다. 실제 이 방법으로 조조는 관도대전의 승기를 잡는다.


“공은 명철함에서 원소를 이기고 용맹에서도 원소를 이기며 사람을 등용하는 데서도 원소를 이기고, 기회를 보아 결단하는 데서도 원소를 이깁니다. 이 4가지 승리 조건을 가지고도 반년토록 적을 평정하지 못한 것은 단지 아주 안전함을 기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그 기회를 결단함에 빨리 정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적벽대전 관련 일화다. 가후는 적벽대전을 우려했다. 조조군 내부에서도 강동은 적당히 위협하거나 시간을 두고 좀 더 안전한 방법으로 취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었고, 가후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조조 군은 적벽대전에서 크게 패배했고 추후 형주에 대한 장악력까지 상실하게 된다. 하지만 가후는 이를 적극적이거나 직접적으로 반대하기보다 우회적으로 이야기했는데, 조조뿐만 아니라 리더들과 직설적인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했을 때 결론적으로 부하직원의 말이 맞아도 문제가 될 수 있고(당시 시대 분위기를 고려하면 조언이 적중했다고 한들 상사는 전쟁에 져서 기분도 좋지 않을 텐데 '거봐라 내가 뭐랬냐'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들 달라지는 것도 없으며 되려 화를 입을 수도 있다), 적극적으로 반대하여 끝내 관철시켜도 궁극적으로는 선택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으로 그 화가 결국 돌아올 수 있다(조조는 본인이 해보고 싶은 결정을 해야 직성이 풀렸을 것이다. 어차피 본인이 말아먹은 건 누구도 책임질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가후는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에 본인의 의사를 전달하고 결국 리더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선에서 첨언을 하는 정도로 이야기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처세는 현실에서 꽤나 필요한 경우가 많다.


명공(明公)께서 예전에는 원씨를 격파하였고, 지금은 형주를 거두어서, 그 위명은 멀리까지 드러냈고, 군세 또한 큽니다. 만약 형주의 풍요로움을 타서, 관리와 군사들을 먹이고 백성들을 어루만져 편안케 하면, 군대를 수고롭게 하지 않고도, 강동은 머리를 조아리며 복종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조조의 후계자 문제다. 이는 상당히 널리 알려진 일화라서 간단하게 말하면 조조가 자식 중 누구를 후계자로 세울지 고민하다 가후에게 물었으나 가후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고 "원소와 유표 부자를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원소와 유표는 장자를 후계자로 내세우지 않았고,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 패망한 세력들이었다. 가후는 후계자로 장자인 조비를 내세울 것을 말한 것이다. 리더와의 커뮤니케이션은 때로 우회적인 방식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어차피 조비를 내 세우자 고해도 조조는 이에 대한 이유를 묻게 될 것이고 그럼 결국 원소와 유표 사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리더가 근거를 묻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논리를 따지기 때문에 애초에 저렇게 이야기를 해두면 2차 3차 대답을 할 필요가 사라지고 대화는 종결된다. 대충 느낌만 전달하고 리더가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이다.


위 세 가지 사례에서 중요한 건 리더에게 본인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으면서 화를 피하는 효과도 있지만, 결국 리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리더로 하여금 누가누가 추천해서 결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게 할 것이 아니라 주변에서 정보와 첨언을 받고 스스로 결정했다고 생각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책임과 역할이 명확해지고 뒤 탈이 없다.


여기에 가후는 권력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권력 가문과 혼맥을 맺지 않고 편안하게 늙어 죽었다. 가까워진다는 것은 그만큼 멀어질 수도 있는 일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언제나 이롭다.


가후의 삶을 보면 위기의 순간에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여 지킬 것과 버릴 것을 골라내는 능력이 탁월했으며, 자신이 몸담을 조직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줄 알았고, 리더와의 소통에서는 나서야 할 때를 알았으며 군신 간의 역할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기업을 포함한 조직에는 다양한 인재가 필요하지만 가후와 같은 인물이 곁에 있으면 리더는 상당히 편하다. 뛰어난 정세판단과 사리분별력, 그리고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설 때를 아는 능력을 통해 조직에 큰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좋은 보탬이 된다. 가후를 리더의 그릇이라고 할 순 없지만 책사와 전략가로서는 으뜸가는 능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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