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랜도스와 피터스. 콘텐츠 전문가와 프로덕트&운영 전문가가 만나다
넷플릭스의 CEO가 바뀌었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스티브 잡스다. 회사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1997년 넷플릭스를 공동창업했고 회사를 글로벌 스트리밍 회사로 키웠다. 넷플릭스가 DVD대여업으로 시작했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두 개의 회사를 창업한 수준이다.
이런 상징적인 인물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떠나는 이슈에 대해서는 당연히 많은 기사와 분석이 있었다. 하지만 정작 어떤 CEO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지, 넷플릭스는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글이 없었다. 리드 헤이스팅스가 여전히 이사회 의장으로서 역할을 하겠지만 새로운 경영진의 생각이 궁금해지는 시점이다. 그런데 마침 신임 Co-CEO인 그렉 피터스(Greg peters)가 블룸버그와 인터뷰한 내용이 있어서 간단하게 정리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조금 적어보았다.
1) 넷플릭스는 2020년부터 테드 서랜도스와 리드 헤이스팅스의 Co-CEO 체제였고 그렉 피터스는 2023년부터 헤이스팅스의 자리를 대체했다. 사실상 헤이스팅스는 2020년부터 CEO 수업을 진행해 온 셈이다
-> 개인적인 생각인데 밥아이거 퇴임 후 복귀까지 혼란했던 디즈니의 상황을 반면교사 한 듯 보이기도 한다..
2) 피터스는 넷플릭스에서 글로벌사업총괄, 최고제품책임자, 최고운영책임자를 역임했으며 2016년 넷플릭스의 한국 진출을 주도했고 이 때문에 한국에도 방문한 적 있다. 최고제품책임자일때는 돌비사운드 등 도입으로 제품 퀄리티를 제고했고 최근에는 계정공유 요금인상 정책이나 광고제 도입 같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3) 테드 서랜도스는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최고콘텐츠책임자 출신. 결국 이 둘의 만남은 넷플릭스 내 최고의 콘텐츠 전문가와 프로덕트 & 운영 전문가의 만남이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이 둘의 각기 다른 강점이 상호 보완, 완충을 통해 보다 완벽한 리더쉽 체제로 작동할 것이라 기대한 듯하다. 정말 완벽을 추구하는 성격이 아닐 수없다.
4) 인터뷰에는 한국과 오징어게임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오징어게임은 글로벌 인구가 동시간대에 같은 콘텐츠를 소비하고 그 문화를 공유하게 된 대표 사례로 이제 넷플릭스는 이런 현상을 매주 만들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 매주 전 세계가 같은 동시간대에 공유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엄청난 영향력이자 힘이 맞다. 이게 완성되면 같은 제작비를 받더라도 넷플릭스의 경쟁우위가 훨씬 강력하다. 콘텐츠의 목적은 많은 돈을 벌기 위함도 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소비해 하나의 문화적인 기록을 남기는 데에도 그 의의가 있다.
5) 두 CEO는 넷플릭스가 여전히 글로벌 성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인도네시아나 인도와 같은 지역에서 성장의 잠재력을 확인하는 중이라고 한다. 넷플릭스는 한국을 통해(여기서도 한 번 더 한국 이야기가 등장) 현지화된 콘텐츠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갖고 있는지 확인했다. 이제 넷플릭스는 글로벌 각 국가에 현지화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회사가 되었다.
-> 이를 통해 위 4)번에서 언급한 매주 전 세계를 공유하는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게 되고 이는 넷플릭스가 콘텐츠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해 넷플릭스 회원의 60%가 한국 콘텐츠를 시청했다고 한다.
6) 새로운 탑 매니지먼트는 (자체 콘텐츠를 외부채널에 팔거나 서비스하는) 스튜디오 방식의 비즈니스는 생각하고 있지 않으며 콘텐츠 사업자들 역시 콘텐츠를 매각하기보다 라이선스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콘텐츠를 사고파는 library acquisition 비즈니스가 활발해지만 콘텐츠 산업은 무기거래상처럼 변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 아마 넷플릭스는 IP사업자로서 라이브러리가 통째로 거래되는 흐름이 넷플릭스에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넷플릭스는 라이브러리 인수보다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통한 유저 유입을 선호하는 듯 보인다.
7) 두 CEO에 따르면 작금의 OTT 경쟁은 매우 치열한 상황인데 곧 consolidation 작업이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는 이미 수많은 변수와 가정을 검토하고 있으며 안정적으로 수익을 내고 있는 1위 사업자 이기 때문에 경쟁사들은 이런 사업구조를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넷플릭스는 그 사이 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 실제로 어느 정도는 맞다. 넷플릭스를 제외하고 제대로 수익(은커녕 흑자를 내는 곳도 많이 없다)을 내고 있는 경쟁업체가 없다 보니 그야말로 돈을 쏟아부으면서 경쟁을 하는 상황이다. (수혜는 제작사들만..) 두 사람은 이 상황이 그리 오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합종연횡이 시작되면 가장 유리한 것은 역시 돈을 벌고 있는 업체고 이미 상당한 콘텐츠 경쟁력을 확보한 넷플릭스이기 때문에 분명 우위가 존재한다.
[개인적인 생각 및 정리]
정리해 보면 리드 헤이스팅스라는 상징적인 인물을 뒤로하고 이 두 명의 새로운 리더십은 넷플릭스를 좀 더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회사로 바꿔나갈 듯하다. 이미 이들이 C레벨로 경영에 관여한 지 수년이 흘렀기 때문에 리드의 퇴장이 넷플릭스를 드라마틱하게 바꾸기보다는 현재의 기조를 그대로 이어가지 않을까 싶다. 넷플릭스의 북미 성장은 성숙 단계에 접어들었고, 글로벌 성장도 정점을 지나는 상황이라 인도나 인도네시아 같은 국가의 포텐셜을 현실로 만들어 이용자를 확대하고 성숙단계로 접어든 국가에서는 ARPU를 올려가는 모범 답안을 택할 수밖에는 없다.
새로운 경영진은 회사가 꾸준히 실적을 유지하고 성장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작업들을 해나갈 것인데 스티브잡스 사후의 애플이나 빌게이츠 퇴장 이후 MS도 모두 이런 과정을 겪었다. 제프베조스의 아마존도 현재 이 과정을 겪는 중이고 넷플릭스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회사를 상징하는 창업자가 퇴장하고 안정적이고 시스템을 중심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인데 넷플릭스의 향후 몇 년도 이런 변화를 만들어내는 시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