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로 만나는 비즈니스 이야기
IP의 상업적 성장은 미디어, 그리고 IT디바이스의 발전과 그 궤를 함께 했다. 특히 콘텐츠는 그 자체로도 IP이자 캐릭터IP, 아티스트IP 등을 품고 있는 그릇이기도 하다. 대중은 주로 여러 미디어 매체를 통해 콘텐츠와 IP를 소비해 왔는데 만화 혹은 소설 같은 도서류나 TV쇼, 영화가 대표적이고 최근에는 유튜브나 OTT, SNS 등을 통해 셀 수 없이 많은 형태의 콘텐츠를 접하고 그 안에서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지금은 콘텐츠가 패션, 장난감, 생활용품 등 머천다이즈와 디지털 굿즈, 테마파크나 전시와 같은 공간사업 등 다양한 IP비즈니스로 펴져가는 호리존탈(Horizontal)의 확장을 이뤄내고 있으나 과거 콘텐츠IP는 소설, 만화, 영화, 드라마, 공연 등 콘텐츠 내에서의 확장인 버티컬(Vertical) 확장이 주를 이뤘다. 물론 콘텐츠 영역 안에서 나타나는 확장도 뛰어난 부가가치를 창출해 왔지만 좀 더 완전한 의미의 IP비즈니스로 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러다 1920년대 이후 미키마우스, 슈퍼맨, 배트맨, 캡틴 아메리카 등 현재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캐릭터IP와 콘텐츠가 대거 등장했는데 만화 콘텐츠의 전성시대와도 같았다. 이 당시 대공황과 1차 세계 대전 등 큰 어려움을 겪었던 미국 내에서 희망과 용기를 주는 히어로 콘텐츠 및 캐릭터가 다수 등장한 배경이다. 그리고 1950년대에는 세계 최초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가 개장(1955년)하며 콘텐츠가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시도가 있었고 최초의 아이돌이라는 수식어를 갖고 있는 엘비스 프레슬리가 데뷔하며 아이돌, 팬덤 문화를 탄생시켰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1960~1970년대 들어서며 콘텐츠IP는 또 한 번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것이 영화에서 스타워즈가 대표적이고 음악에서는 비틀즈가 있었는데 이 둘은 IP를 소비하는 대중의 문화를 크게 바꿔놓았다. 여기에 TV 보급이 본격화되며 TV 드라마 시리즈는 수많은 히트작이 탄생시켰다. 과거에도 엘비스 프레슬리 등 아티스트에 대한 대중의 열광은 대단했으나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파괴적이었던 비틀즈를 중심으로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강해졌다. 음악을 좋아하고 즐기는 수준을 넘어 아티스트의 모든 것을 소비하고 모든 것에 관심 갖는 ‘팬덤 문화’가 만들어졌다. 특히 비틀즈가 그룹이었다는 점에서 지금의 아이돌 문화와 더욱 가까운 형태로 발전해 아티스트IP의 부가가치를 몇 단계는 레벨업 시킨 변화였다.
스타워즈도 마찬가지였다. 스타워즈가 미국 문화에 미친 영향은 지대한데, 단순히 영화와 MD상품이 크게 히트한 것을 떠나 사람들이 IP를 즐기고 소비하는 문화 현상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영화 속 복장을 코스튬플레이하고, 영화의 요소를 일상생활에도 적용하고 즐기며 현재 스타워즈는 IP의 개념을 넘어 미국 내 문화의 한줄기로 자리 잡았다. 또한 콘텐츠를 문구, 장난감 등 MD상품 영역으로 넓혔다는 데 있어 스타워즈는 IP의 사업영역과 부가가치를 크게 끌어올렸다.
1990년대~2000년대를 거치면서 달라진 것은 기술의 변화다. 인터넷이 보급되고 PC나 CD플레이어, MP3, 휴대폰 같은 휴대용 디바이스가 등장하자 영상과 음원에 대한 공간 제약이 사라졌다. 이때부터 IP를 접하는 방식이 점차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영화나 TV시리즈를 영화관 혹은 TV가 아닌 노트북을 통해 어디서든 볼 수 있게 되었고, 게임 분야에서도 아케이드와 콘솔에서 PC게임으로 주도권이 넘어가며 누구나 쉽게 어디서든 게임 콘텐츠를 접할 수 있었다. 당연히 IP에 대한 소비 트렌드도 달라졌다. 특히 게임은 콘텐츠 내에서 그 영향력을 급속히 키웠다. 1960~1980년대 아케이드와 콘솔게임기가 주로 보급되던 시기에도 게임산업은 이미 나름의 규모를 갖추고 있었으나 인터넷과 PC, 그리고 이후 모바일의 보급은 게임산업 규모를 기하급수적으로 키워냈다. 콘솔이 세네 집마다 한 개가 있을까 말까 했다면 PC는 집마다 한 대가 보급되었으니 당연한 결과인 셈이다.
2010년대를 지나며 모든 산업 영역이 그렇듯 스마트폰의 등장으로 또 한 번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났다. 데이터 분석 플랫폼 data.ai와 게임 마케팅 정보 기업 IDC에 따르면 2022년 글로벌 게임시장 규모를 2,220억달러(약 300조원)로 추정했으며 이 중 모바일게임이 절반 이상인 1,360억달러였다. 그 뒤를 콘솔, PC 등이 이었는데 불과 2014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게임시장은 1,000억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증가한 대부분은 모바일 게임이다. 앞서 PC가 집집마다 보급되었다면 모바일은 모든 개인에게 보급되다시피 했으니 게임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콘텐츠와 IP 소비의 패러다임이 변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모바일 게임, SNS, OTT처럼 콘텐츠 시장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킬러 콘텐츠가 등장했고 IP를 접하는 방식도, IP의 개념도 크게 확장됐다. 게임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모바일 게임 시장 규모가 다른 모든 게임 산업을 합친 것 보다도 커졌으며, OTT 및 동영상 플랫폼은 PC로 옮겨졌던 영상 콘텐츠 소비 환경을 한 번 더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제는 각자 집이 아니라 밖에서도, 심지어 이동하면서도 영상 콘텐츠를 실시간 소비할 수 있게 되어 공간의 제약이 완전히 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콘텐츠 소비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켰고 기존 체제인 TV, 영화관, 만화책과 같은 매체의 위기를 가져오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이에 따라 아티스트IP는 배우, 가수와 같은 유명인 중심에서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처럼 보다 다양한 형태로 세분화되었고 소설은 웹소설, 만화는 웹툰, 캐릭터도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로 넓게 확장했다.
현대의 IP는 일일이 다 언급하기 어려울 만큼 많은 형태로 소비된다. 앞으로 등장할 IT발전과 디바이스 개발에 따라 대중의 IP 소비방식 변화는 또 어떤 방식으로 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달라지지 않는 사실은 대중에게 자리잡은 좋은 IP의 가치는 디바이스와 기술발전에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IP비즈니스의 본질이 채널과 기술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와 캐릭터로 대중에게 다가가 가슴속에 자리잡는 것이라는 것을 한 번더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