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가둬두기도 하나요?

우리 이야기의 시작

by tommymommy

문득 새로운 걸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열한 한국의 경쟁 사회에서 자란 베이비붐 세대, 92년생에게는 일종의 조급증이 있다.

온전히 쉴 때 쉬지 못하고 무언가를 해야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거라는 강박.

백수가 되면 '여행이라도 다녀오지 그래?'라는 Should 섞인 권유가 자연스러운 분위기.

나라고 자유로울 수가 있겠나, 그렇게 뭐가 좋을까 고민한 지 약 2달째.


그러던 중, 얼마 전에 만난 사촌 동생이 중국어를 배워보라며 추천해줬다.

중국으로 급하게 교환 프로그램을 가게 됐는데, 집으로 찾아오는 학습지 선생님 덕분에

두 달 만에 속성으로 중국어를 배웠고 4달 만에 현지에서 말을 뗐고 지금은 HSK를 배운단다.


에이, 중국어는 무슨. 마-마-마-마에서 때려치운 지 오래야.


그런데 의외로 중국어가 배우기 쉽다는 동생의 짧은 설득에 나는 모른 척 넘어갔다.

무언가 새로 하고 싶다는 내 조급증이 발동한 것인데, 사촌 동생도 놀란 미친 실천력으로 나는 그날 저녁에 바로 학습지 무료 체험 학습을 신청했다.

이튿날, 담당 팀장님의 언제 시간 되세요? 라는 연락에 내일도 돼요! 라며 만남을 서둘렀다.


그렇게 중국어 선생님과의 첫 수업(이라고 쓰고 체험)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네이티브 선생님이자 우리 지역의 팀장님이신 분께서 방문하던 날, 우리 집 7살 난 토미가 화났다.


[토미, Tommy]

나이: 7살 (2012.09.03 출생)

종: 갈색 푸들

성격: 온순한 편 (응, 쫄보)

특징: 집구석 여포 최강자


겁 많은 토미가 모르는 사람의 방문에 극대노했다.

모르는 사람인 것도 모자라 나와의 어색한 기류를 눈치채기라도 한 듯

엄마 모르는 사람이 왔어요 어떡해요 어떡해 이 사람아 나가란 말이다 라고 자꾸 들썩이는 토미.

진정하지 못하고 식탁 주변에서 오르락내리락 의자를 넘나들며 짖어대는 녀석 때문에

팀장님은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다행히 팀장님은 강아지를 그렇게 무서워하시는 분이 아니어서 난리 치는 토미의 모습에도 비교적 침착한 모습으로 진행 방식과 수업 코스를 설명해주셨는데, 무료 체험 학습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수업은 5분도 채 진행되지 않고 끝나버렸다.


그래, 어차피 배울 거였으니까. 해보자.


결국 사인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다. 선생님께서 오실 때마다 토미가 이렇게 짖으면 어떡하지?

아니야, 그래도 녀석이 머리 좋은 푸들이라 금세 사람을 알아보니까 괜찮을 거야 라고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기가 무색하게 내 손은 회원 등록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한 번 마음 먹은 건 한다. 그렇게 체험인 듯 체험 아닌 첫 번째 수업이 끝났다.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설레는 기대감으로, 예전만 못한 내 두뇌에 대한 진심 어린 걱정으로

본격적인 수업을 기다리던 중 나는 팀장님으로부터 전화를 한 통을 받게 된다.


안녕하세요, OOO 학습지 OOO 팀장입니다.

이번에 수업 진행해주실 분께서 강아지를 무서워하신다고 해요.

혹시 강아지를 수업하는 1시간 동안만 가둬둘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한다고? 가둬둔다고? 누구를? 토미를?

그 말을 들은 소감은 1. 어이가 없었으며 2. 얼토당토않았고 3. 급기야 따질까 싶기도 했지만

진정하면서 나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헉, 죄송해요. 한 시간이나 가둬둘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렇게 해본 적도 없고요.

괜찮으시다면 다른 선생님을 배정해주시겠어요?


솔직히 말하면 나의 마음과 다르게 뱉은 그 차분한 대답에 나 스스로 감탄했다.

마음 같아서는 네, 수업 안 하고 말지 그런 일은 없습니다 라며 끊고 싶었는데 나름 참았으니까.

그러자 팀장님께서는 그럼 다른 선생님을 알아봐 주시겠다며 수업을 한 주 미뤄야 한다고 했지만,

그건 나에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그렇게 부탁했다.


통화가 끝난 후 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약간의 분노와 토미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차분히 생각해 본 내 의외의 결론은

"그럴 수 있겠다"라는 약간의 이해와 역지사지로 점철된 한 마디였는데,

그 이유는 애견인에게나 강아지가 가족이지 그들에게는 잠시 가둬둘 수는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아주 비합리적이진 않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경험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우리에게 강아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이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부모의 마음을 어렴풋하게 머리로나마 이해하는 것처럼,

그들도 애견인의 마음을 장착하고 강아지를 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속상해하기 전에 내가 먼저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양해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고 한낱 해프닝 같은 에피소드가 내가 브런치를 시작하고 싶은 이유라고 하면 웃길까?

문득, 비애견인에게 애견인의 마음을, 우리의 다른 세계를 조금이라도 알려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사명? 아니고요. 너무 거창하고 소망? 그것도 너무 미화됐고요.)

작은 바람으로 나와 토미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정리하고자 한다.


7년 차 애견인인 나와 7년 차 우리 집 동거견인 토미의 이야기.

재미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눈물 나게 애틋하기도 한 우리 이야기의 서막이 내 중국어 수업으로 인해 시작된 것은 웃기지만,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