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이별을 준비한다

내가 토미를 사랑하는 방식 (부제: 우리집 토미를 공개합니다)

by tommymommy

학부 수업 때 전구가 켜지듯 머리를 띵하고 맞은 순간이 있었다.

그 기억이 뇌리에 박혀서 무슨 수업인지, 어떤 교수님인지도 기억은 안 나지만 딱 그 순간은 또렷하다.

그날은 작품을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고 있었는데,

교수님께서 예시로 진달래꽃을 들었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로 시작하는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한국의 교육과정을 들은 사람이라면 줄줄 읊을 모두가 잘 아는 시. 이별의 통한과 사랑하는 임에 대한 희생, 헌신이라고 외우던 주제.


근데 말이지, 왜 헤어졌다고 단정 지어?


교수님이 갑작스러운 한 마디에 다들 무슨 말인가 싶어 조용해졌다.


우리는 시제를 잘 봐야 해, 봐봐.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이라는 게 가정법 아니야?

가실. 그럼 아직 안 가신 건데 왜 헤어졌다고 하냐는 말이야.

우리가 헤어질 때 혹은 헤어지고 나서, '만약 헤어진다면'이라는 가정을 하진 않잖아? 그럼 이 시의 주제를 이별의 아픔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왜 가실 때에는 이라고 했을까?


나는 생각했다. 지금 헤어지는 순간이고 이제 막 떠나려는 그 찰나인가? 이별을 통보받고 난 직후인가?

예를 들면 카페에서 헤어지자는 임의 말을 듣고 그래, 문을 나서는 순간에는 나를 즈려 밟고 가라 라는

뭐 그런 거 아닐까? 하며 시 해석은 안 하고 머리로 소설을 쓰고 있던 와중에 교수님께선,


너무 행복하니까 그렇지. 너무 좋으니까.

지금 내가 이 사람이 너무 좋은데 덜컥 겁이 나서, 헤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상상으로 쓴 거지.

너네도 그럴 때 있잖아. 너무 좋아서 이 순간이 빨리 끝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에 헤어짐을 상상하는 그런 때.

실은 그러니까 진달래꽃이 이별의 아픔이 아니라 사랑의 절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란 설이 있어요.


물론 내가 학교를 졸업한 지만 3년이고, 이 수업을 들은 것은 적어도 그 이상이니 한 자 한 자 교수님의

언어를 모두 기억하진 않지만 적어도 틀은 이랬다.

이별의 아픔이 아니라, 사랑의 절정이라니. 이별을 두려워하는 걱정이라니!


아. 머리를 쿵 맞은 듯-지난 12년간 학교에서 배운 게 다 무슨 소용이람 싶은 생각도 좀 들었으나- 깊이 공감되었다. 너무 행복한 순간에 불행을 걱정하는 인간의 본성. 김소월 시인도 그랬던 것일까?


나는 그때 불현듯 토미가 떠올랐다. 내가 토미를 생각하는 마음이, 진달래꽃과 닮아있다고.


21살의 나는 토미를 집으로 데리고 오기 전까지만 해도 '혼자 사는 집에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주 위험하고 철이 없다 못해 집 나가버린 수준의 마인드를 갖고 있었다.

(*지금은 가족, 토미와 같이 살지만)


그러나 그 작고 귀여운 존재가 우리 집에 들어오는 순간, 사실은 그렇게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차원의 일이 아니었다는 걸 절감했고, 또 너무 소중했으며,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언제라도 토미가 떠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이별의 순간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 말에 언젠가 한 번은 친구 A가 물었었다.

그럼 너무 힘들지 않아?

응, 존X 힘들지. 그래서 나는 주변에 강아지 쉽게 키우지 말라고 해.


그렇지만 나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이 토미를 내 인생에 들여놓았다.

하지만 토미가 떠나갈 날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해서 맨날 죽상으로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지.

그래서 매 순간 토미한테 최선을 다한다. 상투적인 말이 최선의 표현일 때가 있는데, 말 그대로 최선을 다한다. 나중에 후회할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다.

매 순간 토미를 위해 내 마음을 다해 아낌없는 사랑을 보내는 것, 이것이 나의 진달래꽃식 사랑이다.


짧게는 10년, 아주 길게는 20년이라는 세월을 같이 할 우리들의 강아지. 나의 토미.


드라이기의 바람을 좋아하는 토미를 위해 출근 준비에 바쁜 와중에도 토미에게 5분간 바람을 쐬어주고

내 다리 사이에서 자는 걸 좋아하는 토미를 위해 틀어진 자세로 자다가 쥐가 나고

대행사 시절 새벽 퇴근에도 거실에서 날 기다려준 녀석을 위해 야간 산책하러 나가는 것.

남들의 눈이 아닌 내 마음에, 내 성에 차는 만큼 토미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순간의 잘못된 행동이 평생 기억에 남아 미안함이 된다면 내가 얼마나 슬플지 아니까.

이 와중에도 토미보다 내 미래를 걱정하는 것 같은 나는 참 미운 인간이지만.


우리집 토미를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