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는 후회하지 않는다

한 번 사는 인생, 토미처럼

by tommymommy

토미를 보면 '어떻게 이렇게 똑똑하지?' 싶을 정도로 감탄할 때가 있다.

병원 가는 길을 기억하고 눈치챘을 때 우뚝 서버린다거나, 가족들의 도어락 비밀번호를 치는 리듬을 기억한다거나(망상주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 또는 처음 보는 사람과의 관계성을 눈치챘을 때 달라지는 태도.


관계성을 어떻게 눈치채냐고? 나도 궁금하다. 토미는 보통 내가 만나는 남자친구들을 만나면 나도 안중에 없을 만큼 그 뒤를 졸졸 쫓아다닌다. 나보다 남자친구를, 그러니까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남자친구를 더 많이 좋아하고, 내가 남자친구를 좋아하는 것보다 본인이 남자친구를 더 많이 좋아한다. 연애는 내가 하는데 그때마다 나는 토미에게 찬밥이 된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가장 놀랐던 것이 드라이기 소리를 들었을 때의 토미 반응이다.


지난번 포스팅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드라이기를 좋아하는 토미를 위해 나는 아침이든 저녁이든 머리를 감고 나서 토미에게 바람을 쐬어준다. 목욕은 그렇게 싫어하면서 드라이기 소리, 혹은 드라이기를 드는 소리만 들려도 멀찌감치서 뛰어오는 녀석을 보면 나는 그만 안 쐬어주고는 못 배긴다.


내가 씻을 때쯤이면 드라이 할 생각에 미리 대기를 하는 것도 모자라 드라이를 안 쐬어주는 가족들에게는 근처에도 안 간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야 깨달았다. 심지어 내가 한 번 머리를 다 말리고 나서는 그 이후에 들리는 드라이기 소리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물론 토미가 내가 드라이기를 드는 것을 목도한 때에는 빛의 속도로 달려오지만,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소리에 반응하지 않는다.)


고전적 조건 형성, 흔히 알고 있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의 경험적 타당성을 다시 한번 얻었다,

토미로부터.


토미는 완벽하게 학습한 사실에 대해서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직진이다. 학습에 의해 얻은 결론에 대해서는 주저하지 않고 본인의 신념을 갖고 간다.


내가 드라이를 들면? 본인이 좋아하는 드라이를 쐬어준다는 경험적 근거.

동생이나 엄마가 들면? 문 앞에 아무리 서있더라도 본인에게 돌아오는 바람은 없다는 경험적 근거.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절대 본인에게 바람을 나눠주지 않을 동생을 기다리며 화장실 문 앞에 서 있는 실수는 하지 않는 것이다. 무섭게도 학습 중심적인데, 이게 참 인간보다 낫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하지만 강아지는, 최소한 토미는 그럴 일이 없다. 한 번 습득한 사실에 대해서는 틀림없는 확신을 가지니까. 그래서 사실 후회할 일도 없다. (라고 나 좋을 대로의 해석)


실제로 토미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진심으로 알고는 싶지만-내가 느끼는 토미는 그렇다. 그 순간 본인의 판단에 충실하다는 거. 그래서 토미가 화를 내든 꼬리를 흔들든 그것이 토미 감정의 100%라고 생각이 들어서 나까지도 덩달아 이 아이 앞에서는 100%가 된다.


반대로 나는 참 걱정이 많은 편이다. 걱정도 많고, 쓸데없이 경우의 수도 많이 생각한다. 최소한 경험적으로 아는 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게 사랑이든 인간관계든 마음처럼 안 된다. 사람 앞에서도 나는 내 감정에 100%가 될 수 없다. 어느덧 70%, 50% 줄여나가며 덜 상처 받고 덜 관계 맺는 소극적인 인간이 되어버렸다.


참, 토미의 뚝심이 부럽다.

한 번 사는 인생 토미처럼 살고 싶다.


너에겐 너의 양말일 거라는 확신이 있지, 하지만 내 것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