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열정도 돈 없인 안 나오는 거였어!
"네? 어디요?"
"헤드헌팅사 A입니다. 잡플래닛에 올려두신 이력서 보고 연락드려요. 제가 추천해드릴 곳은
국내 대표 건설, 에너지 그룹사의 주력 계열사입니다."
건설? 편견도 없었지만 기대도 없는 업종. 돈은 많이 주겠지? 요즘 아파트 잘 나가는데
관광업보다는 안정적이겠지? 그 찰나에 나는 "네, 쓰겠습니다"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지금 이력이 좋고 SNS와 디지털 마케팅에 강점이 있어 보인다는 헤드헌터의 그럴듯한 유혹과는 별개로
나는 사실 이직 쪽에 마음이 많이 기울어 있었다.
관광업이라는 업종도, 호텔이라는 번쩍번쩍한 장소가 주는 분위기도 좋았고 그에 그치지 않고 사회 환원을 위해 다양한 재단도 운영하고 있는 그럴듯한 그룹사였고 워라밸도 지켜졌지만
2019년 1월을 기점으로 당시 회사는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말하면 우리 사업장의 타깃은 외국인 대상이라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히자마자 거의 모든 해외 손님의 방문이 0으로 수렴했다.
'내 나이에 벌써부터 이렇게 편해도 되나?' 하는 당시 쓸데없는 열정 페이를 못 버렸던 대행사 출신 마케터의 조급증이기도 했고. 그래도 좀 더 배워가며 아직은 프로젝트를 많이 해야겠다는 합리화 속에 연봉 삭감에 대한 두려움을 두 스푼 정도 보태고 있었으니까.
건설? 아저씨들 됐다 그래, 나도 한 배짱 하니까!
하는 마음으로 곧장 지원했다. 그런데 곧장 붙었다. 곧장 2차 면접으로 가더니, 합격해버렸다. 본인을 '홍보꾼'이라 설명하는 홍보팀장님은 나에게서 홍보꾼의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오래간만에 홍보를 재밌어서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그리고 나에게 남은 건 연봉 협상과 퇴사 통보, 입사일 결정이었다.
연봉 협상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대행사에서 넘어갈 때만큼의 드라마틱한 수치는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행사가 워낙 낮았고 관광업 그룹사에서는 이보다 꽤 높였지만 성과급 비율이 상당한 편이었다. 새로 입사하게 될 건설사에서는 성과급 금액을 기본급으로 계산해줄 테니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어도 선방한 게 아니냐는 그럴듯한 논리로 나를 설득했다. 묘하게 '코로나 때문에 너네 성과급 안 나오잖아?'라며 내 안의 거센 돈 욕심을 잠재웠다.
결국엔 두 번째 회사의 원천징수 기준 400 정도밖에 올릴 수 없었지만 그때는 그래도 안정적인 곳에 취업한다는 것에 만족스러웠다. 그리고 고작 3년 9개월이라는 경력을 가진 내가 '전사 디지털 마케팅 프로젝트'의 토대를 닦아 개척해나간다는 게 그때 당시에는 재미있어 보였다. (진짜 미친 거지)
그렇게 2020년 9월 21일, 나는 주말 이틀만 달랑 쉬고 세 번째 회사로 옮겼다. 1년 6개월이 지나지 않은 지금, 네 번째 회사에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글을 쓰고 있다면, 다음 편에 대한 예고편이 될까?
그때부터였다. 나의 일복이.
누가 일복에 복이라는 단어를 붙여서 더 잘 부려먹기 시작했을까? 진짜 천재다. 왠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줄넘기 1급 인증서를 갖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인데,
죽을 것 같이 힘들다가도 내 팔자거니 하고 인정하게 된다. 나는 그때부터 일복, 일운, 일사랑, 일행복.....
일이란 일에 깔려 살았다.
사실상 이제부터 진짜 내 경력에 대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