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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완독 하는 세 가지 비법

by 카인말러

「죄와 벌」 2권을 펼친 순간이었다. 이제 겨우 1권을 끝냈는데, 500 페이지나 되는 2권을 보고 한숨이 나왔다. 정말 꾸역꾸역 읽었다. 누구도 나에게 읽으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포기하는 기분이 너무 싫었다. 그래서 하루에 세 페이지라도 읽었고, 완독 하는 데에는 3개월이 걸렸다.


페이지 수가 많아서 오래 걸린 것이 아니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는 페이지 수는 거의 비슷하지만 읽는 데에 2주밖에 안 걸렸다. 아마 학교 수업과 과제가 없었다면 더 빨리 읽었을 것이다. 어찌 됐든 결국 「죄와 벌」도 완독을 했다. 다시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은 안 읽을 거라고 다짐했지만 그 이후에도 「지하로부터의 수기」나 조주관 교수님의 「죄와 벌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책을 찾게 됐다. 돌이켜보면 나는 읽는 동안에는 그렇게 지치던 「죄와 벌」이 도리어 그리웠던 것 같다.


비법이라는 말을 나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블로그 독자, 그리고 브런치 독자들에게, 무엇보다 나에게 책 추천을 자주 부탁하는 내 친구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무리 지겨운 책도 중간에 그만둬서는 안 된다." 끝까지 읽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책을 정독(精讀) 하여, 완독(完讀) 할 수 있을까? 세상만사가 지름길이나 비법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나도 처음 경제학 서적이 아닌 다른 책들, 고전 문학이나 러시아 소설들을 접했을 때는 너무 어려웠다. '그때 알았으면 더 수월하게 읽었을 텐데...' 하는 것들이 있다. '끝까지' 읽기 위해, 책을 손에서 쉽게 놓지 않는 몇 가지 방법을 이야기해보고 싶다.



첫째, 기록하며 읽을 것


기록하며 읽는 것은 그 책을 꾸준히 읽는 데에 상당히 도움이 된다. 모든 내용을 기록하라는 게 아니라, 내 가슴에 와 닿는 구절이나 인상 깊은 내용을 기록하며 읽는 것이다. 이렇게 읽을 때의 장점은 읽으면서 '중요한 내용'을 찾게 된다는 점에 있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가득 찬 채로 책을 읽으면 눈은 글자를 읽고 있는데 머리로는 아무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찾아 기록하려 하면 글의 내용을 놓치는 불상사는 피할 수 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와 닿는 말들을 찾으려 노력하면 평소였으면 와 닿지 않았을 말들이 오히려 가슴 깊이 새겨지기도 한다.

다만 너무 세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읽는 것보다 기록하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면 책을 한 권 읽고 있는 동시에 책을 한 권 쓰고 있는 셈이다. 오히려 독서가 피로한 활동으로 느껴질 수 있다. 추천하는 방법은 페이지 수와 키워드만 간략하게 노트에 적어놓거나, 날개 포스트잇으로 중요한 부분을 표시해놓는 것이다. (나는 주로 중요한 부분은 포스트잇을 붙여놓고, 나중에 서평을 쓰면서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는 편이다)






둘째, 한 시간을 잡을 것


독서가 도통 진도가 안 나갈 때 내가 쓰는 방법이다. 이번 주 중에 내가 시간이 가장 여유로운 날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날 한 시간을 정확하게 잡아놓고 책을 읽는 것이다. 그 한 시간 동안은 휴대전화도 잠시 치워놓고 오로지 책과 단둘이 시간을 보낸다. 타이머를 맞춰놔도 좋다. 하지만 한 시간이라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 만일 이게 아직 어려운 독자라면 30분도 괜찮다. 시간의 양보다도 그 시간을 온전히 책 읽는 데에만 쓰는 게 중요하다. 어림잡아 한 시간 동안 40 페이지를 읽는다 치자. 나는 글을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어서, 보통 한 시간이면 40에서 50쪽 정도 읽는다. 그리고 만일 책이 200 페이지라고 치면, 그 한 시간만으로 최소한 5분의 1은 읽은 셈이다. 공부를 도통 안 하는 아이에게 부모님이 공부할 시간을 정해주고 그 시간을 다 채우면 놀게끔 해주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도 책 앞에서는 그냥 어린 아이다.



마지막, 완독은 책과 나의 약속이다


가장 중요한 말, 핵심적인 내용은 책의 맨 마지막에 나온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이 글도 맨 마지막인 이 부분에 가장 중요한 팁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꼭 그렇지는 않다. 작가는 저마다의 글쓰기 방식이 있고, 중요한 부분을 마지막에 갖다 놓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러지 않는 작가들도 상당히 많다. 그런데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야 그 책의 진가를 알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이유가 있다. 책을 중요한 부분만 발췌독 한다거나, 이미 핵심 내용은 다 이해했다면서 중간에 덮어버리면 그 책을 읽는 데에서 얻는 성취감을 느낄 수 없다. 나는 내가 완독 해낸 책의 내용은 시간이 지나도 잘 기억하는데 완독 하지 못했던 것들은 내용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시로 학교 과제 때문에 억지로 읽었던 존 롤스의 「만민법」는 이제는 한 톨씨의 내용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책의 진가를 알려면 그 책의 전체적인 내용을 알아야 하고, 전체적인 내용을 알고 기억하려면 완독에서 얻는 성취감이 있어야 한다.


책의 첫 장을 펴는 순간 그 행위는 그 책과의 약속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 책을 '꼭' 완독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다. 요즘은 유튜브와 팟캐스트, 몇 분이면 다 볼 수 있는 정보 매체가 너무 많다. 심지어는 정보가 선택과 소비의 대상, 다시 말해 상품이 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읽는 행위"를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하지 책임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책을 읽는 것은 내 권리인 동시에 책임이다. 완독을 하겠다는 약속이라는 뜻이다.



친구들이 나에게 책 추천을 종종 부탁한다. 예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 정말 좋은 작품들을 여럿 추천해 줄 수 있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런 책들은 그들이 안 읽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짧은 책들, 쉽지만 의미 있었던 책들을 추천하게 된다. 심지어는 그 책들도 완독 했다는 소식을 듣기 어렵다. 언젠가 내가 그런 걸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솔직하게 책을 추천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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