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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인말러 Oct 24. 2020

한 사람보다 오래 먹고사는 게 그가 쓴 글이다.


    며칠 전 대학 선배가 SNS에 어린 시절 읽던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을 찍어 올렸다. 나처럼 SNS에 책을 공유하는 사람이 있구나 싶은 호기심에 문자를 보냈다. 그 당시 내가 읽고 있던 책은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라는 작품이었다.


"누나 혹시 제인 에어 읽어봤어?"

"완전 옛날에, 중학생 때 읽었었지!"

"나 이번에 처음 읽어보고 있는데, 그냥 이 책에 완전히 반한 것 같아"

"맞아. 그렇게 마음이 동할 때 책 읽는 게 행복하지. 그런 작가분들이랑은 친구도 되고 싶은데, 이미 세상에 안 계시잖아..."


    그 말이 며칠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러게, 이미 작가는 세상을 떠났는데, 마치 그 작가가 내 친구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더러 있었다. 한 번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고, 공연히 오사무를 내가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정작 오사무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뜬 사람이었다.


    2015년 7월 20일,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폐렴을 앓으시며 병원에 입원해 계셨는데, 그날은 일주일 중 유일하게 내가 병문안을 찾아가지 못한 날이었다. 영영 스스로 눈을 뜨실 수 없는 할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나는 눈물을 터뜨렸다. 고인(故人)은 죄송하다는 말보다는 사랑한다는 말이 더 듣고 싶으셨겠지만, 나는 일찍 오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 지나 나는 할아버지 댁에서 유품 정리를 도왔다. 그곳에서 할아버지께서 쓰신 일기를 몇 편 발견했고, 고모한테 허락을 받고 나는 그것을 집으로 가져왔다. 일기에는 나를 가엽게 여기시던 할아버지의 걱정거리도 있었고, 할머니를 위해 알아보신 산책로 얘기도 있었다.


    종종 나 자신이 감당이 안 될 때, 굳지 않은 아스팔트에 빠져,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면 이 일기를 꺼내 읽는다. 할아버지를 마주할 방법은 이제 '글' 밖에 없는 것이다.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듯이, 액자 속에 한 사람이 영상처럼 담겨 그 사람과 계속 대화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현실에서 그럴 방법은 글밖에 없다. 할아버지가 그리운 순간이면 이제는 당신이 남기신 글을 읽는다. 한 사람보다 오래 먹고사는 게 그 사람이 쓴 글이다. 그 글이 독자의 마음이라는 곳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 마치 겨우살이가 가장 크고 높은 나무에 달라붙어 기생하듯이, 한 사람의 글은 타인의 가장 깊은 기억 속에 머문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해봤다. 학교에서 과학을 배울 때면, '정말 죽음 너머의 세게가 있긴 한 걸까. 죽으면 그냥 그거로 끝인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삶이 영원하지 않듯이 죽음도 영원하지 않다. 우리가 쓴 글은 누군가에게 읽힐 것이고, 그 누군가는 글을 통해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이 세상을 떠나더라도, 우리는 타인의 기억에 기생하며 살아갈 것이다. 오늘 내가 펜을 잡는 여러 이유 중에는, 분명히 "기억에 남고 싶은 욕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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