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공부는 맞닿아 있어야 한다.

한중록과 코스모스를 통해 깨닫는 배움의 원리

by 카인말러

대학에 들어와 처음 시작한 동아리가 '연극부'였다. 선배와 주변인들의 권유로 들어갔지만, 얼마간은 연극에 관심이 없었다. 내가 정말 연극에 관심을 갖고, 그 이후로도 뮤지컬이나 오페라도 즐기게 된 계기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와 「햄릿」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다른 작품들도 좋지만, 나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작품들이 가장 좋고,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라는 말에 더 없이 동의한다.


그런데 현실은 드라마보다 드라마 같고, 역사는 연극보다 극적이다. 나는 그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읽으며 느꼈다. 영조는 우울증과 조현병을 앓던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였다. 아들은 아버지의 비난과 무관심에 마음의 병을 얻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아버지는 아들을 미워했을까? 아버지는 왜 아들을 정신 질환으로까지 몰고 갔을까? 영조가 보기에 사도세자는 공부를 소홀히 하는 0점짜리 아들이었다. 2, 3살에 한문 60여자를 막힘 없이 쓰던 세자가 10살이 되자 공부를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대학」과 「중용」을 읽으라는데 아들은 「삼국지」 같은 잡설(襍說)을 읽으며 20살 무렵에는 그런 글들을 모아 자신이 직접 서문을 작성했다. 고작 그런 이유로 아들을 미워했냐고 볼 수 있지만, 왕자 시절부터 글만 읽어온 영조의 입장에서는 사도세자의 행실이 납득이 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들은 전쟁놀이에 빠지고, 글공부는 도리어 소홀히 했다. 한 번은 세자가 "독서가 가장 즐겁다(讀書最樂)"이라고 시를 썼는데, 영조는 이때 "그래, 이런 시를 썼으니 앞으로는 독서를 더 열심히 해라"라고 격려했으면 좋았을거늘 '놀이를 제일 좋아하면서 왜 거짓말하느냐'고 꾸짖었다. 그렇다면 사도세자는 왜 공부를 포기했을까? 2, 3세부터 그렇게도 총명했다는데 왜 공부에 흥미를 잃었을까? 사도세자의 죽음 자체는 비극이지만, 나는 이 비극을 통해 '공부'의 본질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공부를 좋아할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었다. 오늘 그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눠보고 싶다.



왜 사도세자는 공부에 흥미를 잃었는가?



사도세자가 세 살 나이의 일이다. 천자문을 공부하던 중 '사치 치(侈)'자와 '넉넉할 부(富)'자에 이르자 옆에 있던 신하가 시험 삼아 세자에게 물었다. "어느 것이 사치이요, 어느 것이 사치가 아닙니까?" 이때 세자가 자기 의복을 가리키며 사치라 하고, 그 아래 입은 무명 속옷은 사치가 아니라고 답했다. 또 신하가 감투와 의복을 가져와 입히려 하니 세자는 "사치스러워 남부끄럽구나. 싫다."라고 대답했다.


낭비와 검소함을 구분하는 것은 국왕이 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공부다. 사치가 몸에 밴 왕은 나랏돈도 낭비하기 쉽기 때문이다. 세자는 그래서 더욱 엄격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도세자가 받은 교육과 사도세자의 삶은 맞닿아있지 않았다. 비단옷이든 무명옷이든 아랫사람들이 입혀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세자는 동궁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를 배우며 자기 수양에 힘쓸 것을 다짐했다. 그러나 주변에 자기 잘못을 꾸짖을 사람도 없고, 놀이를 할 때에도 같이 노는 아이들이 세자에게 반감을 드러낼 수는 없었으니 사회생활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울 리 만무했다.


「권력과 인간: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의 저자이자 영화 <사도>의 감수를 맡으신 정병설 교수님은 이런 세자 교육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사도세자가 받은 교육을 통해 조선시대 세자 교육 일반의 문제점을 읽어내자면, 세자라는 지위에 어울리지 않게 검소부터 가르친 관념적 교육과, 비자주성 교육, 반사회성 교육을 지적할 수 있다.

정병설 지음, 「권력과 인간: 사도세자의 죽음과 조선 왕실」, 126쪽


다시 말해 세자는 자기 삶과 전혀 맞닿아있지 않은 공부를 해야 했다. 심지어 옷을 입을 때에도, 또래 아이들과 놀 때도 모든 게 자기 중심으로 맞춰지니, 자주적이지도 사회적이지도 않은 교육 과정을 거친 것이다. 세자가 공부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그렇게 아버지와의 관계가 틀어진 이유에 이런 조선 시대 세자 교육이 깔려 있다. 하다못해 세종은 성인이 된 후인 스무 살에야 세자가 됐으나 사도세자는 2살에 세자로 책봉이 되었다.


청소년 교육에 있어 체험과 토론 활동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체험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삶과 맞닿아있고, 또 토론할 때에는 학생이 자주적으로 자기 생각을 펼칠 수 있다. 나는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특히 어머니가 과학 교사셔서 어렸을 때는 어머니께서 이것저것 신기한 실험도 많이 보여주시고, '과학 상자'라고 불리는 공구 조립을 직접 해볼 기회도 많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들어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동안은 그런 공부를 할 기회가 적었다. 공부는 삶과 맞닿아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입시 체제는 대학을 가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공부를 즐겁게 여기기는 어렵다.


그런데 즐겁게 하지 않은 공부 중에 진실로 내 삶에 도움이 된 공부가 있었는지 돌아보면 별로 그렇지 않았다. 내가 즐겁게 한 공부만이 기억에 남고 그 이후에도 새로운 활동을 할 동기 부여가 되었다. 즐겁지 않은 공부는 오히려 사람을 망친다. 사도세자가 동궁에서 자기 스승과 보낸 시간은 없으니만 못한 시간이었다. 오히려 그 시간을 어머니인 선희궁과 시간을 보내거나, (비록 세자라는 지위에 어려운 일이더라도) 성균관에서 직접 교육을 받으며 또래 아이들과 같이 공부하는 게 나았을 수 있다.


우리의 삶을 망치는 공부가 있고, 반대로 풍요롭게 하는 공부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삶을 망치는 공부를 하면서, '그래도 공부니까 나중에 삶에 도움 되겠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이들을 생각하면 이 문제를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부모님들은 공부를 미래에 대한 투자나,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공부는 아이에게 노동이 된다. 그리고 나중에 공부를 해야 할 경제적인 이유가 없으면 그들은 공부를 접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그런 공부는 '꾸준히' 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쯤에서 조선 왕가의 비극은 접어두고 다른 책을 소개해볼까 한다. 얼마 전에는 유시민 작가님이 TV에 나와 무인도에 떨어지면 꼭 챙겨가고 싶다고 말해서 다시 회자되고 있는 책이다.



뜨거운 가슴으로 우주를 사랑하다



남의 이야기 중 연애 이야기만큼 재밌는 게 없다. 다른 사람이 연애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괜히 내가 설레고, 나중에도 그 이야기가 종종 생각난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가 딱 그런 책이었다. 칼 세이건이라는 교수가 우주를 사랑한다는 게 문자 사이로 느껴졌다.


우리도 코스모스의 일부이다. 이것은 결코 시적 수사(修辭)가 아니다. 인간과 우주는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연결돼 있다. 인류는 코스모스에서 태어났으며 인류의 장차 운명도 코스모스와 깊게 관련돼 있다. 인류 진화의 역사에 있었던 대사건들뿐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하찮은 일들까지도 따지고 보면 하나같이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기원에 그 뿌리가 닿아 있다.

-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코스모스」, 22쪽


책의 가장 앞부분에서 칼 세이건 교수는 우주와 인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며, 독자들이 우주의 매력에 빠질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반신반의했다. 그저 '우주의 이것저것 신기한 것들을 배우겠구나' 생각했지 우주가 이토록 나의 삶과 맞닿아있을지 몰랐다. 별들의 생애는 인간의 삶과 다를 바가 없었고, 우주가 별을 낳는 원리는 어머니가 아이를 낳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세이건 교수가 왜 그리도 우주를 사랑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토록 사람과 닮아있는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막상 그의 감정이 이해가 가고 공감이 가니, 우주를 공부하는 게 전혀 지치지도 지루하지도 않고 오히려 책을 읽으면서 행복했다.


20세기 이전의 천체물리학자 2명을 꼽으라면 케플러와 뉴턴의 업적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 이 책이 정말 흥미로운 이유는, 우주에 관한 책인데도 우주를 연구한 사람들의 삶과, 그리고 그들을 배경으로 한 인류의 역사를 다뤘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 책 같지 않고 인문·역사 책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특히 케플러의 일대기, 그의 개인적인 삶에 대해 읽으면서 나 스스로에 대해 반성할 수 있었다.


그라츠를 떠난 케플러는 아내와 의붓딸과 함께 프라하로 향하는 고난의 길에 올라야 했다. 케플러의 결혼 생활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그리고 그리 높은 계급의 출신은 아니었어도 시골의 상류층 집안에서 자란 여자라 남편의 가난한 직업을 몹시 경멸했다. (···) 케플러는 튀코 브라헤가 있는 곳을 속세의 오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피난처로 여겼다. 케플러는 그곳을 자신이 추구하던 "코스모스의 신비"를 마침내 확인할 수 있는 장소로 마음에 그리고 있었다.

-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코스모스」, 132-133쪽


프라하는 천문학자 튀코 브라헤가 연구 활동을 하던 장소였다. 예나 지금이나 천문학을 연구하려면 값비싼 망원경과 천측 도구들이 필요해서, 지금도 전 세계 곳곳의 능력 있는 천체 물리학자들은 미국으로 향한다. 케플러가 살던 시기에는 바로 프라하가 지금의 미국이었던 셈인데, 그가 자신의 이론을 입증해 보이려면 튀코 브라헤의 천측 자료들이 필요했다.


케플러의 삶은 지금의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비참하기 그지없다. 그 당시 천문학자는 돈이 되는 직업이 아니니 아내에게는 무시와 경멸을 받고, 그리고 무엇보다 학문을 위해 고향을 떠나는 길은 험난했다. 프라하에 도착해서도 브라헤는 쉽사리 천측 자료들을 내주지 않았다. 튀코 브라헤는 죽기 전까지 케플러를 자기 밑에서 일하게 하다가, 유언을 남기는 시점에서야 케플러에게 자신의 관측 자료를 내주었다. 그 오랜 고생을 지나 케플러는 자기 이론과 관측 자료를 비교했는데, 심지어 관측 자료도 실망스러웠다. 이론과 전혀 들어맞지 않았던 것이다. 케플러는 눈을 씻고 다시 봤으나 그래도 오차가 너무 컸다. 관측 자료가 틀릴 리는 없었다. 그것은 당대의 가장 정확한 자료였기 때문이다. 몇 년을 굳게 믿어온 자기 이론이 틀린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은 케플러에게 좌절할 이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에게 실패는 더 발전할 기회였다. 이후 그는 행성이 원 운동이 아니라 타원 운동을 한다는 "케플러 법칙"을 발견해냈고, 지금 우리나라의 중학생들도 학교에서 케플러 법칙을 배우고 있다.


나는 어떤가?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학문의 꿈을 놓지 않을 수 있을까? 나의 등불은 세파의 바람에 꺼지지 않을 수 있을까? 「코스모스」를 읽고 나는 반성했다. 나는 과연 주변의 무시와 조롱에도 내 길을 걸어갈 수 있을지, 위기의 순간에 좌절하지 않고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인지 스스로 물었다.


공부가 전혀 손에 잡히지 않던 시기에 「코스모스」를 읽었다. 너무 편안한 환경에서조차 공부하지 않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고, 또 한 편으로는 나도 칼 세이건 교수나 케플러 같은 열정을 갖고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어쩌면 「코스모스」는 내가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책일 수도 있다. 나는 고민도 많지만 고민을 해결하는 나만의 방법도 많은 사람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보따리 가득 문제점과 해결책을 둘 다 안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 생각들을 공유하고 싶어졌다. 나는 내 생각을 공유하고 남의 생각을 들을 때, 진실로 서로를 존중하는 토론을 할 때 가장 행복하고 열정이 넘친다. 그런 것들이 내 삶과 맞닿아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작가는 글을 남기고 학자들은 지식을 남기는데, 거기로부터 내 생각을 끄집어내고 내 삶과 연결시킬 수 있다면 그게 최고의 공부가 아닐까?


Cover Photo by Sharon McCutcheon at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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