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나는 운 좋은 사람이었고 기계 장치에 묶여있지도 않았다)
카뮈는 「페스트」나 「시지프 신화」 같은 명작도 많이 남겼지만, 무엇보다 그는 '실존주의' 철학자로 세간에 알려져 있다. 실존주의라는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젠가 한 작가가 실존주의는 가장 단순한 사실을 가장 난해한 방식으로 말한다고 비판했던 게 기억이 난다. 솔직하게 말해서 나도 실존주의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실존주의는 서양 철학 가운데 가장 독특하다는 매력이 있고, 그래서인지 많은 문학 작품과 대중 문화에 영향을 끼쳤다. 이를테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셔터 아일랜드"라는 영화를 보면서도 곧장 떠오른 생각이 인간의 실존에 관한 문제였다.
「이방인」이라는 작품도 실존주의적인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 앞선 글에서 내가 다룬 「이방인」은 사회적인 측면에서 이해한 것이고, 철학적인 측면으로도 「이방인」을 읽을 수 있다. 작품 후반부의 법정 재판 상황은 사람과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그렇다면 '사람'과 '시스템' 중,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은 눈으로 볼 수 있고 무엇은 눈으로 볼 수 없는가? 카뮈는 주인공 뫼르소의 입을 빌려 그 질문을 예리하게 독자들의 마음에 꽂아 넣는다.
나는, 그것 또한 나를 사건에서 제쳐 놓고 나를 아무것도 아닌 걸로 취급하는 것이며, 어떤 의미로는 나를 대신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알베르 카뮈, 「이방인」, 126쪽
재판은 범죄 당사자인 뫼르소를 제외해놓고 진행된다. 변호사는 뫼르소가 말을 하려 하면 가만 있으라 하고, 재판장과 검사, 그리고 변호사는 자기들끼리만 뫼르소의 사건에 대해 숙덕댄다. 왜 발언을 하면 안 되냐고 뫼르소가 물으면 어김 없이, 그게 '절차'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것이다. 뫼르소는 '실존'하는 사람이다. 반면 재판 절차라느니, 관행이나 관습 같은 개념은 말 그대로 '개념'일 뿐이지 않은가. 뫼르소를 둘러싼 재판장과 검사, 배심원들은 뫼르소의 이야기를 듣는 것보다, 재판의 절차를 따르는 데에만 관심을 둔다. 나는 괜히 「이방인」을 읽으며 실제 당사자가 하고 싶은 말에는 아무 관심이 없는, 속 빈 달걀 같은 재판에 분노했다.
내가 해석한 「이방인」 속 작품 상황은 실존하지 않는 것들이 실존하는 삶에 우선하는, 모순적 사회였다. 물론 독자들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문학 작품에는 정답이 없다는 게 문학의 가장 큰 매력이니 말이다. 이 책의 줄거리를 독자들에게 너무 많이 공개해버린 감이 없지 않지만, 한 번쯤 읽어보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리해보기를 진심으로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