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세상의 모든 로자 아줌마를 위하여

by 카인말러
생(生)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 에밀 아자르 지음, 「자기 앞의 생」, 256쪽


연말이 되어 한해를 정리함과 동시에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하고 있다. "평생"을 다루는 것은 만만치 않지만, 대략 내년은 어떻게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작년 겨울도 올해 겨울과 같았다. 유독 방황이 심했던 한해였기 때문에,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이 많았다. 그 무렵 나는 교수님에게서 "어떤 질문이든 눈에 보이게 만들어라"라는 조언을 들었다. 어떤 질문이든 구체화해야 해결할 수 있는 범위에 도달한다는 메시지였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까"라는 질문을 "어떻게 살아야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을까"로 적었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같은 질문을 나는 황농문 교수님의 「몰입」이라는 책에서 찾았다. 그는 이 책에서 삶의 목표를 '연구'로 잡았다고 한다. "태어나서 밥 먹고 연구하다 죽었다"라는 단순한 문구가 그의 자서전의 전부이기를 바랐다. (황농문 지음, 「몰입」, 50쪽)


진지하게 고민해보니, 100세 시대여도 삶은 그렇게 길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만으로 65세부터는 뉴런 수가 급격하게 감소한다고 하고, 실제로 한국 언론의 대부인 리영희 선생께서는 65세 이후로 저술 활동을 그만두셨다고 한다. 그렇게 치면 삶에서 건강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할 시간은 얼마 없는 것이다. 남은 시간을 한 가지에 쏟아서 탑을 만든다면, 어떤 탑을 내 인생 동안 세워야 마지막 순간에 후회하지 않고 만족할 수 있을까. 명확하게 답을 얻은 것은, 오늘 소개할 책, 「자기 앞의 생」을 읽고 난 뒤였다.





열네 살 모모는 매춘부의 사생아로 태어나, 로자 아줌마라는 유모의 품에서 자랐다. 그의 아버지가 정신병원을 탈출해 모모를 찾으러 오기 전까지 모모는 자신이 열네 살인 줄 몰랐다. 열 살처럼 컸다. 아버지가 모모와 로자 아줌마의 집으로 쳐들어온 날, 모모는 하루아침에 네 살을 더 먹었다. 14년 만에 아버지가 찾아왔다고 모모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았다. 모모는 자신처럼 버려진 다른 사생아들의 기저귀도 갈고, 분유도 먹였다. 모모는 사실상 로자 아줌마의 맏아들이자, 버려진 아이들의 맏형이었다.


그러나 남은 삶이라는 것은 모모에게보다 로자 아줌마에게 야박했다. 로자 아줌마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마치 머릿속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서, 정신은 현실이 아닌 어딘가를 둥둥 떠다니는 것이다. 그런 로자 아줌마가 정신이 들어 몇 마디 말을 꺼낼 수 있게 되면, 그녀는 모모를 불러, 병원은 고문 같은 삶을 연명시키려 하니, 자신을 절대로 병원으로 보내지는 말라고 보채는 것이었다.


그들이 모두 떠나고 난 후 모세와 나는 아줌마의 옷을 모두 벗기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소독물로 씻겨주었다. 정신이 나갔을 때 똥을 쌌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녀의 엉덩이에 파우더를 발라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소파에 다시 앉혀주었다. 그녀는 거울을 가져다달라고 하더니 화장을 했다. 그녀는 자기가 정신이 나갔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유태인식으로 좋게 해석하려 애썼다.

-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자기 앞의 생」, 204쪽


늙은 나의 모습에 누군가 나를 씻겨주고, 내 용변을 치워준다는 상상을 하니 끔찍했다. 물론 요양 복지사분들의 노고는 존경할만한 것이지만, 나의 그런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나에게 없을 거라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어쩌면 삶의 마지막 순간에는, 삶을 되돌아볼 만큼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삶을 되돌아보는 것 그 자체가 축복일 수도 있다. 사(死)는 우리에게 되돌아볼 시간을 주지 않는다. 생(生)에서만이 우리는 되돌아볼 수 있다.


2017년 통계 자료에 의하면, 비록 의학 기술이 이토록 발전했다지만, 인간의 평균 수명과 건강 수명 사이에는 9년 정도의 차이가 있다고 한다. 어쩌면 그 9년을 치매라는 병으로 기억을 잃을 수도 있고, 근육에 힘이 풀려 병상에 누워있을 수도 있다. 내 인생이라고 반드시 그 길을 피해 갈 거란 보장은 없다. 후회와 반성, 온갖 돌아보는 것들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매일 해야 할 과제인 셈이다. 오늘은 어땠나.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하루를 살았나. 내 꿈에 조금 가까워졌나. 돌아보기에 충분한 것은 마지막이 아닌 오늘이고, 미래가 아닌 지금이다.




「자기 앞의 생」은 소설가 로맹 가리(Romain Gary)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쓴 소설이다. 최근에는 넷플릭스를 통해 영화도 개봉하며 다시 인기를 얻었다. 로맹 가리의 인생은 소설의 주인공 모모의 인생과 많이 닮아있다. 그는 러시아에서 무명 연극배우의 사생아로 태어났으나 리투아니아, 폴란드를 거쳐 프랑스로 이주하였다. 모모도 마찬가지로 사생아로 태어났고, 회교도(이슬람교) 출신이지만 유대인 출신의 유모 로자 부인 곁에서 어엿한 청소년으로 성장한다. 이 책에는 줄거리 이상의 많은 메시지와 이야기가 담겨있다. 내 글로 줄거리를 담기에 이 책은 너무 아름답다. 간략히 이 책을 읽고 내가 젖어든 상념을 읊었다. 어쩌면 독자에게는 다른 상념, 더 진한 감동을 전해주지 않을까.

이전 10화실존주의에 관한 부록『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