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품격, 말을 제대로 하면 우선 들어야 한다.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을 읽고...
동양은 세계를 음과 양으로 나누고, 서양은 철학을 이성과 경험으로 나눈다. 절대적 법칙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삶에도 음과 양처럼 두 가지 축이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외유(外流)"와 "내강(內强)"이다. 보통 둘을 합쳐서 외유내강이라는 사자성어로 활용하는데, 그것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적으로 강직해야 외적으로도 유해질 수 있고, 외적으로 유할 때 내적으로는 더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적으로 강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외적으로 유하지는 못한 것 같다. 예컨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나름의 굳건한 가치관과 정책 이념이 있지만, 타인과 대화할 때 경청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얼마 전 민주당의 바이든 후보와의 대선 토론은 언론마저 떠들썩하고 미국 국민들도 손사래 쳤던 전례 없는 '비매너 토론'이었다.
오늘 글을 쓰는 주제는 '대화'이고, 대화를 가장 정확히 짚은 책이 이기주 작가의 「말의 품격」이라고 생각한다. 대화는 '외유'에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대화를 잘하려면 내적인 마음가짐이 먼저 갖춰져야 한다. 대화의 핵심은 '태도'라는 말이다. 「말의 품격」은 이것저것 화려한 언변술이나 화법이 아닌, 대화할 때 필요한 '태도'를 다루는 책이다.
"아빠, 학교에서 배운 단어가 있는데 뜻을 잘 모르겠어. 존중이 뭐야. 그리고 진심이라는 낱말의 의미가 뭐야?"
4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자는 곧장 답하지 않고 약간 뜸을 들였다. 머릿속에서 사전적 의미 너머에 있는 단어의 본질을 끄집어내 밀가루 반죽처럼 주물러서 그것을 딸 앞에 펼쳐주기 위해 고민하는 듯했다.
(중략)
"음, 그러니까, 존중은 상대방을 향해 귀를 열어놓는 거야. 그리고 진심은 말이지, 핑계를 대지 않는 거란다. 핑계를···."
- 이기주 지음, 「말의 품격」, 24-25쪽
'경청'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지만, 안다고 해서 곧장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의 입은 마치 '말'이라는 총알을 속사포로 쏴대는 무기 같다. 종종 식당이나 카페에서 그런 사람들을 보면 괜히 눈살이 찌푸려질 때도 있다. 그리고 모임이나 술자리에 나가면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만큼 밉상인 사람이 또 없다. 그런 사람들도 경청을 몰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아는데도 행하기 어려워서, 곧장 태도를 바꾸고 습관을 들여야 경청이 가능해진다.
「말의 품격」의 목차를 짚어보았다. 존중, 경청, 공감, 반응, 협상, 겸상... 중요한 단어들이 차례차례 나왔다. 중요한 것들이 소주제로 하나씩 묶여, 마치 만두 속에 여러 가지 재료가 한데 모이듯 「말의 품격」이라는 책을 빚어냈다.
이 책의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존중'이 '경청'에 앞선다는 점이다. '존중'을 제쳐두고 '경청'부터 익히는 것은 하등 쓸모가 없다. 존중이 없는 귀 기울임은, 실제로는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끝나자마자 자기 말을 시작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짓이다. 경청하려면 존중하는 태도부터 습관을 들여야 한다. 앞서 외적으로 유하려면 먼저 마음 깊은 곳에 '존중'이 뿌리 잡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 이런 이유에서다.
밥상 위에서 금지되는 주제들이 있다. 밥상 위에서 정치 얘기하지 말라는 것도 나름의 터부가 되었다. 나는 식사를 하며 정치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 대해 반감을 갖지는 않는다. 종종 듣다 보면 재밌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정말 밥맛이라고는 완전히 떨어지고 자리를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자기주장만 한 보따리 펼쳐놓고 남의 생각은 꺼내놓을 틈을 안 줄 때 말이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할 때면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대화 주제가 언품을 결정 짓는 것이 아니다. 존중하는 태도가 대화의 품격을 결정 짓는다.
반면 정치나 종교 같은 민감한 주제로 대화할 때도 그 대화가 즐거운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말 그대로 고개를 끄덕일 줄 안다. 단순히 자신의 주장과 의견만 진지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주장도 진지하게 듣는다. 그리고 설령 의견이 서로 달라도, 자신의 견해가 틀릴 수 있음을 스스로 인지하고 대화에 임한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 말만 하고 타인의 이야기에는 아무 관심 없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자신과 같은 의견이면 열심히 끄덕끄덕하면서도, 다른 의견이 나오면 상대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반박부터 하기 시작한다. 그의 뇌에는 이미 자신의 생각만으로 가득 차서, 타인의 말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것이다. 진정한 미덕은 입이나 머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귀에 있는 것 아닐까? 타인을 위해 늘 귀를 열어두는 것, 그게 진정한 '존중'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방송인 신동엽이 말하는 방식을 유심히 들여다본 적이 있다. 신동엽은 조금 비약해서 얘기하면, 한 번 말하고 두 번 듣고 세 번 맞장구를 치는 식으로 방송을 진행한다.
신동엽은 출연자가 말할 때 함부로 끼어들거나 중간에 말허리를 꺾어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출연자가 편안하게 얘기를 꺼내놓을 수 있도록 배려하며 대화의 장을 조성한다.
그러면서 판소리에서 장단을 짚는 고수鼓手가 창唱 사이사이에 흥을 돋우기 위하여 '얼씨구', '좋다' 같은 추임새를 삽입하는 것처럼, 적절한 지점에서 "아하!", "그랬구나!", "그다음은요?"등의 감탄사와 질문을 가미한다.
- 이기주 지음, 「말의 품격」, 52-53쪽
유시민 작가는 「공감 필법」이라는 강연에서, 청자들에게 '비판적 독서'가 아닌 '공감적 독서'를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책을 다 읽기 전까지는 그 책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끝머리까지 공감하면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화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고 믿는다. 의견이 달라도 상대방의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상대방을 비판하거나, 상대방과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더라도 그것은 상대방의 말이 모두 끝난 다음에 지적하는 것이 옳다.
타인의 말에 경청하는 것은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것을 전제로 한다. 사실 쉽지가 않다. 인지심리학에서는 인간이 자신의 이야기보다 타인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훨씬 적게 가지는 것이, 우리 뇌에 내재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한다. 일종의 자기 준거 효과(self-reference effect)인 셈이다. 그런데 '존중'과 '공감' 능력이 인간에게 필수적인 능력이며, 타인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를 상상하는 행위가 인류를 그동안 생존케 한 심리적 원동력이라는 설도 있다. 공감과 경청이 단순히 인간을 더불어 사는 데에 도움을 준 게 아니라, 생존과 관련된 능력, 인지 능력에도 도움을 주었다는 흥미로운 이론이다.
물론 좀처럼 경청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예컨대 상대방이 농담을 시도하는데 전혀 웃기지가 않다든지, 발화 시간이 길어진다든지 하는 경우 말이다. 존중하는 태도가 당연히 전제되어야겠지만,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의도적으로 상상을 한다. '상대방이 꺼내는 이야기가 내 얘기다' 생각하면서, 마치 소설을 읽을 때 장면을 상상하듯이 나도 그 장면을 의도적으로 상상해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알아서 질문할 거리들도 생긴다. "그러면 그때 어떻게 했어?" 혹은 비유를 덧붙이기도 한다. "완전 어바웃 타임에 나오는 그런 장면 같네. 네 남자친구 진짜 멋있다."
작고 소소한 수다에서도 대화의 품격, 이내 그 사람의 인품을 알 수 있다. 흔한 말로 5분이면 한 사람을 알기에 충분하다고들 한다. 엄밀히는 편도체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그 사람에 대한 감정 정보를 저장하는 과정이다. 우리는 5분 간의 대화에서도 그 사람의 인품이나 성격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보들을 뇌에 저장한다. 그러니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상대방의 의견에 관심을 갖고 경청해야 상대방의 무의식에 안 좋은 사람으로 - 매너가 없는 사람으로 - 저장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타인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고 싶다면, 우선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말의 품격과 청(聽)의 품격은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인품(人品)과 언품(言品)도 같은 말이라고 믿는다. 마치 한 사람이 자신의 자유를 제대로 만끽하려면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인지해야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제대로 말을 하려면 우선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