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저,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간만에 또 소개해 드리고 싶은 책이 생겨 글을 적습니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의「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이라는 책입니다. 제가 가진 경제학 서적 중 가장 아끼는 책이고, 가장 재밌게 읽은 책 중 하나입니다. 사실 제가 경제학책을 엄청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소개해 드리고 싶었던 경제학책들이 굉장히 많았는데요. 그중에서 경제학에 아예 문외한인 사람도 읽기 편한, 그런 쉬운 책을 고르다가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저자부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이고, 둘은 사제 관계로 만난 부부 사이입니다. - 그래서 같이 쓴 책들이나 논문도 상당히 많아요 - 노벨 경제학상은 한해 최대 3명까지 공동 수상이 가능한데, 2019년에는 배너지와 뒤플로, 그리고 하버드 교수인 마이클 크래머까지 총 세 명이, '개발 경제학(development economics)'에 기여한 공로가 커서 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교수님들이기도 하고, 저도 개발 경제학을 상당히 좋아해서 주변인들에게 소개해주면 다들 "개발 경제학이 뭐야?"라고 되묻더라고요. 아무래도 단어가 조금 추상적인가 봅니다.
개발 경제학은 흔히 우리가 빈곤, 가난 등을 연구하고 개선하는 학문입니다. 특히 저소득층 국가에서는, 아이들의 건강이나 의료 문제도 상당히 중요해서, 국제 보건 관련 이슈들도 개발 경제학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입니다. 아무튼, 저는 사실 뭐 한국이나 미국 같이 부유한 나라는 이제는 경제학보다는 철학이나 심리학처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해서, 가난한 나라를 다루는 개발 경제학이 가장 관심이 가더라고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바로 책의 단점부터 소개해드릴게요. 장점은 너무 많아서, 딱 하나 마음에 걸리는 단점부터 말씀을 드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의 단점은, 한국보다는 국제 이슈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뭐 당연히 한국 경제학자들이 아니니 그럴 수 있겠죠. 물론 한국이 국가 주도 성장이 성공한 몇 안 되는 사례로 언급은 됩니다. 그러나 한국이 현재 부닥친 부동산, 비정규직 등의 문제를 논의하는 책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래의 목차를 보시면 '2장 상어의 입'에서는 이민과 난민 문제를 다루는데, 사실 이 문제는 우리가 피부로 와닿는 문제들은 아니다 보니 영 지루하다 싶으시면 넘어가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반면 '6장 뜨거운 지구'와 '7장 자동 피아노' 에서는 각각 지구 온난화와 4차 산업혁명을 다루며 정말로 와닿는 문제들을 다룹니다. 특히 지구 온난화는 그 심각성에 비해, 자꾸 정치나 안보 이슈에 묻혀서 많이 안타까운 주제입니다. 이 책 전반에 녹아있는 가장 큰 장점은, 추상적인 이론과 복잡한 현실의 타협점을 정확하게 찾았다는 점입니다. 대개 많은 경제 서적들이 이 지점에서 실패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책들은 경제학자의 너무 추상적이거나 어려운 개념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지 못하고, 어떤 책들은 자료도 많고 현실적인 이슈들을 다루는데 그 이슈를 분석하는 안목이 떨어진달까요. 그런데 이 책은 경제학자가 이론은 최소한으로 하고 현실의 다양한 사례 중심으로 쓴 책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깊이도 있으면서, 또 어렵지는 않은, 그런 책이 되는 것 같아요.
'3장 무역의 고통'과 '5장 성장의 종말'이 저는 가장 재미있었습니다. 경제학에서 자유무역은, 일종의 불문율입니다. 무역은 기술 진보와 거의 같은 효과를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경제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하면, 보호 관세에 동의하는 경제학자들은 한 명도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이 책 103쪽에도 관련된 설문조사가 나와요 - 그런데 아비지트 배너지와 에스테르 뒤플로는 무역의 분명한 문제점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중국과의 교역으로 공장 일자리들을 잃었을 때, 이 공장 노동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에 대한 지원이 미흡한 점도 하나의 문제 상황이겠죠.
종종 주변으로부터 어렵지 않은 경제 책을 한 권만 추천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데요. 어렵지 않으면서 정확한 책이 무엇이 있을까 하면, 이 책만큼 그 조건에 잘 부합하는 책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책상에만 앉아있는 학자의 모습이 아니라, 실제로 슬럼가를 방문하는 저자들의 모습에 왠지 모를 동기부여도 된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하겠습니다.
추천 독자: 경제 책을 한 권만 읽는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주제: 우리의 목적은 '부유한 사회'일까요, 아니면 '행복한 사회'일까요? 행복을 지향하면서, 동시에 현실적으로 생각하는 경제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