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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인말러 Jan 08. 2021

02 힐빌리의 노래

J. D. 밴스 저, 「힐빌리의 노래」

    두 번째로 소개해 드릴 책은 「힐빌리의 노래」입니다. 원제는 「Hillbilly Elegy」인데 "Hillbilly"는 미국의 무너진 백인 노동자층을 부르는, 일종의 은어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스스로 Hillbilly라고 부르는 것은 별 문제가 없지만, 우리가 그들에게 Hillbilly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조금 무례하게 비칩니다. 흔히 러스트벨트(Rust Belt)라고 하죠. 불과 5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 공장이 있다 하면 그곳은 최고로 부유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공장들이 모두 아시아로 이전하며 경제적으로 무너진 지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흔히 오하이오, 펜실베이니아 등 애팔래치아 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한 지역들입니다. 최근 한국도 도시화로 인해 지방 인구가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데, 꽤 공감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네요.



    이 책을 형용하기란 정말로 어렵습니다. 사실 이 책의 서평도 남기려고 노력했는데, 도저히 책의 감동과 깊이를 제 활자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아 포기했습니다. 나중에 원서로 다시 읽고 써보려고요. 저자인 J. D. 밴스는 오하이오 미들타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의 가족은 켄터키 출신이지만, 이들 가족 모두가 새로운 꿈을 좇아 오하이오로 올라왔죠. 물론 지금은 오하이오도 경제적으로 무너진 지 오래지만요.


    J. D. 밴스는 어릴 적부터 자신의 삶을 관통하던 '가난'을 돌아봅니다. 그곳에는 얼마 되지 않는 월급으로 대마를 피우고, 옆집에서 소리치며 싸우는 소리가 들려도 아무도 개의치 않는 일상이 있습니다. 이 책의 부제가 제목보다 이런 상황을 더 정확하게 표현합니다.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책을 읽으며 고3 시절 입시를 준비하며 담임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경제가 무너지면 뭐부터 망가질 것 같아? 가족이야, 가족. 평범한 가정에서 가장들은 일자리를 잃고, 가족의 신뢰를 잃고, 그리고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거야." 냉철하기 그지없다는 경제학 교수님들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저는 면접에 가서도 담임 선생님의 말씀을 되풀이했습니다. 가난할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가정이라는 사실은 J. D. 밴스만의 경험이 아닌 것 같습니다. 1930년대 대공황을 그린 작품인 「분노의 포도」나 테네시 윌리엄스의 「유리동물원」이라는 희극에도 나오는 주요 갈등이죠. 이 작품들의 주인공은 돈이 없어서 슬픈 적은 없습니다. 가족이 무너져서 슬픈 것이죠. J. D. 밴스의 어머니는 평생을 마약을 끊어내지 못했고, 집에는 매번 다른 남자들을 들이느라 밴스는 매번 새 아버지를 따라 성을 바꿔야 했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는 것이 항상 가난 탓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가난할수록 그런 위험에 많이 노출된다는 경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며 몇 번씩 계속 놀랐습니다. 가난을 소설처럼 다루는 다른 책들은 사람들의 연민과 공감을 얻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오하이오 지방 사람들이 가난한 이유 중 하나는 '게으르면서 게으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 탓도 있다고 주장합니다. 중간에 라즈 체티(Raj Chetty)라는, 가난에 관해 가장 전문가인 경제학 교수님이 두 번 정도 언급되는데, 라즈 체티 교수님의 연구가 숫자에 기반했다면, 밴스의 이러한 언급은 그 숫자가 나타난 이유를 자신의 삶을 통해 설명하죠. 그 어느 경제학책보다 제게는 가난에 대해 더 많이 가르쳐준 듯한, 그런 책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책의 진가는, 누군가의 삶의 한복판에 서서, 그 사람의 아픔과 노력과 결실을 볼 때 경험하는 그런 감동에 있는 게 아닐까 싶네요. 코로나로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제가 이 책을 읽은 장소는 제 방 안이었지만, 이 책을 읽은 것은 올해 손꼽힐 정도로 너무 값진, 삶에서 몇 번이나 있을까 싶은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꼭 한번 읽어보시길 '강추'드립니다.



추천 독자: 저처럼 경제학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꼭' 읽어야 할 책 같습니다. '가난'을 다루는 다른 책으로 2019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배너지 교수님과 뒤플로 교수님의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이라는 책도 있는데 그 책과 같이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히려 저처럼 경제학 공부하느라 숫자에 매몰된 사람들에게 더 유익할 수 있어요.


주제: 표면적 키워드는 가난이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핵심은 '무너지는 가정'입니다. 가족은 누구에게나 삶의 기반이 되는 존재인데, 변하는 경제 구조가 이것을 계속 흔든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우선, 가정 내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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