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창
간단하게 프로젝트에 관련해서 먼저 질문을 드릴게요. <책 읽고 삽시다>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우용
제가 이 프로젝트를 하자고 대략 5~6주 정도 전에 얘기를 처음 꺼냈었죠. 그때 가장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알겠지만 제가 좀 불안증 같은 것도 생기고 심리적으로 많이 힘들었어요. 사람 많은 곳은 멀리 하게 되고, 혼자 있으면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잡념들이 찾아와 힘들었어요. 지금은 평일에는 할 일 하느라 바빠서 괜찮은데, 주말은 여전히 어려워요. 아무튼, 그래서 불안할 때마다 책을 읽었어요.
저한테 독서는 치유의 과정이에요.
예를 들어서 김훈의 <칼의 노래>를 읽을 땐 내가 주인공인 이순신이 된 것처럼 어떤 필멸의 결의로 무장을 한 것 같았고,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를 읽을 땐 내가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딸이 된 것 같았어요. 불안감이 끼어들 자리가 없었어요.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은, 책의 내용과 제 삶이 하나가 되고, 제 삶의 걱정거리들은 잠시 자리를 비켜줘요.
그러다가 이 책들을 단순히 내 불안의 방패막이로만 삼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용을 공유하고 싶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리고 독서를 핑계 삼아 일주일에 한 번씩 삶에 관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게 <책 읽고 삽시다>의 출발점이 된 것 같습니다.
음, 저는 이 프로젝트가 제 불안증 치유에도 많은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요. 책에 관한 이야기인 동시에, 우창님과 저, 우리의 긴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를 우창 님이랑 하기로 했다고 다른 친구들한테 얘기를 했을 때, 많은 친구들이 자기도 끼워달라고 그랬지만 그거를 받아줄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그들이 생각했을 때 책을 같이 읽는다는 프로젝트는 정말 딱 “배움”의 과정일 거예요.
그렇지만 <책 읽고 삽시다>는 배움 뿐만 아닌 치유의 과정도 포함이 되어 있어요.
만약에 3~4명이 같이 이걸 하고 있다면 지금 같은 대화록을 남겨서 외부에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도 어렵겠죠. 그러면 그 배움과 치유는 딱 같은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3~4명 안에서만 머물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두 명이서 이걸 해서 대화록을 남기면 그건 대화록을 읽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배움과 치유의 과정이 될 거기 때문에 3~4명 안에서만 멈추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또, 저는 제가 가진 상처를 공유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요. 오히려 그것의 공개를 통해서, 제가 하는 이야기와 제가 소개하는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도 도움을 얻었으면 좋겠어서 이걸 시작한 것 같아요.
우창
그러면 이제 그 치유와 배움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아지기 위해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을 2명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우용
그렇죠.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저는 3명, 아니 3명까지는 괜찮다 쳐도 4명이 되면 긴밀한 이야기를 꺼낼 수가 없다고 생각을 해요. 그때부터는 개인들의 모임이라기보다 하나의 사회라고 생각을 해서, 개개인이 가진 경험과 생각에 대한 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겠죠. 책에 대한 대화도 피상적인 수준에서 그칠 거예요.
우창
저도 이런 프로젝트를 한다고 주변에 얘기했을 때 단순하게 북클럽 정도로 생각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나도 북클럽 같이 하자” 이렇게 얘기 한 사람들이 두세 명 있었거든요. 그런데 여기에 끼우고 싶다는 생각은 저도 안 들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그 친구들과 다른 책 소모임을 했으면 했지, <책 읽고 삽시다> 프로젝트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나 저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하면 깊은 이야기를 해야 하기도 하고 그런 것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배경은 설명하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금까지 고등학생 때부터 쌓아온 대화의 맥락 전체를 다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둘이서 진행되는 것이 더 납득이 갔어요. 그리고 한 4주 정도 주기적으로 만나 책 이야기를 했는데, 카톡이나 전화로는 하지 못하는 그런 일상적인 대화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자, 그러면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어떤 느낌을 받고 무슨 감정을 공유했으면 좋겠나요? 그리고 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우용
일단 우리가 이걸 하는 동안에는 <책 읽고 삽시다>가 사진보다는 영상에 가까웠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앞으로 읽을 책들을 전부 미리 정해놓지는 않았죠. 특정 책을 읽다가, “이런 책을 읽어야겠다”라고 그때그때 생각이 들 때, 우리는 그걸 반영해서 책을 고를 것이고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우리가 읽을 책들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 거예요. 만약에 우리가 읽을 책들의 순서와 양을 미리 정해놨다면 그거는 ‘지금 이 순간’의 우리가 그때까지도 그대로 가는 것이겠죠. 그건 지금의 우리 사진을 그때까지 고이고이 갖고 가는 거예요. 반대로 우리가 책을 정해두지 않은 상태에서 이걸 꾸준히 하다 보면, 우리의 변화 과정이 그대로 모두 <책 읽고 삽시다> 한 번 한 번에 남을 거기 때문에 그 변화 과정이 영상처럼 남았으면 좋겠다는 게 이 프로젝트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질문이 뭐였죠?
우창
이 프로젝트가 끝났을 때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지 물었습니다.
우용
아, 개인적으로는 아까도 얘기했었지만 제 불안 증세가 끝이 났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건 개인적인 바람이고요. 보다 넓게는 나중에 우리가 남긴 이 대화록을 누군가가 읽고 자기만의 ‘살아갈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돌이켜보면 20살 때 저는 살아가는 방법을 철학 책을 통해서 찾으려고 했고요. 그다음에 한 1~2년 지났을 때는 도스토옙스키나 카뮈 소설에서 삶의 방법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요즘은 자기 계발서를 중심으로 읽고요. 어떤 사람은 자기 계발서를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소설을 별로 안 좋아하기도 하는데, 생각해 보면 매 순간마다, 그때그때의 “나”에게 필요했던 방법은 모두 다른 부류의 책에 있었거든요.
우리 프로젝트는 전반적으로 다양한 책들을 살펴볼 거예요. 이 프로젝트가 읽는 사람에게 다양한 책을 접하는 계기가 돼서 각자의 상황에 맞는 방법론을 찾을 수 있는 그 창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언급한 불안증 해소는 오히려 금방 이루어질 것 같아요.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제법 오래 할 것이니까요.
우창
저는 다른 사람한테 이 대화록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우리 프로젝트의 부수적인 목적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까지의 답변을 들어보니 우용 님은 그것도 상당히 중요한 목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면 혹시 타인을 위해 이 프로젝트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책임감이나 부담을 느끼지는 않으시나요?
우용
그러진 않아요. 그러니까 나 하나 챙기는 일을 그릇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그 그릇은 생각만 하고 있을 때는 엄청 크게 느껴져요. 반대로 행동을 할 때는 오히려 작아지고요. 이게 무슨 의미냐면, 나 자신의 개인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있어서, 생각과 고민만 하고 있을 때는 그 문제들이 엄청 크게 느껴져요. 그런데 막상 행동을 시작하면, 지금의 이 프로젝트처럼 뭔가 행동을 하고 있으면 그 행동 과정에서 나의 개인적인 문제들은 생각보다 금방 해결이 되거든요. 저는 제가 가진 불안증이 너무 버거워요. 여전히 주말이 되면 너무 견디기 힘든데요, 이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동안은 그 불안증이 훨씬 작아지는 기분이에요.
행동의 힘은 커요. 우리가 만일 이 프로젝트를 1년을 한다 하면, 아마 제 불안증이라는 작은 문제는 6개월도 안 되어서 사라질 거예요. 그러니까 행동을 시작하고 나면, 그 행동에 비해 나의 문제는 생각했던 것만큼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라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남는 부분이 있겠죠. 이 프로젝트에서 나 자신을 치유하는 것 외에 남는 부분들, 그 에너지와 치유 능력을 다른 사람에게도 연결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창
그럼 이제 좀 더 책 이야기로 넘어가볼게요. 우선 이 책은 우용 님이 고르셨는데, 고르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저는 처음 책을 보고 “우용이가 좋아할 책은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거든요.
요즘에는 삶에 대한 답을 자기계발서에서 찾는다고 말씀해 주셨잖아요? 그러면 많고 많은 자기계발서 중에서 이 책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나요?
우용
일단 이 책은 제가 정말 불안해하던 시기에 알게 된 책이고, 그 불안감이 찾아온 이유 가운데 적지 않은 부분이 전에 만나던 사람과의 헤어짐이었어요. 물론 그것뿐만은 아니에요. 그 시기에 예상치 못했던 어려운 일들이 정말 여럿 겹쳤고 작은 일들이 좀 뭉쳐서 크게 저를 흔들어 놨어요. 아무튼 그래서, 엑스에 대한 생각을 아주 안 할 수는 없었는데 후회되는 일이 딱 하나 있었어요, 이건 에피소드인데...
연애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인데 그때 데이트를 갔다가 식당에서 7만 원이 찍혔어요. 그런데 제 계좌에 10만 원밖에 없어서 그거를 못 내겠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걸 내면 저녁에 택시비고 뭐고 정말 한 푼도 안 남게 생겼었거든요. 분명히 디저트도 먹자고 할 텐데 계좌에 10만 원 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또 망할 자존심 때문에 그때 “오늘 혹시 내줄 수 있어?”라고 못 물어봤어요. “오늘은 네가 긁어(명령문)”라고 이야기한 거예요. 정말 멍청하죠. 미숙한 대처도 후회 됐지만 돈이 그것밖에 없다는 것도 정말 수치스러웠어요. 그래서 그 사람과 그 이후에 연애를 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헤어진 이후에도 그렇고 돈 없는 게 많이 속상했거든요. 그래서 이후로는 돈에 대한 욕심이 생겼고, 헤어지고 나니까 더 뚜렷하게 물욕(物慾)이 찾아왔어요.
그 가운데 돈만이 아닌 제가 겪고 있었던 여러 사건들에 대한 가르침도 분명히 필요했어요. 돈을 포함한 그 모든 가르침... 가장 적합한 책이 <세이노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이 책을 읽게 될 독자들이 꼭 하나만은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 책은 돈에 대한 책은 아니에요. 돈은 이 책의 중요한 소재 중 하나일 뿐이에요. 기본적으로는 “천억 원대 자산가의 자기 계발서”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삶 전반에 대한 책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쓴 사람이 부자일 뿐인 거죠. 그래서 삶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그리고 돈도 그 고민 가운데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면, 그런 분들이 읽기에 좋은 책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지점에서 제가 꼭 한 가지 좀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는데, 돈에 대한 욕심과 정신적인 성숙함이 꼭 반대되는 건지 한번 물어보고 싶어요.
많은 사람들이 부(wealth)에 관한 책을 읽는 걸 돈만 좇는 탐욕이 가득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인생 자체의 풍요는 돈과 별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생각 때문에 돈에 대한 자기계발서를 수준 높은 책이 아니라고만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저자인 세이노가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 둘이 반대되는 게 아님을 알 수 있어요. 돈이라는 물질은 스스로 가치 평가를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은 알코올과 섹스에 엄청나게 큰돈을 들이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은 정신적으로 성숙해질 수 있는 일에 많은 돈을 쓰기도 해요. 돈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와 그걸 어디에 쓸지는 전혀 다른 문제잖아요? 다만 돈은 선택의 폭을 늘려주는 거거든요. 저는 선택의 폭을 최대한 늘린 상태에서, 건강한 데에 돈을 쓸지 향락적인 데에 돈을 쓸지 결정하고 싶어요. 그러니 돈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을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우창
그러면 그것과 이어지는 질문인데요. 결국에 우용 님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돈 자체가 스스로 가치 평가를 하는 존재는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러면 돈을 많이 버는 목표와 가치가 우용 님에게 있어서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돈을 많이 버는 것 그 자체가 목적지는 아니라고 생각이 들어서요.
우용
돈을 버는 게 일차 목적지라면, 돈에 초연해지는 것이 그다음 목적지라고 할 수 있어요. 그때가 되면 가족과 제 주변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더 많은 것들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그 부분과 관련해서 <세이노의 가르침>의 한 구절을 좀 읽어드릴게요.
하지만 나는 눈이 오는 날 길거리 어딘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있다고 할지라도 나 자신은 사랑하는 아내와 향기 그윽한 원두 커피를 함께 마시고 싶다.
(중략)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할 때 버스가 왔다고 같이 뛰어가기보다는 택시를 잡아 편히 집까지 바래다주고 싶었다.(297쪽)
또 다른 책의 한 구절을 읽어드릴게요. <부의 확장(천영록, 제갈현열 지음)>이라는 책인데요.
부자들이 외로워하는 것은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가난이 없어진 자리에 손가락질할 핑곗거리가 사라지고 막대한 자유와 책임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생의 진짜 희로애락이 아닌가 한다.(78쪽)
이 두 구절을 제가 왜 언급을 하냐면 돈이 정말 많아야 오히려 돈에 초연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돈에 초연해져야 정말로 정신적인 성숙함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예를 들어서 고전학파 경제학자로 유명한 존 스튜어트 밀은 사회 발전을 어떻게 주장했냐면요, 경제적으로 사회가 대단히 부유해지면 그제야 사람들이 심도 깊은 철학적 논의를 하기 시작할 라고 주장했어요. 그러니까 돈이 많아져야 돈에 초연해지고, 그때가 되면 생존의 문제가 아닌 가치의 문제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고민할 것이라는 거죠. 그런 주장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고 생각을 해요. 저는 돈 자체가 저한테 엄청나게 많은 쾌락, 내지는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아요. 다만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더 심도 있는 고민이 시작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우창
결국에는 뭔가 더 고차원적인 고민을 하기 위한 여유를 사고 싶으신 건가요?
우용
근데 꼭 고차원적인 고민만은 아니에요. 자유라는 단어가 좀 더 어울리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뭐 흔히 mz 세대를 일컫는 그런 자유로움이 아니라, 내 가족이 물질적인 뭔가가 필요할 때 그걸 내가 챙길 수 있다는 자유, 그리고 일회성 소비에서 오는 만족감이 아니라, 어떤 것들이 나한테 진정한 행복함을 가져다줄까 하는 본격적으로 고민하는 것. 그런 것들을 제가 원하는 자유 같아요.
우창
그런데 뭔가 정확한 용어는 기억이 나지는 않는데 맹자도 약간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제 기억에는 ‘성인(聖人)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삶이 먼저 충족이 돼야 어떤 철학적인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러니 그들의 삶을 돌보는 게 먼저다’라고 이야기를 했던 걸로 제가 알고 있는데...
우용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 얘기인데 그러니까 결국엔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마음의 여유를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는 맹자의 무항산 무항심과 제가 말하고자 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맹자와 앞서 언급한 J.S. 밀은 ‘사회’를 설명하려고 그런 이론을 펼친 건데, ‘개인’의 삶도 비슷한 철학이 적용될 수 있겠네요.
우창
중간에 저희가, 한 3주 차 때쯤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첫 주에는 되게 호기롭게 “이 책 좀 괜찮은 것 같다” 하면서 읽었는데, 중간 부분쯤 가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그렇게 심도 있고 많은 내용이 이 책에 담겨 있는 것 같지는 않고 한편으로는 저자의 말투라든가 그런 것들이 살짝은 거슬리는 부분이 있다고... 그렇게 저희가 이야기를 나눴던 걸로 기억해요.
저는 그때 우용 님이 해주셨던 말이 되게 공감이 갔어요.
자기 계발서에서는 항상 저자가 말하는 게 다 정답일 수는 없고, 그래서 본인은 이런 책을 그냥 한 사람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소재로 삼고 어떤 전기라든가 1인칭으로 서술된 영상을 본다고 생각하면서 읽는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는 이 관점이 좀 새롭고 어떤 면에서는 되게 많이 공감도 되고 그 이후에는 저도 그런 관점을 적용해서 읽어봤던 것 같아요. “자기계발서를 한 사람의 전기처럼 읽는다”라는 관점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우용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저자의 모든 말이 정답일 수 없다”라는 말의 핵심은 이런 걸 것 같아요. 어떤 저자는 일찍 일어나라고 이야기를 하고요, 어떤 저자는 푹 자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자기계발서에서 주장해요. 분명 둘 다 똑같이 성공한 사람인데, 그들이 주는 조언은 다를 때가 정말 많단 말이죠. 그리고 세이노가 하는 말들도, 말씀하신 대로 어조가 강하고 단어 선택에 있어서 좀 거부감이 느껴질 수도 있어요 모든 성공한 사람들이 세이노의 주장에 동의하는 건 아니겠죠. 아마 그런 요소는 세이노만의 정답이었을 거예요.
핵심은 그거죠. 그러니까 세이노는 이 책에서 욕을 정말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그 욕도 그 사람을 성공하게 한 하나의 방법론이자 가치라고 보고, 그게 그 사람의 질서 체계라고 생각을 해요. 여기서 제가 아까 언급한 <부의 확장>이라는 책의 한 구절을 또 언급하고 싶은데, 이런 내용이 있어요.
서로 반대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만의 질서인 것이다. 하지만 그 질서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수천 가지 세밀한 디테일들을 함께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244쪽)
제가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 보통 그 글을 쓴 사람의 전기나 어떠한 1인칭으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으로 보는 이유는, 그 사람이 한 걸 똑같이 내가 했다고 해서 내게 똑같은 결과가 나올 거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A라는 사람이 한 특정 행동은 A라는 인간의 질서에 부합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죠. 그래서 저는 이 책을 읽는 동안 세이노의 ‘가르침’ 중에 내 삶의 질서와 맞는 부분이 있고 안 맞는 부분이 있을 텐데, 맞는 부분 위주로 보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이때 맞는지 안 맞는지를 사전적으로 결정하지는 않아요. 책에 나온 조언이면 일단 해봐요. 그 가운데 영 안 맞다 싶은 것을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세이노가 시킨 것들 중 예전에 정말 열심히 해봤는데 저랑 잘 안 맞아서 안 되는 것들이 있다면 굳이 따라 하지 않았어요. 예를 들자면 “밥 먹는 시간 아끼기”가 있네요. 저는 밥을 먹으면서 다른 일을 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세이노는 라면을 끓이지 않고 부숴 먹으면서 그 시간에 일을 배웠다고 하는데, 저는 밥을 최대한 빨리 먹으면 먹지, 먹는 동안 다른 공부를 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어요. 핵심은 그걸 제가 해봤다는 거예요. 본인의 삶의 질서에 부합하는지 안 하는지를 사전적으로는 알 수 없고, 직접 경험해 본 뒤에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읽다가 해볼까 싶은 것들은 가리지 않고 다 따라 해 보는 편이에요. 그러다가 영 안 맞으면 그 방식은 버리면 되는 것이고요. 아예 시도도 안 해보고 사전적으로 안 맞는다고 평가하는 건 나태나 오만이라고 생각해요.
우창
이제 제 생각도 좀 덧붙이자면, 결국에는 각자 개개인의 질서에 맞게 행동해서 나타났던 결과를 그대로 복제하려는 목적에서 자기계발서를 읽는 게 아니라, 결국에 성공한 사람들은 그게 뭐가 됐든 자신만의 질서를 찾았고, 그걸 삶에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그런 결과를 이뤄낸 사람들일 것이기 때문에, 독자들도 그런 질서를 찾아내고, 그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교훈을 얻어야 된다고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군대에 있을 때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어봤고, 평소에도 이제 뭔가 쓴소리가 필요할 때 항상 찾아 읽었던 것 같은데, 그럴 때마다 ‘어차피 이 사람이 하는 말이 나한테는 적용이 되지 않을 수 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그걸 조금 더 진지하게 파고들면 “삶의 질서”라는 그 말과 맞닿는 지점이 있고, 저도 공감이 됐던 것 같네요.
다음 질문으로, 우용 님께서 나중에 성공해서 이런 자기개발서를 쓰신다면, 어떤 테마로 글을 쓰실 것 같나요? 세이노는 일단 돈을 많이 버는 것을 테마로 잡았다면, 본인은 어떤 걸로 글을 쓰실 것 같은지...
우용
우리가 오늘 질문지를 미리 공유를 했었잖아요. 그래서 제가 사실 이 질문을 빼자 할지 정말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만일 자신만의 삶의 질서를 찾은 사람만이 자기계발서를 쓸 수 있는 거라면, 일단 저는 절대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 삶은 아마 계속해서 질서를 찾아가는 과정일 테지, 남들에게 설명하고 뽐낼 그런 질서를 찾은 날은 절대 오지 않을 거예요. 저는 남들이 보기에 멋들어진 삶을 살게 되어도, 항상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더더욱 자기 계발서를 쓸 생각은 없어요. 설령 대통령이나 교황이 돼도 쓸 생각 없어요.
그런데 이 질문을 삭제하자고 얘기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면, 자기 계발서 외에 제가 쓰고 싶은 책은 존재해요. 그건 위로라는 테마예요. 제가 입대하기 전에 완전 20대 초반에 브런치에 글을 썼었었잖아요.
우창
<심심한 위로의 책들을 전합니다>였나요?
우용
네, 그걸 너무 어렸을 때 써서, 최근에 바뀐 생각들에 맞게 그걸 좀 수정도 하고 있는데, “글을 읽는다”라는 행동은 사회와 주변으로부터 독립된 나 자신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의 좁은 그릇도 반성할 기회를 갖고, 해보지 않은 것들을 도전해 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런 책들이 많아요. 저는 최인호 작가의 <모순수업>을 읽을 때 사회로부터 독립된 나 자신을 돌아봤고요. <맹자>는 읽는 내내 정말 많이 반성했어요. <데미안>은 새로운 일들을 도전해 볼 용기를 가져다주었고요.
그런데, 그러한 역할 말고 글이 해줄 수 있는 역할 가운데에 더 중요한 것은 “위로”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동시에 “용서”의 역할이고요. <세이노의 가르침>은 독자에게 ‘똑바로 서서 세상과 싸우라’고 요구하죠. 그런데 정말 힘들게 주저앉은 사람은 똑바로 서야 한다는 걸 몰라서 똑바로 못 서는 게 아니라, 똑바로 서야 할 이유와 자기 자신의 상처에 대한 진정한 공감을 얻지 못해서 일어서지 못하는 것이거든요. 저도 그랬고요. 저는 생각해 보면 일어나 있었던 순간보다 주저앉았던 순간들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나중에 제가 글을 쓰면 독자들을 용서해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심심한 위로의 책들을 전합니다>는 그 첫 시도였고요. 굳이 장르로 치면, 자기계발서보다는 에세이에 가깝지 않을까요?
우창
좋은 말이네요. 뭔가 지금 딱 생각이 드는 어떤 이미지가 딱 두 가지가 있는데 너와 나의 이미지가 딱 하나씩 떠오르는데 그 책을 만약에 쓰는 날이 온다면 그걸 쓰고 있는 너에 대한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 원고를 읽어보는 나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 같아.
거기서 좀 더 디테일을 추가하자면 그 원고는 뭔가 타이핑된 인쇄물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확 들고, 삐뚤삐뚤 네가 원고지에 쓰든 어디에 쓰든 너의 손글씨로 쓴 원고 초안을 내가 딱 읽게 되는...
우용
제 책 사주실 거죠?
제가 무료로 드리지 않습니다. 제가 그걸 왜 사 드려야 하죠?
우창
출판이 되면 제가 사죠. 근데 이제 그 초안은 나한테 네가 갖다 줘야지
우용
오 그래도 출판된 건 사네. 출판된 거 당연히 공짜로 줘야 할 줄
우창
그거 사줄 수 있지 그리고 이제 직장 동료와 주변 지인에게 이제 사면서 좀 홍보도 하고..
우용
정말 친절하시네요ㅋㅋㅋㅋ
우창
돈에 대한 관점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우리가 매주 만나면서 서로 얘기를 나눴던 부분인데요. 예전에는 우리 둘 다 돈을 “주어진 양에서 아껴 쓰는 것”이라고 인식했는데, 주변 친구들 몇 명을 보고 나니 돈을 “자신의 역량을 이용해서 벌어들이고 쓰는 것”이라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어요. 그렇게 관점이 변하게 된 계기와, 아직도 후자의 관점이 완전히 옳다고 믿으시는지 궁금하네요.
우용
네, 전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어요. 전자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에요. 다만, 선택의 폭이 훨씬 줄어들게 되고, 무엇보다 나와 관련된 다른 사람과 관련하여 돈을 써야 할 때, ‘주어진 양’에 대한 개념이 상대보다 적으면 그 사람 자체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결혼을 무일푼으로 할 수는 없잖아요? 내가 얼마를 모았는데, 그 얼마가 상대가 보기에 너무 적으면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힘들어지겠죠.
우리 둘 다 경제학과니까, 경제학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전자의 관점은 주어진 예산 안에서의 “비용 극소화” 문제라고 부르고, 후자의 관점은 소비자의 최대한의 행복을 이끄는 “효용 극대화”의 문제라고 표현할 수 있어요. 그래서 ‘비용 극소화냐’ 아니면 ‘효용 극대화냐’의 문제인데, 예산을 주어진 것으로 정해버리면 그걸 벗어난 선택을 하지 못하잖아요. 예산을 스스로 늘려보려고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권의 범위도 알아서 늘어나 주지는 않는다고 생각을 해요.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일에 대한 태도”와도 관련이 되어 있어요. 세이노도 지적하는 부분이죠. 시급이 2만 원인 일을, 정말 딱 2만 원어치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맞게만 일하면 시급이 안 올라요. “예산도 딱 이만큼, 그러니 내 노력도 딱 이만큼”으로 제한되어 버리죠. “돈은 최대한 많이 벌어서, 펑펑 사고 싶은 거 다 사자”라는 마인드가 노력이라는 차원에서 봐도 좀 더 낫다고 생각해요.
우창
저도 요즘 그 부분이 제일 공감이 가는 것 같아요. “예산 제약을 스스로 늘리려고 하지 않으면 컨섬션 번들(consumption bundle; 소비 가능한 영역을 일컫는 경제학 표현)도 알아서 늘어나지 않는다.” 정말 당연한 소리인데, 그걸 계속 마음에 새기고 일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우용
네, 이제 마지막으로 인터뷰어(interviewer)와 인터뷰이(interviewee)의 역할을 바꾸어, 제가 질문할 차례인데요. <세이노의 가르침>은 제가 고른 책이죠. 그래서 기본적으로 오늘 인터뷰 형식도 우창 님이 질문을 하고, 제가 답을 하는 걸로 잡았어요. 앞으로 이제 번갈아 가면서 한 권씩 서로 책을 고를 건데, 이 책은 읽으시면서 어떠셨나요? 그러니까 본인의 선택에 의한 책은 아니었는데 어땠는지 간단한 감상평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우창
저는 일단 이 책에 대한 감상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서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첫 번째는 우용이라는 친구가 이 책을 나한테 읽자고 했을 때 받았던 느낌. 두 번째는 책을 읽으면서 혹은 주차 별로 대화를 나누면서 들었던 생각.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1회 차를 끝냈네”하는 뿌듯함이에요.
첫 번째로 우용 님이 이 책을 읽자고 했을 때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되게 의외였어요.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을 저는 들어본 적도 없었어서 우용 님이 대략적으로 어떤 책인지 설명을 해줬는데, 저는 그런 설명을 들으면서도, 또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도 세이노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평소에 학자를 꿈꾸는 이 친구가 관심 있어할 내용이 잘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자기계발서 자체를 굉장히 좋게 생각해서, “그래 좋아” 이렇게 별다른 고민 없이 수락했던 것 같아요.
그 뒤에 책을 읽는 도중과 주차 별로 하는 북토크에서 느꼈던 점은, 생각보다 이 책의 내용이 그렇게 공감이 가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좀 난해하고, 저랑 안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을 때 앞서 언급한 우용 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됐던 것 같은데, 자서전이나 전기, 혹은 1인칭 영상인 것처럼 자기계발서를 읽는다는 그 말이 제가 이 책을 꾸준히 읽을 수 있게 해 준 상당히 고마운 디딤돌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사람이 말하는 방식이 너무 단정적인 것 같아서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약간 귀에 들어오기 전에 튕겨져 나가기도 했는데...
우용
아마도 그렇게 생각해서 이 책을 중간에 덮는 사람들도 많을 것 같아요.
우창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어렵진 않지만 꽤나 두꺼웠던 이 책을 독파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마중물”의 역할 때문이었어요. 저도 이 프로젝트의 취지에 굉장히 공감을 많이 했고,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어서 단번에 수락을 했던 건데, 이 책이 뭔가 다음에 제가 다른 책을 읽는 일에 있어서 마중물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하게 느꼈거든요. 한 권의 책을 긴 호흡으로 읽는 경험이 그 다음 책을 읽기에도 저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이 책을 읽는 중에도 사실 한 두세 권 정도의 책을 마무리를 했어요. 그 책들도 이제 마찬가지로 우용 님이랑 사실상 같이 읽었던 아니 에르노 작품이었는데, <단순한 열정>과 <남자의 자리>라는 책을 마무리를 했고, 지금은 이동진 작가의 <밤은 책이다>라는 책을 읽고 있거든요. 아무튼 <세이노의 가르침>이 앞에서 언급한 여러 책에 대한 마중물의 역할도 한 것 같아요. 저는 요새 책을 읽을 때, 인상 깊은 구절들을 밑줄 긋고 따로 정리를 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정리한 구절들을 계속해서 찾아 읽어보게 되기도 했고요.
아무튼 두 번째 감상은 그랬고요. 마지막으로 느낀 점... 저는 우용 님이랑은 조금 다르게 스스로 뭔가 이렇게 딱 시작을 하자고 한 일에 대해서 끈기가 잘 없는 편이거든요.
우용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우창
그래도 이제 뭔가 너는 내가 봤을 때 딱 집중하는 기간 동안에는 그래도 되게 목표의식이 뚜렷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바디 프로필을 찍을 때에는 정해진 칼로리 이상 먹지 않는다거나 하는 게, 저는 그런 걸 잘 못하는 타입이어서 그래도 “책을 하나 끝냈네, 그리고 이제 얘기도 많이 해보고 그랬네”라는 그런 뿌듯함이 되게 좋은 것 같아요. 물론 아직 저희가 딱 1장을 미친 거긴 하지만요ㅎㅎ
시작부터 너무 어렵고 감상적인 책을 하게 되면 뭔가 우리가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내 감상이 좀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읽기가 편해서 그럴 게 굳이 없었던 책이었어요. 첫 시작으로는 되게 좋은 자기계발서였던 것 같아요. 아주 만족합니다.
우용
네, 맞아요. 아무튼, 오늘 감사했고요. 한 달간 이 프로젝트를 함께 해주셔서 더 감사하고요. 우리는 이 프로젝트로는 이제 중간고사가 끝난 뒤, 한 달 후에 봅시다.
우창
네, 한 달 뒤에 봅시다. 이제 술 한 잔 하러 가죠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