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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 하나의 문화 May 26. 2024

트랜스내셔널 노래운동

글: 정혜진

https://youtu.be/-REcSMz2hUk?si=zxEhD2vKZHTzmriD

참고 1또 하나의 문화 어린이캠프 창작동요집 중 카세트 테이프 B면

트랜스내셔널 노래운동

「밥과 자본주의」 연작시와 「희년을 위한 노래」의 초국적 네트워크와 ‘또 하나의 문화’


필자 정혜진은 또 하나의 문화 동인으로,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0~90년대 한국의 운동사와 시사를 연계하여 공부해왔고, 특히 고정희를 연구하며 여성시와 여성운동에 관한 논문을 썼다. 현재는 포스트냉전 시대 한국 여성주의 시의 문화전략에 대한 박사논문을 준비 중이다.


이 글은 필자의 논문 트랜스내셔널 노래운동: 「밥과 자본주의」 연작시와 「희년을 위한 노래」의 초국적 네트워크와 혼합주의 (『상허학보』 70, 상허학회, 2024)를 간추린 것으로, ‘또 하나의 문화’와 관련된 내용을 초점화하여 요약하였다. (원본 논문은 아래 첨부파일)





1. 트랜스내셔널 노래운동과 ‘또 하나의 문화’


고정희는 1990년 8월~1991년 2월 필리핀 방문 이후 1991년 6월 작고하기까지, 자본주의와 신식민주의, 섹슈얼리티 문제에 관한 초국적이고도 급진적인 시야를 보여 주며 1990년대 한국 여성주의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고정희의 시 「밥과 자본주의」 연작과 「우리 시대 섹스와 사랑 공청회」는 필리핀 체류 중에 집필되었으며, 1991년 1월에 2주간 동남아 여행을 한 경험은 「외경읽기」 연작의 창작으로 이어졌다. 특히 「밥과 자본주의」 연작은 ‘아시아예전음악연구소(Asian Institute for Liturgy and Music, 이하 AILM)’(1)라는 트랜스내셔널한 장소에서 기획·집필되어 노래책 「희년을 위한 노래(Songs for Jubilee)」(고정희 시, 이건용 곡, 1991)(2)로 출간되었으나, 이 사실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다.


「밥과 자본주의」 연작이 노래의 기획 가운데서 창작되었다는 사실은 고정희 시를 노래운동의 지평에서 사유할 필요성을 강하게 환기한다. 이와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밥과 자본주의」와 「희년을 위한 노래」의 ‘트랜스내셔널 노래운동’(3) 네트워크에 ‘또 하나의 문화’가 긴밀히 얽혀있었다는 사실이다. 또문 ‘어린이 캠프’에서부터, 동인회보 21호, 24호의 여성해방가(女性解放歌) 기획, 무크지 7호와 8호의 발간까지. 또문은 고정희의 시가 노래로 만들어진 최초의 현장이자, 노래운동의 초국적 전개의 동인이었고, 여성해방가의 모색과 변용의 계기였다.


(1) AILM은 1980년 필리핀 마닐라 케손시티에 설립된 음악학교로, 필리핀 성공회와 필리핀 독립 교회가 소유하고 조직한 5개 기관 중 하나이다. AILM은 아시아 에큐메니칼 노래운동의 일환으로 ‘예전음악의 토착화’ 작업을 진행해 오다가 2017년에 폐교되었다. 예전음악의 토착화란 기독교 문화의 서구중심성을 극복하고 아시아 각국의 상황(situation)과 맥락화(contextualization)되는 예전음악의 창작·수용을 말한다. 「밥과 자본주의」와 「희년을 위한 노래」는 그러한 토착화 과정이 초국적으로 전개되었음을 보여 주며, ‘필리핀과 한국’, ‘시와 음악’의 상호작용이라는 혼합주의적 특성을 드러낸다.
(2) Sung-Ae Goh and Geonyong Lee, trans. Hyon Joo Shim and Geoffrey Weaver, AILM COLLECTION OF ASIAN CHURCH MUSIC NO.18: 희년을 위한 노래(Songs for Jubilee), Manilla: Asian institute for Liturgy and Music, 1991. (자료 제공: 이건용)
(3) 여기서 ‘트랜스내셔널 노래운동’은 특정 사회의 상황과 맥락화되는 노래의 초국적, 집합적 생산을 뜻한다.


2. 어린이 캠프


고정희는 작곡가 이건용(4)의 제안으로 AILM에 ‘상주 예술가(Artist-in-Residence)’로 방문하게 되었으며, 또문 ‘어린이 캠프’(5)는 고정희와 이건용의 AILM 동행의 계기였다. 고정희와 이건용은 1984~85년 크리스챤 아카데미 ‘예배음악 연구위원회’ 대화모임에서 ‘예배음악의 토착화’를 위한 시와 음악의 공동작업에 참여한 바 있고, 이후 두 사람이 최초의 실질적인 협업을 진행하여 노래의 결실을 맺은 것은 또문 어린이 캠프에서였다.

<어린이를 위한 마당놀이 “눈타령”을 위한 노래> 부분

고정희는 이건용에게 어린이 캠프를 위한 노래의 작곡을 요청하였고, 이 공동작업은 공해 문제를 주제로 연달아 개최된 1, 2차 어린이 캠프 사이(1986.8~1987.1.)에 이루어져, <어린이를 위한 마당놀이 “눈타령”을 위한 노래>로 완성되었다. 이 노래의 악보는 어린이 캠프를 위해 창작된 다른 노래들과 함께 무크지 5호(1989.11.18.)에 실렸다. 마당놀이의 연행적 특성과 더불어 공동체 노래의 성격을 강하게 띠는 이 곡은 ‘메기는 노래’와 ‘받는 노래’로 구성된 민요조의 노래이며 생태주의의 주제를 전한다.


이건용은 고정희로부터 자신의 시로 “음악을 만들어 달라는 얘기를 듣고 내가 그 시[<어린이를 위한 마당놀이 “눈타령”을 위한 노래>]를 자세히 읽었던 기억이”(6) 난다고 밝혔다. 그리고 자신이 “그런 시들을 통해서, 고정희 선생이 노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걸”(7) 알게 되었을 것이라 회고하며 이를 AILM에 동행한 계기 중 하나로 언급했다. 그런가 하면 이건용은 고정희와 동행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며 고정희가 여성주의 시인이자 여성운동가였기 때문이었음을 가장 먼저 이야기했다. “고정희 선생이 여성주의 시를 쓴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당시에 ‘또 하나의 문화’를 중심으로 해서 여성운동을 활발히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어요. 그분과 필리핀에 같이 가려고 마음먹은 이유 중의 하나가 그것이었고요.”(8) 이는 고정희 시가 한국의 여성운동과 연결돼 있다는 점이 AILM의 작업에서 중시되었음을 말해 준다.


(4) 이건용(1947.9.30~)은 한국의 음악가로, 서울대 음대 및 동대학원 작곡과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음대 작곡과를 졸업한 후 가곡, 합창곡, 실내악, 관현악, 노래, 찬송가, 음악극, 무용음악, 칸타타, 오페라 등을 아우르는 음악을 작곡해 왔다. 이건용은 1981년 ‘제3세대’ 동인의 결성, 1983년 음악 이론 활동, 1986년 ‘한국음악극연구소’ 및 1988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참여, 1989년 ‘민족음악연구회’의 설립을 통해, 한국의 역사적 맥락과 시대 현실에 뿌리내린 음악을 해나가며 당대 전개된 노래운동과 접속하였다. 이건용의 음악 활동은 1980년대 후반 ‘노래’로 집중되는데, 노래극 <우리들의 사랑>(1987)과 <구로동 연가>(1988)의 노래 작업을 하고 고정희, 김정환, 김해화, 박노해, 문익환, 윤동주, 이강백, 하종오, 황지우의 시를 노래로 만들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고정희, 김문환, 김사인, 김소월, 도종환, 백창우, 서정주, 오세영, 윤재철, 이승순, 최영미, 허수경, 황지우 등의 시를 노래와 가곡으로 작곡하였다.
(5) 또문 어린이 캠프는 1986년 8월 12~14일에 최초로 개최된 여성주의 돌봄·교육 프로그램이다. 또문은 출발에서부터 양육, 돌봄, 교육의 문제를 여성운동의 의제로서 중요하게 다뤄왔으며, 어린이 캠프에서는 성별 이분법과 가부장적 문화의 극복이 추구되었고, 어린이들은 성평등·다양성·자율성·공동체성이 지향되는 환경에서 대안문화 운동에 접속하였다. 또한 어린이 캠프는 또문에서 여성주의와 생태주의가 교차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1, 2차 캠프가 모두 ‘깨끗한 지구, 다정한 친구’를 주제로 하여 개최되었다.
(6) 이건용과의 인터뷰, 2023.10.10.
(7) 위의 인터뷰
(8) 위의 인터뷰




3. 「희년을 위한 노래」


고정희의 「밥과 자본주의」 연작은 고정희 시, 이건용 곡의 「희년을 위한 노래」 작업의 일환으로 기획·집필되고 보충·변주되어 묶였다. 「밥과 자본주의」 연작시 총 26편 중 7편은 고정희가 필리핀에 머물던 시기에 「희년을 위한 노래」를 위해 최초 집필됐고, 19편은 필리핀 체류 중과 귀국 후에 틈틈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희년을 위한 노래」는 1991년 8월에 AILM에서 발간되었다. 이건용은 ‘희년을 위한 노래’가 1995년을 ‘희년(禧年)’으로 선포한 한반도 통일운동의 취지를 잇는 표제였으며, 실제 작업이 ‘밥’에 대한 시로 묶였다고 밝혔다. 이건용은 고정희가 ‘밥’에 대한 시를 쓰게 된 맥락을 필리핀의 상황과 관련지어 설명했는데, 이는 아키노 공항에서 ‘밥과 자본주의’ 시제가 떠올랐다는 고정희의 언설과도 공명하는 것으로, 「희년을 위한 노래」에 한반도와 필리핀의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얽혀 있음을 말해 준다.


「밥과 자본주의」 연작과 「희년을 위한 노래」가 주목하는 ‘밥과 자본주의’의 관계는 성찬(missa, 제사·육화)의 코이노니아(koinonia, 친교·나눔·공유)를 반자본주의와 접속시키는 방법론이다. 여기서 ‘밥의 속성의 회복’은 독점적·종속적 자본주의의 극복이자, 교환가치와 절연한 사용가치(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의 실현으로서, ‘먹고 사는 것’이 고통이 되지 않고 여성의 몸과 인간의 노동력이 상품이 되지 않는 해방의 전망과 연결된다. 「밥과 자본주의」와 「희년을 위한 노래」에서 ‘하녀’와 ‘성매매 여성’을 초점화하는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다. 이 두 표상은 마닐라 등지로 유입되거나 해외로 유출된 필리핀 이주여성과 ‘요보호 여성’으로 관리되었던 한국 이주여성들이 처한 성별화된 노동 현실을 상기하게 한다. ‘밥’은 아시아의 주식이라는 점에서 아시아의 가부장적·식민적 자본주의 현실을 표상하고, 그로부터의 해방은 체제와의 단절로서 도래한다.


「희년을 위한 노래」는 ‘Ⅰ희년을 기다리는 노래’와 ‘Ⅱ희년의 노래’ 두 부분으로 나뉘어 총 15곡의 노래가 수록되었다. 이 15곡에는 고정희의 유고시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에 「밥과 자본주의」 연작으로 묶인 7편의 시뿐 아니라, 고정희의 이전 시집 「이 시대의 아벨」(1983), 「광주의 눈물비」(1990), 「여성해방출사표」(1990)에 실렸던 시 4편이 포함됐다.

「희년을 위한 노래」


「희년을 위한 노래」에서는 아시아라는 방법으로 필리핀과 한반도의 역사와 전망이 혼합된다. ‘Ⅰ희년을 기다리는 노래’를 여는 <밥의 서시>는 필리핀의 성별화·계급화된 현실을 통해 아시아 여성과 민중이 처한 모순을 시사한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는 아시아의 역사를 정동적 풍경으로 제시하며 그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이 노래의 배치에 따라, 「상한 영혼을 위하여」에서 한국의 민중사를 암시했던 “고통과 설움의 땅”은 아시아 민중사로 확장되고, 노래에 등장하는 시김새는 아시아의 지평에서 한국의 맥락을 바라보는 시야를 나타낸다. <우리시대 산상수훈>은 “몸종”, “빨갱이”, “창녀”, “거지”, “반동”, “반체제”라는 타자화된 이름들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풍자한다. <아시아의 아이에게>와 <하녀에게>는 필리핀의 빈곤과 성별화된 노동을 통해 아시아 현실을 보여 주는 한편 필리핀에서 아시아의 미래를 발견하고자 한다. <통곡의 행진>과 <눈물의 주먹밥>은 광주 여성들의 애도, 투쟁, 사랑을 조명하며 필리핀 여성들의 역량을 상기시킨다.


‘Ⅱ희년의 노래’의 <그대 돌아오는 날>은 해방의 날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고, <사랑바람 불어라>는 도래한 그날을 남북통일의 광경으로 묘사한다. <딸들아 이제는>과 <그대는 여자 우리는 동지>는 그날을 맞이하는 결연한 희망을 초국적 자매애에 대한 확신으로 노래한다. <딸들아 이제는>의 노랫말은 「여성신문」과 「여성해방출사표」에 실린 「자매여 우리가 길이고 빛이다」가 개작된 것이다. 「자매여 우리가 길이고 빛이다」의 “이천만 여성의 염원 불을 당기던 그날”이라는 시구는 <딸들아 이제는>에서 “온 세상 여성의 해방 불을 당기자”로 바뀐다. 그런가 하면 <그대는 여자 우리는 동지>는 다음과 같이 노래를 맺는다. “국경도 없네 출신도 없네 그대는 여자 우리는 동지”. 이 구절은 「희년을 위한 노래」가 필리핀에서 만들어졌기에 쓰일 수 있었던 빛나는 언어이다. 이처럼 「희년을 위한 노래」는 필리핀과 한반도의 가부장적·식민적 자본주의의 역사를 교차하여 초국적 여성주의로 나아가는 서사를 구성해 낸 연작곡이다. 그 과정에서 시와 음악, 필리핀과 한국의 민중사는 혼합되면서 상호형성한다.



4. 「밥과 자본주의」


「밥과 자본주의」 연작은 ‘Ⅰ희년을 기다리는 노래’의 기승전결 구조를 유지하되 이를 확장, 변주하였으며, 「희년을 위한 노래」의 서사를 초과하면서 가부장제—제국주의—자본주의의 공모관계 속 군사주의의 문제를 암시하기도 했다. 고정희와 이건용이 마닐라에 체류했던 1990년 8월부터 1991년 2월 내지 8월까지의 시점은 걸프전이 일어난 시기이자, 반미운동과 피나투보 화산의 폭발, 미군기지 철수 등으로 필리핀이 몹시 격동하던 때였다. 고정희와 이건용은 군사적 상황이 극적으로 전개되던 시기에 마닐라에 있었으며 이에 관한 문제의식을 「밥과 자본주의」 연작에서 읽을 수 있다.


'밥과 자본주의' 연작이 실린 고정희 시인의 유고집,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


일례로 「푸에르토 갈레라 쪽지」는 필리핀 ‘섹스 관광’에 퇴적된 모순들을 일본군‘위안부’ 문제와 교차시켰고, 시에는 성구매자인 서구 남성에 대한 고발과 함께 식민지 남성을 향한 다음의 탄식이 등장한다. “아아 아시아 남자들은 문 밖에서 담배 같은 희망 혹은 희망 같은 담배를 피워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아시아 남성의 ‘희망’은 필리핀의 가부장적 자본주의 지역 정치와 서구 군사주의 남성성의 결탁으로 형성된 섹스 관광의 성격을 담지한다. 시의 말미에서 필리핀 여성의 현실과 교차된 아시아 일본군‘위안부’들의 단말마의 비명 “어머니”는, 가부장제를 종결하는 여성해방의 과제에 식민지 여성 거래와 전시 성폭력의 역사가 뒤엉켜 있음을 환기한다.


한편 이건용은 고정희가 필리핀에서 성산업 현장을 방문한 바 있음을 회고했다. 이건용에 의하면 고정희는 당시 필리핀에서 언론 종사자였던 한국인에게 현지 안내를 부탁하곤 했고 한번은 마닐라의 한 유흥업소를 방문했다. 섹스 관광의 거점인 올롱가포와 앙헬레스, 그리고 푸에르토 갈레라 모두 마닐라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로즈마리 위스는 마닐라의 에르미타 또한 입출국하는 군인들의 홍등가가 되었으며 1991년에는 마닐라의 중심지에 있던 에르미타의 성산업이 파사이 같은 마닐라 남부 교외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밝힌 바 있다.(9) 고정희가 방문한 데가 어디인지, 푸에르토 갈레라에서 아침 파도 소리를 들으며 떠올린 성매매 현장이 어느 곳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장소에 고정희의 발걸음이 닿고, 그곳 여성들의 삶이 푸에르토 갈레라의 역사와 만나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성매매 여성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의 공모관계를 질타하는 언술 주체로 등장한 「몸바쳐 밥을 사는 사람 내력 한마당」은 무엇과 맥락화될 수 있는가? 「몸바쳐 밥을 사는 사람 내력 한마당」의 성매매 여성의 목소리는 판소리 양식을 통해 터져 나올 수 있었다. 이건용은 「희년을 위한 노래」에서 판소리 양식이 작곡의 고충 속에서 등장했음을 전하며 시와 음악의 긴장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고정희 선생은 굉장히 음악적인 것을 가지고 있었지만 역시 말을 하고 싶은 분이었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 말들이 막 나오는 거죠. 그래서 노래하는 입장에서, 노래로 만드는 입장에서 다 담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중략) 노래로 담기에 너무 힘들어서, 시는 내레이션처럼 읊도록 하고 음악은 따로 만들었어요. 그러다가 뒤에 가서 노래가 되는 장소에는 노래를 만들었어요. (중략) 한눈에 보기에도 이렇게. 음악에는 ‘산문’에 대응하는 말은 없어요. ‘흩어진 노래’랄까? 그리고 <가진 자의 일곱가지 복> 있잖아요. “너희 배부른 자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그건 판소리 스타일로 가니까 좀 가능했어요.(10)     


내레이션과 판소리에 담긴 말에 대한 간절함. 주체할 수 없는 말의 홍수를 노래로 요청한 시인과 이에 응답하고자 고투한 작곡가. 말과 음악의 불화로 탄생한 노래. 노래 형태가 아닌 노래. 음악에는 없는 개념과 양식의 모색. 이것들이 「몸바쳐 밥을 사는 사람 내력 한마당」에서 기존 문법을 뚫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사설조의 여성주의 언어 공간을 열었다고 말하고 싶다.     


(9) Rosemary Wiss, “Tropicality and Decoloniality: Sex Tourism vs Eco Tourism on a Philippine Beach”, eTropic: electronic journal of studies in the Tropics, 22(2), 2023, p.70.
(10)  이건용과의 인터뷰, 2023.10.10.




5. ‘여성해방가’의 기획과 여성주의 노래운동 현장의 창조


고정희는 필리핀에서 서간으로 또문과 교류하며 무크지 7, 8호의 발간에 참여하였고, 그 일환으로 「우리 시대 섹스와 사랑 공청회」를 집필했다. 이 시는 무크지 8호에 게재되었다. 이는 「희년을 위한 노래」와 또문의 얽힘을, 그 매체 효과를 보여 준다. 「우리 시대 섹스와 사랑 공청회」의 말미를 장식하는 것이 <딸들아 이제는>의 악보이기 때문이다. 이 악보는 시의 일부로 삽입되어 있다. 시의 화자들은 당대 한국의 “섹스와 사랑 문제”, 즉 섹슈얼리티에 관한 공청회를 벌인 후, “깊이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 함께 노래를 부르자는 제안을 긴급 사안으로 제기한다. 찬성을 의미하는 “우뢰 같은 박수”와 함께 <딸들아 이제는>이 등장하고, 화자들의 노랫소리는 악보가 들려주고 있다. 「우리 시대 섹스와 사랑 공청회」는 여성주의 노래운동의 현장을 재현하여 <딸들아 이제는>을 그곳에 위치시켰다.


「또 하나의 문화 동인회보 제21호」(1987.1.15.)에는 “여성해방가를 위한 노랫말”이라는 표제하에 강희영과 고정희의 시가 실렸으며, 고정희의 해당 시를 노래로 만든 <해방의 새벽>(고정희 작, 남인화 곡)의 악보가 「또 하나의 문화 동인회보 제24호」(1988.6.17.)에 수록됐다. 이는 또문이 여성해방가를 기획했음을 의미하며, 이후 창작된 <딸들아 이제는> 또한 그와 연계된다고 볼 수 있다. <딸들아 이제는>은 「여성신문」 창간 1주년을 기념하여 집필된 「자매여 우리가 길이고 빛이다」가 「여성신문」(1989.12.1.)에 게재되고 「여성해방출사표」(1990.9.15.)에 실린 후, 노래가 되어 「희년을 위한 노래」에 수록되었다. 그리고 노래는 다시 시가 되었다. <딸들아 이제는>의 재매개는 노래가 시와 혼합되는 다채로운 과정이다. 여성주의 언론운동, 초국적 여성주의, 섹슈얼리티로 변모하는 언어를 통한 음악의 이행이자, 음악의 이행으로 인한 언어의 열림이다. 그것은 여성해방가의 모색과 변용이자, 여성주의 노래운동 현장의 창조였다.

「우리 시대 섹스와 사랑 공청회」 부분


2024. 5. 13. 정혜진





참고 1) 또 하나의 문화 어린이캠프 창작동요집 중 카세트 테이프 B면
'눈타령' 관련
 https://youtu.be/F6pRdpcNt7A?si=oYpL21C-13ikodm9

또문 어린이캠프에서 불렸던 <어린이를 위한 마당놀이 “눈타령”을 위한 노래>


참고 2또 하나의 문화 어린이캠프 창작동요집 중 카세트 테이프 A면

https://youtu.be/-REcSMz2hUk?si=zxEhD2vKZHTzmriD  (깨끗한 지구, 다정한 친구)


참고 3) 동인지 5호에 실린 창작동요 악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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