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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 하나의 문화 Mar 10. 2024

"친구랑 불멍하다 왔어."

글: 유나 (사진: Unsplash의 Ville Palmu)

글쓴이 소개:
글쓴이 유나는 또문 어린이 캠프 노마로 시작하여, 한때 하자센터 흙공방 판돌이었던 또 하나의 문화 동인입니다. 대단한 손재주 보유자인데, 최근에는 김치담그기에 취미를 붙이며 역마살을 희석중이라고 합니다.


엄마, 그녀의 이름은 파뤼피플


“친구랑 불멍하다 왔어.”

새벽 1시쯤 돌아온 엄마의 첫 마디는 쌩쌩하고 신나있다. 곧바로 씻고 취침하신 그분은 아침 8시가 되자마자 다시금 외출하신다.


“친구랑 산책하고 올게.”

거실에서 현관까지 뛰어가는 뒷모습은 거의 점프 수준이다.


“미수씨 집에서 점심 먹었지. 뭘 또 이렇게 싸주는지. 하하하하”

외출 후 돌아와 미수씨 선물 꾸러미를 풀어 이리저리 적재하며 자랑을 늘어놓으신다. 반찬과 물건들이 자리를 잡았는지 한 시간 후에는 라인댄스 수업에 가야 한다며 환복을 하신다.


엄마의 하루는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하다. 마을을 중심으로 라인댄스, 국선도, 중창단 등의 활동이 거의 매일 이루어지고 엄마의 동기들은 엄마를 회장님~회장님 부르며 아침저녁 없이 서로의 문간을 넘어 다닌다. 나이가 같고 입맛이 비슷하다며 친해진 미수씨는 엄마의 새로운 단짝이 되어 매일 아침 산책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한다. 집이 코앞인데도 헤어지면 메시지에 전화에 이건 연애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서로를 살뜰히 챙긴다.      

폭우와 낙뢰 속 써클댄스. 엄마의 동료들은 더러 몸살이 나기도했다.
써클댄스에서 돌아와 환복하고 라인댄스 공연준비를 위해 씩씩하게 나서는 모습.


세 모녀의 ‘농촌 살아보기’ + 아빠 ‘혼자 살아보기’


3개월 전만 해도 주 2~3회 엄마를 병원에 모시고 다녔다. 매일 계속되는 두통,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숨 가쁨과 가슴 답답함, 그 증상들은 엄마를 괴롭혔고 우리 자매를 두렵게 했다. 병원을 오가며 신경외과와 호흡기내과 선생님들과 친해질 때쯤, 우리는 이건 아니다 싶어 농촌 살아보기를 결정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떠났다. 세 모녀의 ‘농촌살아보기’이자 아빠의 ‘혼자살아보기’를 시작한 것이다.


#1. 엄마의 ‘농촌 살아보기’


엄마의 40년 넘은 결혼생활에 최장기간 아빠와 떨어져 보는 첫 경험이었다. 농촌 생활은 꽤 다채로웠다. 매실 수확도 하고, 밭을 일구어 이것저것 심어보고, 장날이면 우르르 몰려가 장도 보고, 마을 명물이라는 주조장에 찾아가 막걸리도 받아오고. 하지만 무엇보다 놀랍고 즐거운 것은 엄마의 변화였다. 항상 말수가 적고 조용히 움직였던 그분은 어느 순간 큰 소리로 웃고, 마루를 부술 스텝으로 우당탕탕 뛰어다녔으며, 30분 이상 같은 곳에 앉아 있지 않는, 그야말로 호기심 가득 열정 넘치는 마을의 파뤼피플이 되어 있었다. 이런 변화 덕분인지, 좋은 공기와 따뜻한 이웃들 덕분인지 엄마의 두통과 가슴 통증은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농촌살아보기 5개월쯤 되었을까? 염색을 위해 엄마 빗질을 하던 동생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흰머리 사이로 한 무더기의 검정 머리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회춘이던가? 세 모녀는 놀람과 기쁨과 감사함에 흥분하여 춤추고 노래하며 밤을 보냈다. 다음날 사촌 동생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마자 하는 말.


“몸종이 둘이나 있고 고모부랑 떨어져 살아서 그러네!”


아, 그런 건가?! 결혼 이후 두 명의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한 남자와 40년 넘게 매일매일 만나야 했던 생활에서 벗어나니 극강의  외향인이 되고 고질병이 고쳐지고 급기야는 검은 머리가 나는 이 상황. 우리는 여기 오길 잘했다는 말만 반복하며 웃을 수밖에 없었다.

농촌에서는 채소 사먹으면 멍청이라했다. 대파 수확중.
마을 주민들과 플로깅 중인 엄마.


#2. 아빠의 ‘혼자 살아보기’


엄마의 열정과 행복 가득한 농촌살아보기가 계속되면서 우리는 은근슬쩍 아빠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농촌 생활 초반에는 평상시 살림에 살자도 모르던 그분의 일상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왠지 모르게 고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또 그놈의 작은 연민이 궁금함을 넘어 걱정으로 변했고 급기야 아빠한테 가보기로 했다. 4개월 동안 아빠 혼자 있었던 집의 문을 여는 것은 꽤나 많은 질문을 불러왔다. 더러울까? 깨끗할까? 취사의 흔적은 있을까?


수십 개의 질문 속에 현관문은 열렸고 코 끝에 들어오는 공기로 이미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아빠는 혼자 잘 살고 있었던 것이다. 집사가 필수였던 수십 개의 화초들은 하나도 죽지 않고 싱싱하게 자라있었다. 꽉 묶인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취사라는 활동이 있었음을 알려주었고, 채광에 맞추어 자리한 건조대에는 어설프지만 잘 널어진 빨래들이 마르고 있었다. 식탁 위의 물건들이 아빠만의 질서로 놓인 모습을 보니 아빠는 혼자 잘 할 수 있었구나 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헛웃음이 나왔다. 아빠에게 물어보니 아침은 달걀과 빵으로 간단하게 점심은 식당에서 저녁은 우리가 인터넷쇼핑으로 보낸 식재료로 스스로 해결한다 하셨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림을 잘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은근 얄밉기도 했다. 하지만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신이 날 만큼 가벼울 수 있었다.    


 

세 모녀의 ‘함께 살아보기’


성인이 된 이후 줄곧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던 동생과 나는 제법 잘 맞는 파트너다. 하나가 요리를 하면 하나가 설거지를 하는 소위 말하는 손발이 잘 맞는 사이이다. 함께 살아본 시간도 길어 귀농 귀촌을 한다 해도 내부적 트러블은 없으리라 확신하였다. 그러나 긴 시간 일상을 함께 하지 않았던 엄마와의 동거는 속을 알 수 없는 수박 같은 것이었다. 잠깐잠깐 부모님 댁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으나 네 명과 세 명이라는 구성원의 차이, 하루의 일부가 아닌 24시간이라는 물리적 차이는 분명 있을 것 같았다. 장차 함께 살기 위해 서로를 알아가는 워밍업은 필수라는 결론이 농촌살아보기를 감행한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서로 안 맞으면 어떻게 하지라는 기우와는 달리 엄마와 우리는 꽤 죽이 잘 맞았다. 무엇보다 의사소통에 있어 서로 단순하고 솔직했다. 살림에 있어서도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려 했다. 평생 살림을 한 엄마가 집안일에 손도 안대길 원했으나 에너지가 넘치는 그분은 빨래라도 해야 성이 풀린다 하셨고, 우리는 엄마를 빨래 요정이라 부르며 맘 편하게 옷을 벗어 놓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셋은 친구, 그냥 한 세트처럼 느껴졌다.      

또 신이 나버린 빨래 요정.


어떤 큰 변화가 있으셨나요


농촌에서의 일상은 6개월 이어졌다. 그 곳을 정리하고 돌아오는 마지막 주는 엄마 친구가 만들어주는 매일의 이벤트와 이웃들의 송별 파티, 마을 음악회 등으로 분주했다. 동생과 나는 파뤼피플 엄마의 얼굴을 도통 볼 수 없었다. 출발 직전까지 이웃들과 점심 식사를 하고 돌아오던 엄마는 처음 그곳에 도착했던 모습과 달리 싱그럽게 빛나고 있었다. 행여라도 엄마의 마음이 헛헛해질까 싶어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돌아오던 우리는 말하지 않았으나 알고 있었다. 이러한 세팅이 서로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을. 함께 사는 것만이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떨어져 있음으로 누군가는 빛나고 누군가는 제 몫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안색이 많이 좋아지셨네요. 그동안 어떤 큰 변화가 있으셨나요?”


평소 냉소적이던 담당의사는 진심으로 신기해하며 꼬치꼬치 캐묻는다. 엄마는 신이 나서 본인의 경험을 나누고 지금 이대로만 건강하면 된다는 말에 레알 춤추며 기뻐한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는 지천에 깔린 꽃들로 행복해했다.

  

지금의 엄마는 성가대 활동과 요가 수련을 이어가고 있으며, 인스타그램 또한 시작해 농촌에서 만난 친구들 포함 세상과의 소통을 쾌활하게 하고 있다. 자신만의 살림 기술을 익힌 아빠는 결혼 생활 40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엄마의 아침 식사를 차리며 식구로서의 1인분 몫을 하고 있다. 세 모녀의 ‘농촌살아보기’이자 아빠의 ‘혼자살아보기’의 효능을 알아버린 우리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고 이곳저곳을 조사하며 엄마의 호탕한 일상을 이어가고자 한다. (2024.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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