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선(또 하나의 문화 동인, 중부대학교 연극영화학전공 교수)
권은선(또 하나의 문화 동인, 중부대학교 연극영화학전공 교수)
최근 한국 드라마 시리즈의 우세종 가운데 하나는 법정드라마다. 실로 다양한 법정드라마가 연이어 등장한다. 사회가 불안하고 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대중들이 느낄 때, 법정드라마는 회귀한다. 이와 같은 문화적 현상은 계엄재판의 생중계와 뉴스가 우리의 일상이 된 시대, 법조인이 점점 더 중요한 통치권력자이자 셀럽이 된 ‘법조인 인플레이션’ 사회, 법의 해석을 이용하는 법기술과 ‘법꾸라지’가 난무하는 사태의 반영이자 응답일 것이다. 약자의 편이 아닌 권력자의 편에서 작동하면서 정의와 공정을 외면하는 법의 폭력과 무능함, ‘법과 정의의 아포리아’가 자아내는 시민들의 불만, 불안, 무력감에 대한 상상적 해결책, 즉 서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난 몇 년간 여성들이 피해자나 남성 엘리트 법조인의 법률조직 파트너가 아닌, 법의 대리인이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시리즈들이 연이어 만들어지고 있다는 점에 눈길이 간다. 대략 <미스 함무라비>를 시작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굿 파트너>, <지옥에서 온 판사>, <옥씨 부인전>과 같은 시리즈들이 그것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한 남성 거대권력 카르텔에 대한 불신과 환멸의 크기만큼, 그 아버지의 법을 해체하고 정의의 빛을 비추는 주체의 위치에 엘리트 남성이 아닌 여성이 자리하는 것은 어찌보면 시대가 요청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상 아닌가.
이제 막 시리즈가 끝난 <아너:그녀들의 법정>(이하<아너>)를 몇 가지 측면에서 흥미롭게 보았다. 우선 이 시리즈는 L&J라는 성피해자 전문 로펌에서 활동하는 친구이자 동료인 세 명의 여성변호사를 주인공으로 한다. L&J는 피해자의 말을 경청하고(Listen) 그들과 함께한다(Join)는 의지의 표명이다. 최근 등장하는 대부분의 법정드라마가 그러하듯이 이 시리즈 역시 ‘미스터리 추적극’의 장르적 요소를 결합한다. 공범자의 유대 같은 그녀들의 단단한 결속 아래에는 20년 전 발생한 윤라영의 성폭력 피해 사건과 관련한 세 여성의 비밀이 놓여있다. <아너>에서 주인공이 법지식을 통해서 사건을 통쾌하게 해결하는 영웅적인 법조인이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라는 설정은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동시에 관객과의 동일시를 용이하게 한다. 법정드라마라고는 하나 이 시리즈는 법정 내 법적 논증과정이 가져다주는 논리적 대결과 지적 유희보다는 법정 밖 성폭력을 둘러싼 우리 사회 구조의 어두운 측면과의 투쟁을 극적 즐거움의 요소로 가져온다.
동명의 스웨덴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고 있지만, <아너>는 사건의 전개과정에서 ‘장자연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과거의 ‘서지윤 리스트’와 현재의 성매매 앱 ‘커넥트인’을 주요 극적 요소로 삼아 남성들의 성을 매개로 연결되는 거대한 권력카르텔의 존재를 문제 삼는다. 정치권력, 대형로펌, 재벌, 언론 포식자들의 비밀 네트워크가 성거래를 담보로 한 상호보호막이자 권력 장치로 작동하는 것임을 보여주는데, 이 부분에서 최근 막대한 양의 자료가 공개되면서 다시 조명되고 있는 ‘엡스타인 파일’과 그것이 증거하는 초거대 글로벌 카르텔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주목을 끄는 것은 <아너>에서 설정한 이 카르텔의 새로운 최상위 포식자가 앱 개발자라는 점이다. 20여 년 전 성상납 의혹 속에 자살한 배우 서지윤의 동생인 백태주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법망을 뒤틀고 인간의 취약점을 이용해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는 동시대적 빌런이다. 디지털 기술이 어떻게 성범죄와 권력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법정드라마의 주요 극적 긴장은 ‘법과 정의의 간극’을 배경으로 펼쳐지기 마련인데, 백태주와 강신재의 대결은 정의의 실현 도구를 둘러싼 싸움이다. 법의 무능 앞에서 덫을 놓아 권력카르텔을 해체하기 위해 법을 단지 수단으로 삼으며 성폭력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것에 개의치 않는 자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피해자 중심주의에 기반한 정의의 구현을 믿는 자의 대립인 것이다.
동시대 여성서사로서 <아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여성들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즉 여성들의 우정이 가족애보다 우선적 가치로 다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동안 다른 여타의 드라마 역시 그러하지만, 모든 법정드라마에서 ‘가족’이란 늘 최상위의 ‘정서 포식자’였다. 그러나 그녀들은 친족보다 우정, 연대를 최상위의 가치로 둔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애정, 헌신이 마치 모든 관계적 가치들을 앞서는 것처럼 재현된다. 윤라영은 20여 년 만에 어렵게 재회한, 윤라영 자신처럼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백태주의 덫에 걸려 가해자가 된 딸이 법 앞에 서는 것에 기꺼이 동행하며, 강신재는 거대권력 카르텔의 중심축인 거대로펌의 대표인 자신의 어머니를 법의 심판대에 올려놓는다. 그것도 한 방울의 눈물도 없이.
이 부분에서 코스타 가브라스의 <뮤직 박스>와 이창동의 <시>가 떠올랐다. 나치 전범자로 법정에 소환된 아버지를 변호하던 <뮤직박스>의 앤 탈보트는 많은 피해 증언들 속에서도 법해석적 논리싸움을 통해 자신의 친족에 대한 믿음에 부합하는 법판결을 받아내지만, 역사적 사건 현장에서 ‘뮤직박스’라는 판도라상자를 연 이후 딸은 정의를 위해 아버지를 법의 심판대로 다시 올린다. <시>에서 극도의 이중적 딜레마에 빠진 윤미자가 손자를 경찰에 고발함과 동시에 지역문화센터 시 강좌 수강생 중 유일하게 시를 완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피해자의 흔적을 추적하며 무한한 책임감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타자의 얼굴을 마주했기 때문이다.
다소간의 불투명성으로 결말을 맺은 <아너>는 세 여성 인물이 커넥트인을 법 앞에서 세웠지만 그녀들이 추구한 권력카르텔의 청산은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며 후속 시리즈의 귀환을 암시한다. 판결 이후에도 상처는 남아있다. 법의 무능력과 폭력에 맞서는 것은, 법에 대한 총체적 부정과 불신이 아니라 법을 해체해 가면서, 고통 속에서 타자를 향한 무한한 윤리적 책임감인 해체불가능한 정의를 우리 앞의 미래에 여는 것이다. (2026.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