랄 살람 알레이쿰

이지은(또문대학 강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by 또 하나의 문화

(위 사진 출처: Tasos Katopodis/Getty Images for Win Without War)



랄 살람 알레이쿰

이지은(또문대학 강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지난 2월 이란에 대한 이스라엘의 선제타격이 있은 후 미국이 이란의 독재자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함으로써 ‘미국/이스라엘-이란’의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현재 이란은 중동 지역 미군부대를 폭격하고,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면서 맞서고 있다. 전쟁은 그 자체로 국경을 재편하는 충돌이자, 담론 지형을 재구성하는 사건이다. 전쟁을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는 익숙한 프레임 외에 이번 전쟁에는 이란 여성의 얼굴이 진영을 선전하는 얼굴로 자주 등장했다. 하메네이 사망 직후 쏟아진 숏폼에서 이란 여성들은 한편에서는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채 자국의 통치자를 잃은 슬픔에 오열하고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그간 히잡 착용을 강제해 왔던 독재자의 죽음에 기뻐하며 춤을 추고 있었다. 이란에서는 히잡 의무 착용에 대한 반대 시위가 계속되고 있었고, 이란 정권은 시위자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해 왔다. 2022년엔 히잡의 ‘부적절한’ 착용으로 체포되었다가 경찰의 폭력에 의해 사망한 마흐사 아미니를 추모하며 대규모 반정권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젊은 이란 여성들이 기뻐하는 영상은 이러한 맥락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란 전쟁의 부당성/정당성을 선전하는 이분법적인 담론구도가 ‘이란 여성의 얼굴’을 빠르게 포획했다는 점이다. 하메네이는 여성 인권을 억압했을 뿐 아니라, 무수한 자국민을 학살한 독재정권의 집권자였다. 심판 받아 마땅한 대상임에는 틀림 없지만, 그것이 이란 민중이 아니라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이스라엘 제국에 의해 이루어졌을 때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미국-이스라엘이 구축하는 패권적 세계 질서가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이란 여성은 자국의 부정한 권력과 제국의 침략 전쟁 사이에 놓여 있고, 제국의 침략에 항의하는 여성의 얼굴은 독재 정권에 대한 옹호로, 독재자의 사망에 기뻐하는 여성의 얼굴은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옹호로 빠르게 포획되고 있다.


아룬다티 로이의 『지복의 성자』는 히즈라 안줌을 중심으로 인도를 둘러싼 갈등, 예컨대, 양성 구조에 의해 배제되는 히즈라의 삶, 힌두-이슬람 종교 갈등, 인도-파키스탄 분쟁, 인도 공산주의자들의 지하 투쟁 등이 총체적으로 다루어진다. 소설의 용적이 넓은 만큼 해석의 갈래는 여러 길로 뻗어 있지만, 여기에서는 소설의 말미에 짧게 등장하는 인도 공산당의 여성 게릴라 레바티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레바티는 하위 계급 카스트 출신으로 어머니가 아버지로부터 끔찍한 학대를 당하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대학 입학 후 공산당 지하조직원이 되었고, 정부가 광산을 만들기 위해 숲의 원주민들을 폭력적으로 내쫓기 시작하자 공산당이 조직한 인민해방게릴라군(LPGA)의 일원이 된다. 레바티는 숲의 원주민을 위해 인도 경찰과 싸우고, 대학을 나온 엘리트로서 당의 여러 작전을 수행했다. 그러던 중 레바티는 경찰에 체포되었고, 그들에게 고문과 윤간을 당하게 된다. 그녀는 제대로 된 보호와 돌봄도 받지 못한 채 혼자서 성폭력으로 인해 생긴 아이를 숲에서 낳았고, 그 아이를 죽이려 했으나 차마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레바티는 인도의 온갖 사회운동가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던 잔타르만타르에 아이를 버렸고, 안줌의 동료들이 그 아이를 함께 키우기로 하면서 레바티의 편지가 전해졌다.


레바티가 경찰의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돌아왔을 때, 공산당 게릴라 조직은 그녀에게 어떠한 대책도 마련해 주지 못했다. 그들은 레바티가 “스스로 일어서야 한다”며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심지어 뒤늦게 임신 사실을 깨달았을 땐 “LPGA 여성은 아이를 갖는 게 금지되어 있으니 외부로 나가라”(555쪽)라며 레바티를 배제했다. 레바티는 혼자서 아이를 낳은 뒤에야 조직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때 당은 다시 레바티에게 “어린아이가 있어서 훌륭한 위장이 될 수 있”으니 새로운 임무를 맡으라 했다. 레바티는 당이 나쁜 짓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안다. 죽여서는 안 될 사람들을 죽인 것도 안다. “당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해를 못”한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레바티는 당을 떠날 수 없다고 말한다. 레바티는 잔타르만타르에서 많은 사회운동가들을 보았지만, 자신은 그들처럼 단식투쟁을 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숲에서는 날마다 경찰이 가난한 사람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불태”우기 때문이다.(556쪽) “외부에서는 당신 같은 사람들이 투쟁하고 쟁점들을” 다루지만, “숲 내부에는 우리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레바티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것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당으로 돌아간다. “내 총으로 살고, 내 총으로 죽기 위해”(557쪽)


레바티가 당으로 돌아간 것은 당의 이념에 전적으로 동의해서가 아니다. 그녀는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부득이 어떠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레바티의 결단에 동의하지 않을 순 있지만, 그녀의 결단을 전적으로 당을 옹호하는 행위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당으로 돌아가기를 결단했다고 해서 당에 대한 그녀의 비판적 시각이 그 하나의 결과로 모두 소거되지 않는다. 레바티의 삶이 계속되었다면, 그녀는 다른 조건 속에서 다른 결단을 했을 것이다. 다른 조건을 만들어내기 위해 분투했을 것이다. 그녀의 고뇌가 있었기에 레바티가 죽고 나서라도 다음 세대의 여성들은 다른 결단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특정 정치 진영의 선전 도구로 대상화할 때, 결단 속에 내포된 고민과 분투는 손쉽게 소거되고 현실적 조건 속에서 내린 잠정적인 결단은 영속적인 것으로 박제되어 버린다.


‘이란 여성의 얼굴’을 한 전쟁 담론을 보면서 레바티의 편지를 떠올린 건 이 때문이다. 미국의 이란 지도부 제거 직후 쏟아진 영상 속에서 이란 여성들은 울거나 웃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역사적 주체로서 그녀들의 모든 표정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또한, 그것이 영속적인 하나의 표정이라고 할 수도 없다. 역사적 주체로서 그녀들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매번 숙고할 것이며, 다른 결단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울음 뒤의 해방감 혹은 웃음 뒤의 분노를 상상하기도 전에 그녀들의 얼굴을 재빨리 특정 진영의 선전 도구로 포획하는 담론은 그녀들을 하나의 표상으로 대상화해 버리고, 그녀들을 행동하고 변화하는 역사적 주체로 인식할 수 없게 한다. 그 결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고, 역사적 주체는 남자의 얼굴을 하게 된다. 오늘날 알고리즘을 타고 지구 반대편에 도달한 이스라엘/미국-이란 전쟁의 얼굴은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다.


편지는 레바티가 죽은 후에 전해진 것이었다. 안줌은 레바티의 평안을 빈다. “랄 살람 알레이쿰” 이는 “‘당신에게 평화가 깃들기를’이라는 의미의 이슬람교식 인사 ‘살람 알레이쿰’에 ‘붉은’ 이라는 뜻의 ‘랄’을 붙인 것”이다. 이슬람식 인사 앞에 붙어 있는 공산당의 상징 ‘랄’은 생경한 느낌을 준다. 아마 이물스러운 접속으로 벌어진 틈에는 모순을 껴안고 지금-여기의 최선으로서 게릴라 투쟁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던 레바티의 고뇌와 분노가 담겨있을 것이다. 안줌의 인사에 대해 서술자는 이러한 해설을 덧붙인다. “편지가 끝나자 안줌이 무심코 보인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건 하나의 거대한 정치운동의 시작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그저 감동적인 설교를 들은 후에 덧붙이는 ‘아멘’처럼 내뱉은 말일 뿐이었다.”(557쪽) 그러나 이 말을 뒤집으면, 레바티의 고뇌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은 거대한 정치운동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일 테다. 다시 말해, 거대한 정치운동은 레바티의 행위를 사후적으로 단순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결단에 이르기까지의 고뇌를 함께하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란 여성들의 표정 뒤에 남겨진 고통과 분노에 대한 이해와 상상은 턱없이 부족하다. 그녀들은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오늘도 숙고와 투쟁의 과정을 겪고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이란 여성들만의 몫이 아니다. 자국의 부정 권력과 제국의 침략 사이에서 오랜 시간을 투쟁해 온 모든 여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매순간 역사적 주체로서 결단하고 있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랄 살람 알레이쿰”

(2026.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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