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명예회복’을 넘어

정혜진(또 하나의 문화 동인,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박사졸업)

by 또 하나의 문화

‘여성의 명예회복’을 넘어: 신자유주의 색출정치와 ‘여성 프락치’의 문학적 재현 ― 안이희옥, 『안젤라』(2021)에 대한 소고

이 글은 다음 논문(첨부파일)의 일부 내용을 요약하고 수정한 것이다. 정혜진 (2026). 1990년대 이후 ‘여성 프락치’의 문학적 재현과 ‘프락치 만들기’의 역사성. 상허학보, 76, 495 - 547.

정혜진(또 하나의 문화 동인,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박사졸업)



‘여성 프락치’ 위치의 역사화

안이희옥, 『안젤라』, 열린책들, 2021. 이하 같은 책의 직접인용은 괄호 안에 쪽수를 표기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2022년, 또문에서 안이희옥의 소설 『안젤라』(2021)에 대한 수다회가 열렸다. 나는 그 모임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소설을 읽고 ‘여성 프락치’라는 화두를 만났다. 한국 변혁운동사에서 프락치의 위상과 젠더를 고찰하면서 운동권 여성의 삶에 다가가고 싶어졌다. ‘프락치’는 분파, 파벌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фракция’에서 비롯된 용어로, 한국에서는 주로 변혁운동을 와해하기 위해 국가가 첩자로 공작한 이들을 통칭하였다.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권위주의 정권기에 발생한 ‘대학생 강제징집 및 프락치 강요 공작 사건’을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으로서 규정하고 그 진실을 규명하기로 결정해, 2021년 5월부터 2024년 2월까지 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 결과, ‘프락치 강요 공작’은 박정희 정권기부터 지속된 ‘대학생 강제징집’을 토대로 하였으며, 특히 전두환 정권은 강제징집된 사병 또는 민간인에 대하여 녹화공작·선도업무로써 사상전향과 프락치 활동을 강요했고, 선도업무는 노태우 정권뿐 아니라 김영삼 정부(1996)에서도 지속되었음이 밝혀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대학생 민주화운동 사건」, 『진실화해위원회 종합보고서 2020~2025 3권 인권침해 사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2025, 144~171쪽.) 『안젤라』는 이러한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국면에서 ‘여성 프락치’의 문제를 재현하며 ‘프락치의 젠더’를 조명한 소설이다.


실제로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에서 ‘여성 프락치’에 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조사와 관련하여 최근 발표된 연구는 ‘프락치 강요 공작’이 징병제를 활용한 국가폭력으로서, 학원계·종교계·노동계를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으며 군의 차출과 활용에 제한되지 않고 정부의 여러 기관이 협력한 국가사업이었음을 논했다. (강제징집 녹화·선도공작 진상규명위원회, 『진실·기억·책임: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 공작을 말하다』, 강제징집·프락치 강요 공작 진실규명 촉구를 위한 국회심포지엄 자료집, 2025.11.19.; 민병래, ‘강녹진’ 공동기획, 『파괴된 청춘: 강제징집과 프락치 강요 공작이 남긴 상처』, 원더박스, 2025, 207쪽.) 여성이 대상이 된 일례도 조명했지만(민병래, 위의 책, 228쪽.), 프락치 공작의 젠더 폭력적 성격은 간과되었다. 그러나 1989년에는 안기부가 여대생들을 대상으로 성고문 협박을 하며 프락치 공작을 했다는 폭로가 연세대, 이화여대 여대생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에 ‘여대생 프락치 공작’에 대한 기사가 다수 보도된 바 있다. 1989년 9월 26일자 『한겨레신문』 기사는 안기부가 “특히 여학생들을 집중적으로 연행해 군복을 입힌 뒤 2~4일 동안 공포 분위기 속에서 강압조사를 벌이고, 풀어준 뒤에도 공공연히 미행하며 협박해온 것”(「안기부, 여대생에 프락치 강요」, 『한겨레신문』, 1989.09.26.)을 보도하였다. 이때 여학생에 대한 안기부의 공작에 ‘군복’과 ‘성고문’이 활용된 것은 프락치 공작이 병역 제도를 넘어 ‘군사주의적 남성성의 상징체계’로서 작동한 젠더 폭력이기도 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제도적 차원 외에도 문화적·담론적 층위까지 포함하는 폭넓은 현상으로서의 ‘프락치 만들기’에 주목해야 함을 말해준다. 또한 ‘프락치 만들기’가 국가의 공작뿐 아니라 운동사회의 의심·단속·낙인과 아울러 수행되었다는 점이 조명될 필요가 있다. 엄청난 수의 프락치와 그 담론이 양산된 시대에 프락치에 대한 방어는 운동의 사활이 걸린 문제로 간주됐고, 프락치 운운은 운동사회 내부에서 반대 진영을 공격하는 전략으로도 활용되었다. 운동사회 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행위가 “프락치의 음해”(전희경, 『오빠는 필요 없다—진보의 가부장제에 도전한 여자들 이야기』, 이매진, 2008, 167쪽.)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는 ‘프락치’라는 범주가 운동사회를 규율하고 운동의 위기를 극복하며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문화적·담론적으로 재생산된 ‘위협’으로 기능하기도 했음을 말해준다. 이 같은 ‘프락치 만들기’의 젠더 구조를 고찰하는 과정에서, 나는 1990년대 이후 한국문학에서 ‘여성 프락치’에 대한 재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으며 그것이 신자유주의 통치성을 내면화하거나 비판하는 방법이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한 맥락에서 『안젤라』는 운동사회에서 여성 프락치의 위치를 역사화하고, 그로써 신자유주의 색출정치를 비판하며 운동권 여성의 명예회복 과제의 현재성을 드러냈다.



운동권 여성의 행동양식과 명예회복의 과제


『안젤라』는 유신시대 학생운동에 참여했던 비혼 노년 여성이자 페미니스트인 ‘안젤라’의 삶을 통해, 운동권 여성에 대한 ‘프락치 의혹’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안젤라는 과거 학생운동의 경험으로 인해 평생 질병에 시달리면서도 운동을 지속한다. 변혁운동은 그에게 질병과 소송으로 계속되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거리의 시위에 나서게 한다. 안젤라는 1970~1980년대 학생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에 참여했으며,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금된 후 50년간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 특히 1991년 강경대 열사 장례식에 찾아온 형사들로 인해 정신질환이 재발해 감시·미행·도청에 대한 불안과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있다. 그는 긴급조치 9호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소송, 유신 헌법 위헌 소송, 통합진보당 해산 관련 명예훼손 소송에 참여 중이고, 한미 FTA 반대 농성,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 촛불 항쟁 등 퇴직 후에도 수많은 집회들을 다니며 10여 년을 거리에서 보내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안젤라는 자신이 “평생 시국 일에 말려들고 다니”(18)는 이유를 유신시대의 기억과 관련짓는다. 자신을 병들게 만든 국가폭력과 싸우는 그에게 ‘장자연 사건’은 정인숙과 연결되고, IMF와 쌍용자동차 투쟁, 시간강사 서정민 박사의 사망 등은 1970~1990년대 운동권의 고문 후유증 및 운동 이후의 열악한 삶과 연결된다. 그녀의 과거는 학생운동 시절부터 함께해온 동료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지속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이 여성들의 ‘명예회복’의 과제이다. 이는 단지 운동권의 상징자본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운동의 과정에서부터 운동 이후, 죽음의 순간까지 그녀들을 괴롭히는 ‘프락치 의혹’을 벗는 일을 의미한다.


안젤라는 대학 후배 ‘연화’가 암 투병 중이라는 연락을 받은 후, 그가 “프락치 같아서”(72) 병문안에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다른 후배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여기서 ‘프락치 같다’는 현재 시제는 프락치 의혹이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님을 말해준다. 연화가 프락치로 의심되는 이유는 그녀가 졸업 후에 어용 연구소에서 근무했으며, 그의 아버지 또한 용역 일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안젤라는 연화가 결혼 후 단칸 월세방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해 맞벌이로 바빴으며 당시는 여학생들이 취직하기 매우 어려운 때였기에 “어디든 뚫고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72)을 거라 말한다. 그리고 연화가 어용 연구소에서 노동 쟁의를 일으켰다가 해직됐다는 사실을 전하며, 이것이 바로 프락치가 아니었다는 증거라면서 그녀를 옹호한다. 안젤라는 노동 쟁의 당시 연화의 모습을 “프락치일지도 모른다는 오해와 비방, 억눌림과 모함에서 일시에 해방되어 기쁜 표정”(86)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연화가 프락치 혐의를 벗더라도 프락치에 대한 질문은 계속된다. 후배는 안젤라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러면 도대체 프락치가 누구였던 거야? 이제는 세월이 흘렀으니까 까놓고 물을게. 언니였어?”(73) 여성들의 과거는 현재의 삶으로 증명되며, 이는 프락치 식별의 사후성, 프락치 의혹의 현재성을 말해준다.


안젤라는 대학을 졸업한 지 40년이 흐른 후에도 20대의 증오와 오해, 불신이 맺혀 있음을 통탄하며, 색출정치가 지속되는 이유를 5·16 군사 쿠데타 이후의 ‘감시사회’가 ‘불신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 공안·검열정치, 군부출신 대거 등용, 유신정권 인물 재등용, 계엄령 개정안 발의, 통진당 해산 등 유신시대가 재현되고 세월호 참사 이후 색출의 치안이 폭주하게 된 상황을 환기한다. 이에 안젤라는 1970~1980년대에 ‘여성 프락치’가 만들어지게 된 맥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한마디로 우리 중에 프락치는 없었어. 다만 군대식으로 훈련받지 않은 여학생들이라 보안의식이 약하고 조심성이 없어서 정보를 무심코 흘리고 다니는 통에 데모도 제대로 못 하고 사전에 검거됐던 거지.(73)

인용한 대목에서 안젤라는 1970~1980년대의 군사주의적 보안의식 바깥에 위치하는 여학생들이 프락치 의혹에 쉽게 노출되었다고 말한다. 군사주의적 국가폭력인 프락치 강요 공작을 방어하는 운동권 문화 또한 군사화되어, 비군사적 행동양식을 보이는 운동권 여성들이 프락치 의혹을 받게 된 것이 운동사회 내 ‘프락치 만들기’의 가부장적 군사주의의 한 맥락인 것이다. 『안젤라』는 이러한 ‘여성 프락치’라는 ‘경계적 위치’를 명예회복이 필요한 자리로 해석한다. 여성들에게 덧씌워진 프락치 혐의는 운동 이후 죽음의 순간까지 따라붙는 낙인이 된다. 연화는 죽기 직전 안젤라에게 전화해 말을 잇지 못한 채 통곡하고, 안젤라는 연화가 무슨 말을 하지 못하고 통곡만 남기고 갔는가 자문한다. 그리고 아내의 유고를 정리해 행장(行狀)을 쓰려는 연화의 남편에게, 어용 연구소에서 노동 쟁의하던 시절을 부각하여 생애사를 쓸 것을 제안한다. 그렇게 안젤라는 연화의 발화되지 못한 유언을 프락치 의혹에 대한 명예회복의 과업으로 독해한다. 그러한 여성의 명예회복은 운동을 자원화·영웅화하는 기획이 아닌, ‘과잉된 자의식’으로 경직된 일상을 회복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왜 옥수수가 그 집들로 잘못 배달됐던 걸까? 교묘한 음모를 꾸미는 배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유신 말기에 끌려갔던 것처럼 커다란 시국 사건이나 간첩 사건을 조작해서 저항 운동을 무화시키고 여론을 호도하려는 정보기관의 기획 수사가 진행 중인 것은 아닐까? 왜 율리아나가 나를 경찰에 고발했을까? 포상금을 노린 동네 사람들과 짜고 모함을 하는 것은 아닐까? 막연히 일상이 무섭고 의심스러웠다.

1979년 4월 안젤라는 지난 6개월 동안이나 미행당했다는 것을 구금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평범한 일상 뒤에서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 있는 기관원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돈에 매수된 이들의 거짓 증언에 얼마나 놀랐던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연행됐던 기억은 끊임없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켰다. 몸이 아플 때, 때마침 일상에서 불미스러운 헛소문이 돌 때, 이웃이나 지인들로부터 엉뚱한 모함을 당할 때, 시국 사건으로 신경이 날카로울 때 이런 증상에 시달리곤 했다. (중략) 따라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했고,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지 말아야 했다. 잡혀갔다 나온 이후 안젤라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엄청나게 모범적으로 살아왔다. 생활 전반에서 결벽증이라 할 정도로 조금의 거짓말도 못 했다.(160~161)


안젤라는 스스로 영웅심이 없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역경을 헤치며 살아온 극기의 삶, 양심, 정의감, 유능함, 인간미 등에 대한 자긍심을 반복적·직설적으로 발화한다. 그녀는 자신이 자의식·자기애가 강하고 자기 의로움이 충만하다는 것을 아는 동시에, 인용한 글에서처럼 잘못 배달된 옥수수 한 자루에도 극도의 불안에 시달린다. 1970~1980년대 운동권 여성들의 명예회복의 과제와 자기 정당성의 끊임없는 증명에의 필요는 국가와 운동사회의 ‘프락치 만들기’가 형성한 결벽의 습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안젤라가 제안한 연화에 대한 애도인 ‘여성 생애사’는 ‘행장’, ‘운동사’, ‘전기’의 일관적·규범적 서사로부터 미끄러지는 여성서사이다. 그것이 여성의 자기증명을 완수하는 게 아니라 자기증명 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만들어낼 수 있으려면, 연화의 노동 쟁의가 프락치 의혹의 해명이 아닌 여성의 운동가 자의식의 ‘복잡한 기쁨’과 ‘과잉된 해방감’을 드러내는 글쓰기로 재현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안젤라는 연화의 가족이 아니기에, 행장 쓰기는 남편의 몫이 되었고, 남편에게 맡겨진 글쓰기는 안젤라와 여성들의 일상을 회복하는 행위가 되기 어려워 보인다. 죽음 직전까지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질병과 눈물로써만 표현되었던 프락치 만들기의 사회적 고통은 가족을 넘어 국가와 운동사회 단위에서 다뤄야 할 성질이기 때문이다. 『안젤라』는 가족이 그러한 사회적 대응을 제한하는 범주로 기능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여성문학의 기억과 색출정치, 그리고 인종화된 몸


‘프락치 만들기’의 색출정치는 오늘날까지 운동사회 안팎에서 지속되어온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학생운동이 약화된 후 대학에서 ‘비권’을 내세운 학생자치 그룹들은 ‘순수한 학생’에 반대되는 ‘불순분자’인 운동권과 정치세력을 색출하여 퇴출시키는 전략을 취해왔고, 이는 등록금을 납부하는 학생들의 ‘알권리’라는 소비자 논리로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대학 내 색출 논리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와 민간인 사찰 등의 색출정치와 신자유주의적 소비자주의가 결합한 결과다. 한편, 일부 여성 시위에서 나타난 외부인, 운동권, 노조원, 생물학적 남성에 대한 색출은 여성의 안전을 위한 전술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는 세월호 참사 이후 한국사회의 안전 시스템 부재를 경험한 여성들이 사회를 개별적으로 통제 가능한 폐쇄적이고 협소한 단위로 상정하면서 만들어낸 자구책이기도 하다. 여성들은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과 반복되는 여성살해, 교제폭력, 교제살인, 디지털 성폭력을 재난참사로 대면하고, 스텔라 데이지호 참사, 코로나 팬데믹, 이태원 참사, 오송 참사, 아리셀 참사, 제주항공 참사, 기후재난과 전쟁에 연루되는 가운데, 신자유주의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안전’을 새롭게 감각·사유하고 있다. 또한 페미니스트 색출, 군대와 팬데믹 시기의 성소수자와 중국인에 대한 색출은 색출정치가 가부장적·이성애 중심주의적·인종주의적 통치 전략임을 드러낸다.


이 글은 이처럼 현재적 쟁점인 색출정치가 ‘프락치 만들기’라는 오랜 문제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고찰하고자 했다. 『안젤라』는 운동권 여성 프락치의 ‘위치’를 기억하며 여성의 명예회복 과제의 현재성과 실현의 곤경을 드러내고 여성서사의 조건을 재고하게 했다. 회복되지 않는 일상의 고통, 신자유주의적 자기증명의 문법, 국가의 보상 시스템 그 어느 것에도 온전히 적응하거나 부합하지 못해서 기억하고 글을 쓰는 여성의 몸. 그 몸들이 오늘날의 인종화된 몸들과 만나는 방식에 대해 더 고민해 보고 싶다. 더 많은 여성의 기억, 여성서사를 기다려 본다. (2026. 4월)

작가의 이전글랄 살람 알레이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