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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쩌다애넷맘 Sep 16. 2022

넋두리를 못 듣는다는 긴 넋두리


나는 사람들의 넋두리를 잘 들어주는 편이었다. 나보다 훨씬 부유하고 모든 것을 다 갖고도 입만 열면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 건강하고 착한 자녀를 두고도 성적이 기대치만큼 나오지 않았다고 (내 기준에서는 충분히 훌륭한 수준) 속상해하는 사람의 이야기도 나는 모두 그렇구나 저렇구나 하면서 잘 들어줄 수 있었다. 대충만 비교해도 내가 훨씬 더 힘들고, 내가 훨씬 덜 가졌고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고민을 잘도 이야기했다. 가끔은 너무 시시콜콜한 문제들도 있었지만 나는 최대한 진중하게 귀 기울이고 공감하려 노력했다. 내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너는 어쩜 애가 넷인데도 이렇게 안 힘들어 보이니? 정말 누가 애 넷 엄마라고 생각하겠어."라고 말했다.


아이 넷을 낳고 키우는 동안 나는 분명 힘들었다. 울면서 일기를 썼고 나를 혼자 울게 하는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고 체력이 떨어지면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고 세상에 내 편이 없는 것 같은 날이면 내 신세를 한탄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아픈 날들이 많았고 앞날이 캄캄했고 무엇보다 고독했다. 하지만 매일매일이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남편이 손을 잡아주면 또 배시시 웃음이 났고 화창한 하늘을 보면 입에서 허밍이 흘러나왔고 마른 가지에 새싹이 움트는 것을 보면 살고 싶어졌다. 아이들이 혀 짧은 소리를 하며 나를 올려다보면 그 두 눈이 너무 예뻐서 오래오래 마음에 담아두고 싶었고 '이 맛에 사는구나, 이게 행복이구나'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살다 보면 살아진다더니 정말 그랬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지만 거저 얻은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늘 의식적으로 괜찮아 보이려고 노력했을지도 모르겠다. 애 많은 엄마라고 피곤에 쩔어 보이는 게 싫어 체력을 키워보겠다고 끔찍이 싫어하던 운동도 시작했고 추레한 몰골의 애 많은 아줌마가 되지 않으려고 항상 남들보다 먼저 부지런히 준비했다. "저렇게 힘들어할 거면 뭐하러 애를 저리 많이 낳았어?" 같은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힘들어도 최대한 입을 꼭 다물고 찡찡대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며 살았다. 차라리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귀한 내 아들을 하늘로 먼저 떠나보내고는 한동안 그럴 수가 없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듣던 사람들의 하소연에 맞장구쳐 줄 마음의 여유가 손톱만큼도 남아있지 않았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끔 한쪽 귀가 먹먹해지다가 정신까지 멍해지곤 했다. 나는 예전처럼 그들의 이야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 어쩌면 나는 너무 치졸하게도 ‘그래도 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보진 않았잖아?’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주위 사람들이 일부러 내 앞에서 조심하는 것도 눈치챘지만 그런 상황마저도 나를 절망스럽게 했다. 그제야 누군가의 넋두리를 그대로 마주하려면 내 마음부터 추스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나에게 가끔씩 자식 잃은 부모의 지인이라며 연락이 올 때가 있다. 그들은 내게 "옆에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도와주는 게 좋을까요?" 하고 묻는다. 내가 감히 자식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도 그들을 대변할 수도 없지만 내 자식이 없는 이 세상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야 하는 것이 때때로 얼마나 고통스럽고 개탄스러운지 알기에 생각나는 대로 아래와 같이 적어보았다. 


아이를 잃고 난 후 가끔, 어쩌면 조금 자주 정신이 반쯤 나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럴 땐 함께 산책을 가자고 해보세요. 햇살 좋은 날 비타민D를 충분히 만끽하고 나면 밤에 숙면하는데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끼니를 자주 거르거나 기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맛있는 걸 먹으러 가자고 하거나 비타민을 권해주세요. 싫다고 사양해도 등 떠밀면 마지못해라도 챙겨 먹게 됩니다. 엉뚱한 순간에 눈시울이 붉어져도 너무 당황하지 말고 또 너무 멀쩡해 보여도 그런가 보다 하세요. 혹시 하늘에 있는 아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면 실컷 할 수 있도록 적당히 호응해주세요. 즐거운 추억이든 가슴 찢어지는 아픈 기억이든 애도할 시간이 충분히 필요하니깐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 옆을 꼭 지켜주세요. 삶을 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 이 세상에 나 홀로 버려진 것 같이 느끼지 않도록 "내가 너를 생각하고 있고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끊임없이 말해주세요. 그러면 결국 버텨낼 거예요. 제 주변 사람들이 지난 2년간 제게 그렇게 해주었거든요. 그래서 이제 조금씩 사람들의 넋두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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