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의 두번째 하늘 생일
초등학교 6학년 딸 학교의 상담 선생님을 만나고 왔다. 학생이 상담을 받으면 보호자가 후속 상담을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 있는 모양이다. 딸의 기질과 성격 검사 결과를 토대로 선생님께서 보충 설명을 해주셨다. 대체적으로 예상했던 내용들이었는데 뜻밖에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딸이 상담 신청을 한 이유가 동생들과 어떻게 하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였는데 실은 그 안에 하늘로 떠난 오빠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딸은 중1 때 하늘로 떠난 오빠를 OO중 3학년에 재학 중이라고 이야기했고 선생님이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잊고 싶지가 않아서 그랬다고 했다. 오빠를 빼고 이야기하면 오빠가 서운해할 것 같았다고... 그리고 오빠 없이 식구들끼리 너무 즐겁고 행복할 때면 오빠에게 미안한 심정이 든다고 했단다.
너무 대견한 딸이었다. 오빠 이야기를 자주 했지만 울거나 슬퍼하는 대신 웃으면서 담담하게 이야기를 잘도 했다. 그래서 신기하기도 했고 나는 내심 부럽기도 했다. '아... 나도 너처럼 할 수 있다면... 눈물 없이 그리워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말이다. 그런데 상담 선생님 말씀이 딸은 오빠 이야기를 하며 펑펑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뒤로 넘어갈 듯이 오열한 이후로 단 한 번도 오빠 때문에 우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는 아이였다. 그런 딸이 2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 엉엉 울었다고 하니 마음이 참 복잡해졌다.
아들을 하늘로 보낸 지 어느덧 2년이 되어 곧 아들의 기일, 하늘 생일이 다가온다. 혼자 집에 있으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가슴을 부여잡고 정신과를 찾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약 한번 먹지 않고 이렇게 저렇게 버텨냈다. 언제부턴가 이 과정 자체가 마라톤을 뛰고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처음 러닝을 시작했을 때 나는 1분만 뛰어도 죽을 것 같았다. 1분부터 시작해서 1분, 2분, 3분... 차곡차곡 늘려 이제는 한 시간 넘게 뛸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식 잃은 부모가 되어 살아가는 삶도 그렇다. 괜찮아지는 것이 아니라 페이스를 조절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다. 최대한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호흡을 유지하며 달려보는 것이다. 하지만 고작 1km 뛰었는데 평소보다 훨씬 숨이 가쁜 날도 있을 것이고 천근만근 무거운 다리를 들 힘조차 없는 날도 있을 것이다. 그럼 또 속도를 줄여가며 맞추다 보면 언젠가 완주를 할 수 있겠지.
이틀 전 막내가 내 곁에 누워
"엄마, 엄마는 빨리 하늘나라 가서 큰 형아 만나고 싶어?"라고 물었다.
"음... 빨리 만나고 싶긴 한데 엄마가 빨리 하늘나라 가면 너네를 또 오래 못 보니깐 너무 빨리 가긴 싫어. 여기서 너희들 실컷 보고 때가 되면 하늘나라 가서 큰형 실컷 볼래."
"그럼 큰 형아 너무 보고 싶지 않아?"
"응 그렇긴 해. 너무 보고 싶어서 가끔 눈물이 나."라고 말하는 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지자 막내는 얼른 내 어깨를 쓰다듬으며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내 곁에 파랑새를 두고 멀리서 파랑새를 찾는 일만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살지만 가끔은 그게 참 힘들다. 올망졸망 쉴 새 없이 엄마를 찾아대는 세명의 아이들을 곁에 두고 떠나간 아들만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못다 한 사랑을 애처로워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차피 죽은 아들은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더 많이 사랑해달라고 보채지도 않는다. 나로서는 잘해주기는커녕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조급할 필요 없다. 세상에 남겨진 우리는 그냥 이렇게 천천히 가는 수밖에 없다. 자식을 잃은 나도 형제를 잃은 아이들도 모두 그렇게 남겨진 자의 몫을 묵묵히 살아내는 수밖에 없다. 서로의 어깨를 쓰다듬고, 땀과 눈물을 닦아주며 가다 보면 어느덧 피니쉬 라인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